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대화와 타협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대화 당사자의 실질적인 힘의 균형이 담보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노·사·정 대표자 회의라고 했지만, 정부가 주도하고 재계가 따라가고 노동자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식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말을 너무 못하는 것 같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나 ‘말이 곧 그 사람이다’라는 언어철학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사람에게는 말이 정말 중요하다. 목소리말뿐만 아니라 몸말까지도 넓은 뜻의 말로 본다면, 말로 모든 것을 풀어나가는 정치인에게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대통령은 위치나 역할, 영향력으로 볼 때 가장 말을 잘해야 할 자리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는 국민 전체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하고, 편안하게도 하고 화나게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은 너무도 실망스럽다. 아니 실망을 넘어 국민을 짜증나게 하고,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했다.
세월호가 총체적인 문제로 침몰하게 되었을 때, 그건 분명 너무나 분하고 원통한 사고였다. 300명 이상이 조난을 당해 생사가 분초에 달린 사고현장이라면, 대통령은 무조건 조난당한 국민을 최대한 염려하고 안타까워하며 구조의 의지를 가장 강하게 표현하는 말을 한 후,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 상식이다. 그것이 대통령으로서의 출발선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그 출발선에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조난자의 생사가 달려 있는 구조 골든타임에 행방불명 상태였다.
지난 3월 31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는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노사정위를 비난하는 상징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참가하면 할수록 손해만 본다’ 인식
2008년 중국 쓰촨성에서 지진이 났을 때, 아직 여진으로 땅이 흔들리고 있는데도 당시 원자바오 총리는 현장으로 달려가 현장지도를 했다. 구조인부들과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활동하는 모습을 TV 등을 통해 온 국민에게 보임으로써 국민을 안심시켰다.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쓰나미로 인해 폭발사고가 났을 때, 당시 일본 총리는 직접 전화통을 붙들고 전문가에게 전화해서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재난에 임하는 태도는 분명해야 하고, 그것은 대부분 말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엄청난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전화는 말할 것도 없고, 해당 장관을 비롯해서 비서실 누구의 대면보고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7시간이 지난 뒤 대부분의 승객들은 선실에 갇힌 채 나오지도 못했는데, 최초로 한 말이 “왜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구조하지 못했느냐?”였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사고 첫 소식을 듣고 바로 내려가서 팔 걷어붙이고 진두지휘하며 가족들과 함께했더라면 많은 목숨을 구했을 것이고, 그것으로 남은 임기 동안 높은 지지율로 탄탄대로를 갔을 텐데, 말을 제대로 못해서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 전체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정치력과 말의 부족으로 세월호 참사는 수습과 해결은커녕 더 악화되고 있다. 하필 1주기 날 외유를 떠나며, 억지로 떠밀려 팽목항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 또 가관이다. “얼마 전 세월호 선체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발표가 있었다.… 저는 이제 선체 인양을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 배·보상도 제때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로 요약되는데 선체 인양에 대해서는 아직도 남의 말 하듯 미적거리는 투이고, 돈 이야기는 때에 맞지 않는 얘기다. 오히려 ‘진상규명을 확실히 해서 책임을 분명히 묻겠다’는 의지 표명이 중요한데, 이제 그만 돈이나 받고 끝내자는 식의 말은 또 한 번 유족과 국민을 실망시켰다. 결국 팽목항 간 게 헛걸음이 됐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시도한 노·사·정 대타협도 그런 느낌이다. 결국 실패를 인정하며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의 사표 제출까지 간 이번 사태를 되돌아보면, 그 내용은 차치하고 말을 통한 협상과 조정(회의)의 기본에도 크게 미흡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대화와 타협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대화 당사자의 실질적인 힘의 균형이 담보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노·사·정 대표자 회의라고 했지만, 정부가 주도하고 재계가 따라가고 노동자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식이었다. 특히 사용자 측의 상당한 양보 즉 노동자와의 고통분담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했다. 그것은 우리나라 노·사·정 관계에서 전통적으로 형성되어온 힘의 관계에서 정부가 첫째요, 둘째가 사용자, 마지막이 노동자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언론에 의해 강화되고 고착돼 왔는데, 이 힘의 불균형이 깨지지 않으면 진정한 대화는 어렵다. 민주노총이 노·사·정 대화에 참가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힘의 불균형이 구조적으로 이루어져 있어 참가하면 할수록 손해만 본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실제 이른바 1기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서 그것이 잘 드러났는데,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타협에서 파견법 등을 양보함으로써 결국 비정규직이 차별받고 양산되는 결과가 초래됐다고 보고 있다.
이해당사자들 공감대 이루어져야
둘째는 너무 서두른다는 것이다. 대화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엄청난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을 다루는 데 3개월이란 시한을 정해놓고 전투를 벌이듯 회의를 했으니 거기서 무슨 믿음이 생기겠는가?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사·정 대타협의 모범사례로 네덜란드나 아일랜드를 자주 드는데, 그 나라들은 아무리 간단해 보이는 과제라도 최소 2~3년 이상의 기간을 통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타협점을 찾고 합의하는 노력을 섬세하게 벌인다. 우리와는 과정이나 인식, 방식 자체가 다르다. 이번에도 그 시한이 끝났다고 모든 게 끝난 것 같이 생각한다거나, 회의의 책임자가 사표를 제출한다거나, 회의 기간 중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드러내 책임공방을 벌이는 등은 미숙한 협상과 조정 실패의 사례로 남을 것이다.
이번 일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은 대화나 타협은 내용 이전에 말을 중심으로 하는 협의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첫째는 이해당사자의 공감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노동시장 구조개혁 문제도 정부나 재계의 입장이 강하게 대두되는 데 비해, 노동 쪽은 뭔가 또 빼앗기겠구나 하는 느낌이 강했다. 여러 형태를 통해 서로가 수평의 운동장에서 경기를 한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둘째는 이해당사자 간의 신뢰이다. 정부는 방침대로 밀어붙이고, 재계는 무조건 정부 편이라고 여겨진다면, 노동이 무슨 마음으로 대화에 나서겠는가? 셋째는 통합적 해결방안의 마련이다. 각자의 주장만 펼치는 장이 아닌, 공감대를 바탕으로 이해당사자의 이해와 요구를 충족하는, 합리적이며 서로 이기는 해결방안 찾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각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허심탄회하게 제출하게 하고 상대방의 걱정 해소를 위한 대안도 함께 마련해 가야 한다. 넷째는 절차의 공정성이다. 회의 규칙을 참여자가 스스로 결정하고 합의함으로써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전체 과정이 자율적으로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어느 쪽이 어느 쪽에게 끌려간다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진행자가 철저히 중립적이어야 한다. 현재의 노사정위원회가 정부 부처로 있는 한 회의를 진행하기에는 부적절하다. 노사가 같이 참여하는 새로운 기구를 만들거나, 노사가 만족할 수 있는 구조로 크게 바꿀 필요가 있다. 이번 대타협 시도에서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았다든지, 그런데도 합의에 실패한 교훈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말이다. 대화든 타협이든 정치든 모두 말 위에 지은 집이다. 기초가 부실하면 언제나 넘어질 수밖에 없다.
<이수호 갈등해결센터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