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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5일 새누리당 대선 경선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동생 지만씨가 오전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고 육영수 여사 38주기 추도식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표지이야기]박지만 ‘잠행’ 눈치 보기냐 숨고르기냐

입력 2014.12.09 15:25

권력암투 의혹에도 종적 감춘 채 침묵 일관… 언론에 적극 해명하고 나서는 정윤회 태도와 대조적

박지만 EG그룹 회장은 비선 권력의 ‘국정농단’ 논란에서 정윤회씨와 ‘3인방’에 맞선 또 다른 비선의 중심으로 지목되고 있다. 양측의 갈등 양상은 정씨가 박 회장에 대한 미행을 사주했다는 ‘미행설’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박 회장은 이번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정윤회 동향’ 문건 작성·유출 사태 등 의혹 사안마다 이름이 오르내리며 의혹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사태에 대응하는 모습은 전혀 다르다. 정씨가 언론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모습과는 달리 박 회장은 종적을 감춘 채 침묵을 지키고 있는 모양새다.

12월 4일 박 회장이 몸 담고 있는 EG그룹의 서울 사무소가 있는 강남구의 한 빌딩에는 박 회장의 행적을 추적하려 모인 다양한 언론매체의 취재진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전날인 3일 박 회장이 잠시 사무소를 다녀간 사실이 확인되면서 더 많은 취재인력이 몰렸다. “오늘도, 그리고 당분간은 (박 회장이) 들를 계획 없으니 돌아가셔도 됩니다.” EG그룹 관계자의 말대로 박 회장은 종적을 감춘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12년 8월 15일 새누리당 대선 경선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동생 지만씨가 오전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고 육영수 여사 38주기 추도식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2012년 8월 15일 새누리당 대선 경선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동생 지만씨가 오전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고 육영수 여사 38주기 추도식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서 약 1.5㎞ 떨어진 박 회장의 서울 청담동 자택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택가 골목 곳곳에 자리 잡은 취재진들의 기대와는 달리 박 회장 자택을 드나드는 인적은 포착할 수 없었다. 신호만 갈 뿐 통화가 연결되지 않던 박 회장의 휴대전화는 아예 전원이 꺼진 상태로 바뀌었다.

지난 3월 박 회장에 대한 정씨의 ‘미행설’이 터졌을 때도 박 회장은 공식적인 입장표명 없이 넘어갔다. 때문에 박 회장의 이러한 일관된 ‘잠행’의 배경에는 누나인 박근혜 대통령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무서운 누나’ 의식한 신중한 행보 해석
박 회장의 이런 움직임은 현 정부 들어서 EG그룹이 보인 사업 행태와도 무관하지 않다. 박 대통령 당선 전인 2012년 중반까지 이른바 ‘테마주’로 언급되며 EG의 주가가 코스닥 시장에서 큰 폭의 변동을 보일 때마다 박 회장과 이광형 부회장은 보유주식을 매각해 막대한 차익을 거두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경영행보는 박 대통령 당선과 취임 이후 180도 바뀐다.

박 회장이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신에 조심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전언은 여기저기서 나온다. EG그룹의 주력 분야인 페라이트 등 금속재료 분야에 정통한 한 산업계 인사는 “(EG는) 사업분야에서 규모는 크지 않아도 이미 독보적인 기업 입지를 잡고 있으니 뒷말이 나올 정도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일 필요가 없다. 영업이익이 매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사업에서만큼은 ‘정권 덕을 봤다’는 소리를 안 들으려고 애쓰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그의 지적대로 EG는 전년 대비 매출 신장폭이 2012년 53.3%, 2013년 43.5%, 2014년 20.9%를 기록할 정도로 고속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정치권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비슷하다. 박 회장의 처신이 드러날 정도로 움직임을 보인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 여당 쪽 관계자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한 여당 관계자는 “박 회장이 현 정부 출범 후 국정에 개입했다는 뒷말이 나올 정도로 움직인 게 없었다는 건 누구나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출범 후 기업 경영에서건 정치권의 배후에서건 박 회장이 공개적인 행보를 사실상 그만뒀다는 것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과거 언론에 보도된 박 회장 측근의 전언에 따르면 박 회장은 “누나가 청와대에 있는 동안은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주변에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이 ‘잠행’이 청와대 안팎에 포진한 박 회장 인맥의 힘을 뺀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다. 정씨를 비롯해 ‘문고리 권력’ 3인방과의 대결구도가 진행될수록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등 박 회장 ‘라인’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요지다. “박 대통령이 주위 참모들의 의견대로 대선이 임박한 시점부터 박 회장에게 ‘사업에만 집중하라’고 주문한 뒤로 박 회장도 누나의 말에 잘 따라왔던 것으로 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도 대선 전부터 정권 출범 이후까지 박 회장을 둘러싼 잡음이나 구설수는 거의 없었던 이유가 박 대통령의 ‘집안 단속’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박 회장뿐 아니라 EG그룹에 포진한 ‘박정희 대통령 사람들’ 역시 현 정부 출범 이후에는 대외적인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EG그룹의 전신은 1987년 당시 포항제철(현 포스코)과 삼화전자공업의 출자로 설립된 삼양산업이다. 박 회장이 1989년 부사장으로 입사한 이후 박 회장을 보필하며 회사의 핵심 직책에 자리 잡은 이광형 부회장과 이상렬 전 EG건설 사장은 모두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몸 담았던 인사들이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쿠데타 이전부터 부관을 역임하고 청와대 경호실 수행과장까지 역임한 이 전 사장은 박 대통령과의 연결고리도 있어 과거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 전까지 캠프 주변에서 활동한 전력도 있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이후 EG그룹 관계자 가운데 정치적 움직임을 보인 경우는 아직 포착되지 않았다.

“내가 말하면 논란 커진다” 계산된 관망설도
미행설 이후 정씨와 박 회장 양측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뒤로 박 회장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의 범위를 넓히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그 결과가 현재의 ‘국정농단’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주장들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이, 그리고 그 후임인 이재수 전 사령관이 올해 10월 경질된 배경에는 박 회장과 가까운 육사 37기 장성들에 대한 감찰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에서 박 회장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가 밀려났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 회장은 여전히 휴대전화조차 받지 않으며 입을 다물고 있고, 사업체인 EG그룹은 물론 주변 측근들도 발언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조금씩 흘러나오는 전언들을 종합하면 박 회장 역시 이 사태에 대한 대응에 고심하고 있다는 기류는 읽을 수 있다. 박 회장이 그간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의 인맥을 통해 박 대통령을 둘러싼 청와대 내부 동향에 관한 정보에 귀기울여 왔다는 소식이 잇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측근 인사들에게 “내가 말하면 논란이 커진다”고 밝혔다는 박 회장이 과연 정치적 대응에 나설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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