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실효성의 결여 즉 30km로의 확대에 따른 추가적인 효과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비상계획구역을 20km로 축소하는 것은 시민의 생명 및 재산의 보호라는 지자체의 기본적 책무조차 방기(放棄)한 ‘자살행위’와 다를 바 없다
.
핵발전소의 안전신화가 연이은 대형사고의 발생으로 이미 붕괴된 지 오래다. 핵발전소의 최대 결점은 최소 10만년에 걸쳐 생태계에 유해한 방사성 물질을 대량 배출한다는 것이다. 방사능의 완전 무해화는 현대 과학기술로는 불가능하다. 피폭 리스크를 경감하는 현실적인 방법으로는 ‘시간·거리·차폐’의 세 가지가 있다. 즉,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에 따라 방사능이 약해지는 시간의 경과,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방사능의 특성을 고려하여 최대한 멀어지는 것, 그리고 콘크리트 및 납 등을 이용한 차폐물의 설치를 가리킨다. 이 가운데 핵발전소의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 지역주민들이 방사능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핵발전소로부터 바람 방향과 반대쪽으로 ‘최대한 멀리 피난’하는 것뿐이다.
지역주민 건강과 생명에 직결 과제
따라서 실효성 있는 핵발전소 피난(방재)계획의 수립과 훈련은 지역주민에게는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최우선 과제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부산시는 고리핵발전소의 비상계획구역을 반경 20㎞로 하는 안(案)을 확정했다. 부산시의 용역업체는 사고 피해 시 시뮬레이션을 통해 20㎞ 미만의 설정으로도 방사능 피해에 대비할 수 있으며, 오히려 30㎞로의 확대에 따른 시민 약 373만명의 피난계획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이 업체는 방사능의 결정적 영향이 미치는 범위를 반경 3㎞ 이내로 분석했다. 이것은 후쿠시마 사고 당시 일본의 안전신화와 흡사한데, 일본의 핵마피아는 방사성 물질을 필터를 장착한 벤트(Vent) 시설을 통해 방출하면 반경 3㎞ 내의 피난으로 충분하다고 예측하였다. 그런데 고리핵발전소는 벤트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은 데도 이상하게도 3㎞ 이내라는 같은 결과가 나온 셈이다. 과연 용역업체의 분석 결과에 과학적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국내 비상계획구역 설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일본의 제도를 살펴보자. 1979년 3월에 발생한 미국 스리마일 섬(TMI) 사고는 방사성 물질의 외부 누출이 적었지만, 주지사는 예방적 조치로서 ‘5마일(약 8㎞) 이내’의 임산부와 취학 전의 어린이·유아의 피난권고와 휴교명령을 내렸다. 비록 대규모의 방사능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핵발전소의 핵연료 용융 사고가 최초로 현실화된 만큼, 미국 국내외에서 안전성의 향상 및 피난(방재)계획의 도입이 촉진되었다. 일본은 1980년 6월에 원자력 방재지침을 마련하고 비상계획구역(EPZ)으로서 반경 ‘약 8~10㎞’를 설정하였다. 즉, 2014년 4월까지의 국내 비상계획구역은 일본의 제도를 그냥 인용한 것에 불과하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피난과정에서 계획의 미비로 많은 인적 피해가 발생했다. 사고 발생 5일 뒤인 16일. 방사선 방호복을 입은 일본 구호대원들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로부터 약 50km 떨어진 고리야마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방사선 농도를 측정하고 있다. | 경향자료 사진 AFP연합
한편, 1981년 11월에 이바라키(茨城) 현에서 일본 최초의 원자력 방재훈련이 관련 기관 중심으로 실시되었다. 그러나 핵마피아는 형식적인 방재훈련으로 알리바이 만들기에 치중할 뿐 안전신화를 의심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재훈련’은 의도적으로 피해왔다. 심지어 체르노빌 사고가 발생해도 원자로 및 안전설계 등이 다르므로 일본에서는 가혹사고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면서 체르노빌 사고의 언급을 의도적으로 회피해왔다. 