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미 광주의 노래 혹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노래라는 사건적·지역적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억압이 있는 곳으로, 인간적 꿈을 열망하는 곳으로, 세계적 연대의 문화적 확인을 갈망하는 곳으로 이 노래는 계속 번져가고 있다.
터키의 노래 중에, 아니 좀 더 범위를 넓혀 발칸반도 여러 나라들에서 불리는 노래 중에 ‘Uskudar’a Gider Iken’ (위스퀴다르 가는 길에) 또는 줄여서 ‘Uskudar’a’(위스퀴다라)라는 노래가 있다. ‘Uska Dara’라고 표기한다. 우리 귀에도 익숙한 노래다. 6·25전쟁 이후에 이 노래의 첫 구절의 발음만 따서 “위스키 달라, 미제 달라”라는 식의 속요로 불렸고, 나중에는 그 선율만 따서 대학가 주점이나 군대에서 좀 더 성적인 가사까지 더해져서 불린 노래인데, 아무튼 발칸반도의 노래다.
‘위스퀴다라’에 등장하는 터키의 항구도시 위스퀴다르의 모습. / 위키백과
몸 안으로 내장되는 노래의 감염력
불가리아 출신의 다큐멘터리 감독 아델라 피바가 2003년에 제작 발표한, 우리에게는 2006년 ‘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EIDF)을 통해 소개된 다큐멘터리 <누구의 노래인가?>(Whose Is This Song?)는 바로 이 노래의 기원을 찾아 나선 작품이다.
다큐는 터키 이스탄불의 허름한 식당에서 시작한다. 식당의 작은 밴드가 이 노래를 연주하자 그리스,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그리고 터키의 친구들이 서로 자기 나라의 노래라고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한다. 불가리아에서 성장하면서 늘 듣고 자랐던 아델라 피바 감독은 ‘과연 저 노래는 누구의 노래인가?’ 하고 의문을 품는다. 그리하여 터키를 시작으로 그리스, 알바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불가리아로 기나긴 여정을 떠난다.
중요한 것은 이 다큐를 제작하던 무렵 발칸반도는 그야말로 언제라도 분쟁과 학살과 전쟁의 위험이 도사린 바싹 마른 낙엽 같은 위험천만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감독이 여러 나라에서 이 노래의 기원을 찾아 해당 주민들을 취재할 때마다 그들은 격렬하게 노래의 주권을 쟁취하기 위해 격론을 벌이고 심지어는 다큐 감독을 위협하기도 한다. 알바니아인들은 세르비아인들이 자기네 노래라고 주장한다는 말에 격분한다. 불가리아인은 자신들의 오랜 전승가요를 터키인들이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말을 듣고는 “그런 녀석은 나무에 매달아 버리겠다”고 감독에게 거칠게 쏘아붙인다.
이 여정 속에서 그 노래는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에 따라, 선율은 흡사하되 전혀 다른 가사와 주제의 노래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마케도니아에서는 군사 전투를 위한 노래였고, 불가리아에서는 억압에 저항하는 노래였고, 보스니아에서는 종교적 의미를 지닌 노래였고, 터키에서는 강력한 행진곡이었으며, 놀라운 것은 그처럼 다양한 목적을 위한 노래임에도 하나같이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 다큐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감독은 “내가 처음 조사하기 시작했을 때, 노래가 우리를 결속시키길 바랐다. 증오의 불꽃이 이렇게 쉽게 타오를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1980년 5월 당시 전남도청 앞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관이 모여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고려대 정병욱 교수는 이 다큐가 “역사성을 무시하고 계속 표피만 훑었다. 이는 오스만 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이다. 지금은 서로 으르렁대는 발칸의 여러 나라가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한 지붕 아래 공존하고 교류했다. 그 증표의 하나가 바로 이 멜로디일 것이다”라는 요지로 비판한 적이 있다. 이러한 지적, 날카롭다.
