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는 ‘세계는 질산 이용 즉 습식 방식을 중지하고 건식 방식의 파이로프로세싱을 대안으로 삼게 되었다’고 하지만, 선진국의 연구개발은 습식·건식의 혼합 방식이 대부분이며, 건식만의 연구는 오히려 매우 드물다.
독창성을 중시하는 논문에서 첫 번째 금기사항은 ‘표절’이다. 두 번째는 ‘미리 정해둔’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분석 결과를 자의적으로 선택하여 결론에 억지로 꿰맞추는 행위이다. 이런 금기사항은 연구자뿐만 아니라 사실을 전달하는 책무를 가진 기자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런데 유력 일간지인 동아일보의 ‘파이로 개발을 위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라는 제목의 기사(2015년 1월 20일자)는 ‘재처리 추진’이라는 미리 정해둔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시간적·과학적인 사실까지 왜곡하는 한편 기사의 비논리성 및 무지를 감추려는 듯이 온갖 수식어로 얼버무리고 있다.
‘재처리 및 고속로 개발’은 수백조원의 혈세가 낭비될 수 있는 거대 사업으로, 국가 경제·안전에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가져올 정책이다. 이번 회에선 우선 동아일보가 저지른 역사적 즉, ‘시간적’ 사실의 왜곡 및 궤변을 살펴보려 한다.
http://blogs.yahoo.co.jp/sasaootako
1940년대의 원자로는 발전이 아니라 플루토늄(Pu) 생산이라는 군사용으로만 이용되었다. 당시는 자연 상의 유일한 핵분열성 물질인 우라늄(U) 235의 발견량이 적었다. 게다가 핵무기급의 90% 이상의 고농축 작업에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했다. 한편 원자로 내에서 U 238이 중성자를 흡수하여 Pu 239가 되는데, Pu 239는 U 235보다도 핵분열성이 높으나 농축작업이 필요 없다. 그러나 Pu 생산로(원자로)의 사용후핵연료에서 Pu를 분리·추출하는 ‘재처리’ 작업이 불가결했다.
재처리 방식은 습식과 건식으로 나뉜다. 전자는 액체의 용매(溶媒)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의 Pu는 습식으로 추출된 것이다. 현재 영·프·일의 상업용 재처리공장이 사용하는 것은 인산트리브틸(TBP)을 용매로 하는 프렉스(PUREX, Plutonium-URanium EXtraction)법이다. 건식은 1950년대에 개발된 것으로 불화(弗化)물휘발법 등에서 시작되었는데, 특히 1984년 무렵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ANL)가 고속실험로(EBR-Ⅱ)의 금속연료를 재처리하기 위해 개발한 건식 방법을 ‘파이로프로세싱’이라고 하였다.
수백조원이 드는 ‘재처리 및 고속로 개발’
한편 일본은 개발 초기부터 사용후핵연료의 전량(全量) 재처리와 고속로 개발 방침을 유지하고 있는데, 미국도 상업용 재처리를 권유하였다. 그러다가 1964년 중국의 핵실험을 계기로 일본 정부는 ‘핵무장 계획’에 대해 본격적인 검토를 시작한다. 1967~71년 동안 방위청, 외무부, 내각조사실 등이 매년 각각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와중에 오키나와 반환과 미군의 핵무기 반출에 관한 미·일 협의가 진행되었고,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받는 조건으로 비핵 3원칙을 표명한다. 앞의 검토 보고서들도 당분간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는 정책을 선택하는 한편, 핵무기 제조의 농축·재처리 기술과 시설 그리고 미사일 확보로 잠재력를 가질 것을 권한다.
그러나 1974년 인도의 핵실험을 계기로 1977년 미국의 카터 정권은 미·일 원자력협정의 공동결정(제8조C)을 앞세워, 완공 직후였던 일본 토카이(東海) 재처리공장의 가동 중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미·일 교섭을 통해 일정 조건(기간·처리량 등) 하에 가동을 시작한다. 1981년 레이건과 나카소네의 개인적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재처리공장의 본격 가동을 승인하지만, 잦은 고장 및 사고로 가동률은 매우 저조했다. 이에 따라 핵발전소 내 사용후핵연료 수조의 포화상태 즉 ‘화장실 없는 아파트’ 상황을 우려한 전력회사들은 ‘해외(영국·프랑스) 위탁 재처리’를 통해 급한 불을 끄게 된다. 영·프의 재처리공장 건설비는 일본 및 독일의 전력회사들이 재처리 위탁량에 따라 재처리 비용의 선불형식으로 부담하였다. 일본은 로카쇼무라(六ヶ所村) 재처리공장 건설(1993년)을 추진하는데, 1997년 완공 예정이었던 게 부실공사 및 최종 공정의 불량 등으로 22회나 연기되어 현재 2016년 3월로 수정된 상황이다.