즉, 여전히 안전신화만을 강조하면서 방재제도의 개정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1999년 9월에 발생한 ‘토카이무라(東海村) 임계(臨界)사고’는 원자력 방재제도의 대폭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핵연료 가공공장(JCO)에서 일어난 임계사고는 작업원 3명 중 사망 2명·중상 1명과 사고수습 작업원 등 666인의 피폭자라는 인적 피해뿐만 아니라 반경 350m 내 지역주민의 2일간 피난, ‘반경 10㎞ 이내’에 거주하던 약 31만명의 17시간 실내대피에 따른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다. 이 때문에 핵 관련 시설의 방사능 사고에 따른 ‘소문피해’의 경제적 보상이 최초로 실시되는 등, 2010년 6월의 최종 합의까지 약 1540억원이 지불되었다. 임계사고에 따른 피폭은 중성자선과 클립톤·제논 등의 희가스가 주요 원인이었지만, 작업에 사용했던 초산(硝酸) 우라늄 용액 16.6㎏ 중에서 핵분열한 우라늄 양은 겨우 ‘1㎎’에 불과했다. 여하튼, 일본 정부는 임계사고를 계기로 ▲원자력재해대책특별조치법의 제정 ▲방재지침에 핵발전소 이외의 핵 관련 시설의 추가 ▲피난(방재기본)계획의 수립을 지자체 사무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방재계획의 부분적인 강화책도 여전히 안전신화를 앞세운 탁상공론에 머물렀고, 더구나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쿠시마 사고를 맞이하였던 것이다. 체르노빌 사고에 비해 10~20%의 방사능 대기방출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사고의 강제피난지역은 북서 40㎞의 지역에 이르렀고, 연 20mSv 이상의 오염지역(Hot spot)이 약 60㎞ 지점에서 발견되는 등 종래 비상계획구역의 최대 10㎞를 훨씬 넘어섰다. 이 때문에 사고 후 일본 정부는 비상계획구역(UPZ)을 30㎞로 확대하였고, 게다가 지자체의 판단에 따라 더 넓은 구역을 전제한 피난계획의 수립도 허용하였다.
후쿠시마 사고의 피난과정에서 피난계획의 미비(未備)로 많은 인적피해가 발생했다. 예를 들면 구급차의 부족으로 다리를 굽힐 수 없는 노약자들을 이불 또는 담요로 둘둘 말아 버스 좌석 사이에 ‘세운 채’ 이송하고, 또 고령자들을 학교 강당 또는 체육관의 차가운 바닥에 수용하는 등의 대처 때문에 수십명이 사망하였다. 또, 피난한 65세 이상의 고령자는 1~2주일 동안 평균 7회씩 200~300㎞를 이동했는데, 피난(이동) 및 피난생활에 따른 피로·스트레스·운동부족·의료부실 등 때문에 노인 요양시설들의 연간 사망자가 사고 전보다 약 2.4배나 증가하였다.
행정 편의주의를 앞세운 직무유기
일본 정부는 사고 후 신속한 이동의 곤란과 피난생활에 따른 리스크를 피하기 위하여, 핵발전소 반경 5㎞ 내의 실내 대피시설을 정비하여 신체적 약자인 노약자 및 입원환자들을 단기간 머물게 하는 대책을 도입했다. 최근에는 시설의 구역범위를 반경 10㎞까지 확대할 계획인데, 구역 내의 병원·요양시설·학교 등에 방사성 물질 제거 필터·이중 창문·비상용 발전기 등을 갖추도록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부산시도 한꺼번에 많은 인구의 피난이 곤란하다면, 보완책으로서 실내 대피시설의 정비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부산시가 실효성의 결여, 즉 30㎞로의 확대에 따른 추가적인 효과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비상계획구역을 20㎞로 축소하는 것은 ‘행정의 편의주의’를 앞세운 직무유기에 불과하다. 즉, 시민의 생명 및 재산의 보호라는 지자체의 기본적 책무조차 방기한 ‘자살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할 것이다. 부산시의 논리는 과학적인 검토의 결과가 아니라, 고리핵발전소의 지속을 고정화한 전제 위에 나온 것에 불과하다. 만약 피난계획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다면, 오히려 핵발전소의 가동 허가를 취소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비용의 최소화를 위한 예방조치로서 합리적·효율적인 결정이 된다. 피난계획의 수립이 핵발전소 가동의 필수조건인 미국의 경우, 피난계획의 실효성 부족을 이유로 완공된 핵발전소(Shoreham)의 허가 취소, 그리고 실효성의 보완을 위해 핵발전소(Seabrook)의 가동이 11년이나 연기된 사례도 있다.
비상계획구역이란 핵발전소 사고에 대비하여 충분한 여유를 가진 거리로 정한다.
부산시의 변명은 당사자 의식을 상실한 채, 노골적인 안전 불감증을 드러낸 본말전도(本末顚倒)의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공개토론회를 거친 시민 합의로 비상계획구역의 거리를 정하는 것이 지방자치제도 본연의 모습일 것이다.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