나는 이 다큐를 보면서, 노래의 감염력을 생각했다. 아! 노래는 정녕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몸으로 스며드는 것이구나 하는 다소 감상적인 감상법이지만, 실로 노래는 몸으로 스며들고 몸 안에 내장되고 몸의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가 어느 순간에 환청처럼 그 선율을 입에 올리거나 때로는 몸을 떨기도 한다. 노래를 억지로 외우게 한다고 해서 몸에 저장되는 것도 아니요, 그것을 부르지 말라고 윽박지른다 해서 그 노래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도 아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라구? 뭐, 어려운 일도 아니다. 5월이면 생각나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바로 그렇다. 사실을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 이 칼럼을 쓰기 위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여러 버전으로 수없이 찾아서 듣고 또 들었다. 순간, 마음이 울컥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내 몸속에도 이미 수많은 기억과 경험에 의해 스며들어온 노래이기에 음반과 음원과 동영상으로 듣거나 보는 순간 그 노래가 내 몸속의 노래, 내 몸속의 기억과 맞부딪치면서, 울컥해지고 말았다.
우선, 간단하게 모두가 체험할 수 있으므로 독자들이 잠깐만 틈을 내어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해 보기 바란다. ‘임을 위한 행진곡’, 그 기본적인 음원부터 마음을 흔든다.
전세계로 번진 ‘임을 위한 행진곡’
중국 베이징 외곽의 피촌, 그러니까 정든 마을을 등지고 도시를 향한 꿈으로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부른다. 2012년 새해맞이 마을축제에서 ‘신노동자예술단’ 밴드가 부르는데 가사가 조금 바뀌었다. “우리의 행복과 권리는 스스로 쟁취하자. 노동이 이 세계를 만들었고 노동자는 가장 영광스럽다”는 내용이다. 일본이나 호주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도 있다. 동남아 일대에서도 많이 불리고 있다. 한국에 일하러 왔던 이주노동자들이 여러 모임이나 집회에서 이 노래를 들었고, 그 의미와 선율을 새기면서, 저마다의 나라로 이 노래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가져가서 그들의 사랑과 그들의 희망과 그들의 현실을 노래한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기본 버전보다 훨씬 더 격하게 세계 여러 곳에서 불리고 있는 것이다.
2013년 5월, 전남 광주시 남구 주민과 학생 5180명이 5·18 민주화운동 제33주년을 기념해 오카리나로 이 아름다운 노래를 합주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경기장에서, 공원에서, 길거리에서 시민들이, 학생들이 이 노래를 합주한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이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원래 이 노래는 광주항쟁 당시 숨져간 윤상원과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하여 1981년에 작곡된 노래다. 가사의 원작자는 백기완, 작곡자는 김종률이다. 영화는 두 사람과 또 많은 희생자들을 기억하면서 끝이 나는데, 체코필하모닉의 장중한 편곡은 한 시대의 벽화처럼 들린다.
국가보훈처는 올해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도 이 노래의 제창 요구를 거부했다. 이유랍시고 내세우는 게 고약하고 간악하다. 이 노래가 북한 영화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된 점을 거론하며 이 노래를 제창할 경우 ‘국민 통합이 저해될 수 있다’고 했다. 일고의 논평조차 하기 싫은, 매우 저열한 정치 조작이요 문화 선동이다. 정치적으로 호남을 고립시키고, 문화적으로 광주를 폐쇄시키는 졸렬한 음모로까지 느껴진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 나는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사람들 저마다의 마음속에 스며든 노래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기는커녕 이 노래가 가진 위대한 감염력에 의해, 이 노래는 봄날의 꽃씨처럼 더 번지고 있지 않은가. 이 노래는 이미 광주의 노래 혹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노래라는 사건적·지역적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억압이 있는 곳으로, 인간적 꿈을 열망하는 곳으로, 세계적 연대의 문화적 확인을 갈망하는 곳으로 이 노래는 계속 번져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이 노래의 의미를 왜곡하거나 특정 지역의 노래로 축소하고자 할수록 오히려 이 노래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향하여 더 넓게 번지고 더 깊게 스며든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누구의 노래인가. 우리 모두의 노래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