한국은 1970년대 재처리공장 도입 계획(2회)을 세웠다가 미국의 압력 때문에 포기한 후, 1992~2006년 동안 경수로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중수로의 핵연료로 재사용하는 DUPIC 계획을 추진했다. 많은 반대에도 약 500억원의 혈세를 투입했지만, 경제성 부족과 종업원의 높은 피폭 가능성 때문에 겨우 연료봉 하나만의 실험으로 끝났다. 결국 1997년 무렵부터는 건식 재처리의 하나인 파이로프로세싱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동아일보 기사는 몇 가지 점에서 사실 관계가 맞지 않다.
파이로프로세싱 부각시키려는 의도?
먼저 ‘미국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본은 1967년 비핵 3원칙을 발표해놓고 재처리에 도전했다’고 하는데, 이는 시간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신문의 자의적 해석이다. 1967년 12월 사토 총리가 국회 답변에서 비핵 3원칙을 표명한 이후에도 핵무장 검토가 계속되었고, 또 일본의 재처리 방침도 1956년 이후 전혀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로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을 건설하면서 ‘실패한 영국은 물론이고, 미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미국을 건설에 참여시켜 주로 안전시설공사를 맡겼다’는 내용도 근거가 없다. ‘영국의 실패’가 만약 영국 재처리공장의 가동률 저감을 가리킨다면, 독일의 재처리 방침 철회와 일본의 계약 종료에 따른 ‘위탁량의 저감’이 주된 원인이다. 그리고 재처리공장 건설에는 약 600개의 회사가 관련되어 있는데, 적어도 일본 자료에서는 미국 기업이 안전시설공사를 수주했다는 정보를 확인할 수가 없다.
세 번째로 ‘일본이 기특했는지, 재처리와 농축을 할 수 있도록 미·일 원자력협정을 개정해 주었다’는 대목은 취재 부족의 백미(白眉)이다. 1988년의 개정 미·일 원자력협정에서 일본의 재처리를 새로이 승인한 것이 아니며(1981년에 승인), 단지 20% 이상의 ‘고농축’에 대한 사전 동의 조항이 추가로 도입되었을 뿐이다. 실질적으로 1988년 협정교섭 시의 가장 큰 쟁점은 재처리 활동 특히 해외 위탁 재처리 시 미국의 동의가 종전의 사전(事前)적인 ‘개별동의’에서 사전적인 ‘포괄동의’로의 전환에 관한 것이었다. 즉 사안에 대해 일일이 미국 의회의 승인을 구하는 개별동의가 아니라, 일정한 조건 내라면 한꺼번에 사전에 승인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문제였다. 약 10년의 교섭기간을 통해 일본은 유럽원자력공동체(European Atomic Energy Community, EURATOM)와 함께 포괄동의를 얻는다.
네 번째로 일본 재처리공장의 완공이 지연되는 이유로서 ‘습식 방식의 질산 이용에 따른 결함’을 들었지만, 유리고화체시설의 낮은 온도가 실질적인 이유였다.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기사에서는 또 ‘세계는 질산 이용 즉 습식 방식을 중지하고 건식 방식의 파이로프로세싱을 대안으로 삼게 되었다’라고 하지만, 선진국의 연구개발은 습식·건식의 혼합 방식이 대부분이며, 건식만의 연구는 오히려 매우 드물다. 마지막으로(여섯 번째) ‘파이로프로세싱을 미국이 원리만 밝혀놓고 멈췄는데, 한국이 이를 받아 연구에 나선 것’이라고 하는데, 일본(전력중앙연구소)은 한국보다 앞선 1986년부터 미국에너지부(United States Department of Energy, DOE) 및 유럽원자력공동체 등과 함께 공동연구를 계속해 왔다. 러시아 등도 다른 건식 방법을 자주 개발해 왔다.
동아일보 기사는 과학적·역사적 근거도 없는 내용으로 파이로프로세싱의 추진을 강조 또는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확연하게 보인다.
다음 연재 글에서는 이 기사의 과학기술적인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파헤칠 것이다. 필자의 지적에 대한 기사 작성 기자의 철저하고 이성적인 반론이 있기를 기대한다.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