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집
토니 주트 지음·배현 옮김 열린책들·1만3000원
역사학자 토니 주트의 회고록이다. 그는 2008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루게릭병에 걸리면 신체는 점점 마비된다. 하지만 감각은 살아 있다. 마비된 사지와 뚜렷한 감각. 밤은 가장 보내기 힘든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그는 지난 기억을 샅샅이 훑었다. 귓속이나 등허리의 참기 힘든 가려움, 움직이고 싶어하는 근육의 습관을 잊기 위해 그는 기억에 매진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어떤 밤이든 완벽히 견딜 만해졌다.” 이 책은 그 밤들이 건져올린 기억이다. 사적인 체험은 역사가로서의 그의 시선을 통과하며 시대적 보편성으로 이어진다. 지나간 시대의 보편성은 지금을 사는 우리가 잃어버린 미덕들이기도 하다. 그에게 어린 시절은 공짜 우유, 농축 오렌지 주스, 대구 간유와 같은 배급품으로 기억된다.
1950년대 전후 영국은 ‘내핍’과 ‘금욕’의 사회였다. 그는 내핍과 금욕은 단지 경제적 조건만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당대의 공공윤리였다. 그는 그 시절이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가난한 시절의 미덕이 분명히 있었다고 말한다. ‘끝없는 상거래’가 공익이며, ‘소비를 통한 함께함’이 유일한 공동체적 가치관이 돼버린 오늘날, 1950년대의 ‘금욕’은 되새겨볼 만한 가치다.
토니 주트는 자신의 10대를 “언어 위에서 자랐다”고 회고한다. 1968년 혁명의 분위기 속에서 ‘좋은 형식 따위는 버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지만, 그는 공감할 수 없었다. 의사소통은 “우리가 함께 사는 수단만이 아니라, 함께 산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는 68혁명 이후 교실에서 언어의 ‘형식’을 도외시하고, 단순한 ‘자기표현’을 ‘자유’로 간주한 흐름을 비판한다. “인생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자율적인 개인에게 주어지는 우선권이 간과돼서는 안 된다는, 결국 ‘자기가 알아서 하라’는 말이 갖가지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문자메시지, 페이스북, 트위터가 대세인 오늘날의 언어에 대해서도 그는 개탄한다. 간결한 언급이 상세한 설명을 대체하면서 ‘말과 글의 무정부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루게릭병에 걸려 자신의 풍성했던 말을 빠르게 잃어가야 했던 그는 “성장과정 속에서 풍성했던 말들은 그 자체로 공적 공간”이었다며 언어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말하기가 점점 불가능해진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자신이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