베토벤을 설명하기 위하여 프랑스혁명을 얘기하고 헤겔을 언급하는 것, 말러를 설명한답시고 니체를 빌려오고 세기말의 니힐이 갖는 의미를 양념처럼 얹는 것이 과연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두렵습니다.
지강유철 선생님. 안녕하신지요.
공개 지면에서 불쑥 인사를 드려 송구합니다. 4월의 중순, 꽃이 피고 또 지던 그 무렵, 제게 안부를 보내주셨지요. 꽃도 다 지고, 이제는 운전할 때 지열마저 느껴지는데, 여태 답신을 못 드려 전전긍긍하다가, 차라리!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글월을 올립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납니다. 3년 전 11월, 서강을 배회하는 쌀쌀한 바람에 떠밀려 겨우 양화진문화원을 찾아갔었지요.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가 설립한 양화진문화원의 목요강좌에 초빙해 주셨는데, 실은 너무도 부족한 저로서는 간신히 저게 주어진 시간을 겨우 채웠을 따름입니다.
간신히 저에게 주어진 저의 시간을 마친 후, 선생님의 다락방으로 올라갔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 방은 100주년기념교회가 설립한 양화진문화원의 중요한 시설로, 교인과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모임과 행사를 준비하는 공간이지만 제게는 아늑한 다락방 같았습니다. 서너 명이 둘러앉기에는 부족한, 그러나 사방으로 음반과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고, 또 무엇보다 오랜 시간이 적층된 아날로그 오디오가 흡사 옛 고향의 고목처럼 한쪽 벽에 서 있는 풍경! 시간이 정지된 듯한 따사로운 공간이었습니다.
참신한 해석 ‘지강유철의 음악정담’
선생님의 일터이자 집필실이자 사색의 공간을 다락방이라고 부른 것은 제가 늘 꿈꾸던 농밀한 정신적 고향을 빼닮았기 때문입니다. 경관이 수려하고 인테리어도 근사한 집필실 따위는 언감생심, 게다가 그런 호사를 저는 꺼려하는 쪽입니다. 어떤 분은 제게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음반 숫자를 여러 번 자랑한 적이 있습니다. 소심한 저로서는 속으로 그 음반들을 꼭 들어보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자신이 새로 구입한 앰프가 얼마쯤 하는데 이건 갖고 있다가 다시 팔면 오히려 값이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역시 소심한 저로서는 속으로 내다팔기 전에 그 오디오로 음악 좀 들으라고 말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책과 음반과 여러 생각들이 얽히고설켜 있는 선생님의 집필실이야말로 인간을 사유의 강박으로 몰아넣는 거룩한 다락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방은 그 건물의 가장 높고도 좁다란 곳에 있었기에 실제로 다락방이기도 하였습니다.
작년 12월에 다시 한 번 선생님의 다락방을 찾아뵌 일이 있지요. 선생님과 무릎을 마주하고 음악을 들었고, 그 후에 저의 작은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고해하러온 탕아를 쓰다듬듯이 자애롭게 격려해 주셨던 일을 저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의 졸저 <클래식, 시대를 듣다>를 흥미롭게 읽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 같은 강호의 고수를 뵈면 저는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선생님께서 인터넷에 올리시는 ‘지강유철의 음악정담’을 통하여 저는 싱싱한 정보와 참신한 해석과 무엇보다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지고지순하면서도 뜨거운 정념을 느낄 수가 있어 큰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로시니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베를리오즈의 레퀴엠을 오랜만에 다시 들었습니다. 하인리히 쉬츠의 곡만 들어왔으나 선생님 덕분에 하이든의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을 무릎 모으고 들었으며, 바흐의 순정한 기도를 들어 왔는지 아니면 그 음향만 탐닉해 왔는지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아차, 이 지면이 공개된 장임을 잠깐 잊었군요. 지난봄에 선생님께서 저에게 글을 주시면서 우리들의 음악 듣기, 그러니까 유년시절에 어떤 사연들로 인하여 클래식 음악이 몸속으로 스며들고, 그리하여 수십년 동안 이른바 필청판을 사모으고 공들여 오디오를 장만하고 애써 공연장을 순례하는 행위들은, 아직 ‘번역의 수준’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번역의 수준이란 우리 것이 아닌 것을 우리 것으로 삼는 과정의 첫 번째 단계일 것입니다. 일단 정보를 파악하고 그것을 번역하여 읽고 듣는 과정이지요. 그렇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번역’이 이탈리아 오페라의 자막을 읽는다거나 독일어로 된 음반 해설지를 한글로 옮겨보는 것만을 뜻하는 건 아닐 것입니다. 그 음악이, 그 문화가, 그 사유가 우리에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기본적인 공부와 사유의 과정이겠지요.
아마도 이 과정은 서구에서 유입되는 모든 학문, 모든 예술, 모든 라이프 스타일에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서구의 그 무엇이 우리의 내면에, 이 공허한 삶에, 이 불만과 불안의 대도시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 해답을 찾아보는 일 말입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 정윤수
우리 학생들에게 베토벤은 무엇일까요?
클래식을 듣는 행위도 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백낙청, 김우창 같은 분들이 “영문학은 한국문학이다”라고 선언했던 바를 인용하자면, ‘바흐의 평균율이 이 창백한 도시에서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심성을 조율하지 않는다면, 과연 왜 들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실제로 음악을 듣는 행위는 수많은 이유와 경로가 있으므로 반드시 이런 화두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격려해 주신 덕분에 저는 이번 학기부터 한신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클래식 강의시간에는 무려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비좁은 의자에 모여 앉습니다. 중세음악으로 시작한 강의가 이제 19세기 중엽을 지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베르디와 브람스의 레퀴엠을 비교하며 들었고, 이제 말러와 쉬트라우스와 쇤베르크로 넘어갈 차례입니다.
이렇게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번역의 수준’이라는 말을 되새깁니다. 이 학생들에게, 전공 공부하랴 알바 뛰랴 피곤에 지친 우리 학생들에게 베토벤은 무엇이고 말러는 누구일까요.
어렸을 적에 저는 당시의 음악 전문가와 애호가들이 쓴 글들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실망스럽고 한가롭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송영, 이순열 같은 분들의 위엄 있는 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불멸의 걸작’이니 ‘위대한 거장’이니 ‘고통을 이겨낸 작품’이니 하는 공허한 표현들 일색이었죠. 그런데 이제 와서 제가 바로 그 노릇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두렵습니다.
베토벤을 설명하기 위하여 프랑스혁명을 얘기하고 헤겔을 언급하는 것, 말러를 설명한답시고 니체를 빌려오고 세기말의 니힐이 갖는 의미를 양념처럼 얹는 것이 과연 저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두렵습니다.
일차적인 번역의 단계는 넘어섰다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해석과 사유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클래식에 대하여 고급문화니 우아하다느니 하는 진부하고 저열한 수준, 심지어 문화적 지배를 관철하려는 지배적 문화계층의 질 낮은 담론은 간신히 넘어서긴 했지만, “클래식은 한국문화다”라고 할 만한 해석의 지평에 아직은 도달하지 못한 상태, 이런 상태에서 몇몇 정보를 추가하고 당대 사상의 조각들을 끼얹어서 그럴싸한 말들을 부리는 것은 저 반세기 전에, 김수영이 박인환에 대하여 ‘시를 얻지 않고 코스튬만 얻었다’고 비판한 것의 재연은 아닐까요.
이런 두려움을 안고 늘 강의실에 들어갑니다. 선생님의 다락방에서 실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시 맨 처음인 듯, 무릎을 모으고 음악을 듣고 싶습니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