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코, 그랜드 세이코-세계서 먼저 인정받은 브랜드의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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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 그랜드 세이코-세계서 먼저 인정받은 브랜드의 자부심

입력 2014.10.21 14:41

앞서 연재에서 우리는 세이코(Seiko)의 아스트론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한 이들의 쿼츠 시계 역사에 관해 다룬 바 있다. 이번에는 세이코의 기계식 시계 역사와 이들의 진일보한 시계 제조 기술력을 엿볼 수 있는 그랜드 세이코(Grand Seiko) 컬렉션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일본의 ‘시계왕’으로 불렸던 핫토리 긴타로가 1881년 도쿄의 교바시에 오늘날 세이코 지주회사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핫토리 시계점을 열면서 시작된 세이코의 역사는 정확성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92년 3월 세이코샤(한자대로 직역하면 정공사)라는 시계 공장을 건립해 벽시계를 제조할 때부터, 이어 1895년 일본 최초의 회중시계를, 1913년에는 일본 및 동양 최초의 손목시계 로렐을 선보였을 때도 세이코가 가진 강점은 분명했다. 당시 스위스 및 기타 유럽 등지에서 수입된 시계는 가격대부터 서민들에겐 부담스러운 수준이었고, 갑작스레 고장이 났을 때도 부품 수급이 어려워 수리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 세이코의 창립자 핫토리 긴타로는 보다 많은 이들이 시계를 즐길 수 있길 바랐고, 또한 언제든 쉽게 고칠 수 있는 단순한 구조의 튼튼하면서도 정확한 시계를 만들고자 목표했다. 이러한 세이코의 기조는 13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브랜드를 지탱하는 모토가 되었다.

1960년 발표된 최초의 그랜드 세이코 시계

1960년 발표된 최초의 그랜드 세이코 시계

1960년 단정한 스타일로 첫선
20세기 초·중반 정확한 기계식 시계를 통칭할 때면 크로노미터라는 용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스위스와 영국의 주요 천문대에서 시작된 크로노미터 경진대회는 시계 명가라면 으레 연례행사처럼 참여할 만큼 그 명성에 걸맞게 경쟁 또한 몹시 치열했다. 오메가, 론진, 제니스, 제라드 페리고 같은 스위스를 대표하는 역사 깊은 브랜드들이 즐비한 가운데 세이코는 유일한 동양 브랜드였다. 물론 처음 출전했을 때부터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이코는 회사의 사활을 걸 만큼 이 경진대회에 매년 진지하게 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계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스위스에서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다면 이는 곧 국제적인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했다. 물론 세이코는 일찍이 1929년 자사의 크로노미터급 회중시계로 일본 철도청이 인정한 유일한 시계브랜드로 선정된 바 있고, 1941년부터는 제작이 까다로운 크로노그래프 회중시계에 도전해 하루 오차 5초 이내의 역시나 레일로드급 크로노미터를 완성해 각광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세이코는 자국 내에서의 성공만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렇게 1950년대 중반부터 스위스 뉘샤텔 크로노미터 경진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한 이래 세이코는 10년이 채 되지 않는 시점부터 톱10 안에 꼬박꼬박 들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오토매틱 무브먼트에서 효율적인 양방향 와인딩을 가능케 하는 혁신적인 매직 레버를 발명한 것도 이 시기였다. 또한 시간당 진동수 3만6000회에 달하는, 당시로서는 찾아보기 힘든 하이비트(고진동) 칼리버로 여러 경진대회를 석권했다. 세이코가 그 시절에 유행한 일반적인 시계들보다 두 배가량 빠르게 회전하는 고진동 칼리버에 집중한 데는 물리학적인 관성의 법칙과도 연관이 깊다. 밸런스휠이 빠르게 회전할수록 오차 없이 보다 정확한 시간 측정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이코는 1960년 마침내 고급 기계식 시계 라인인 그랜드 세이코를 론칭한다. 그랜드 세이코는 세이코가 처음으로 유럽 및 나아가 세계 무대를 염두에 두고 제작한 본격 손목시계 컬렉션이라는 데 그 등장의 의의가 있다. 고급스럽게 가공된 골드 케이스에 세이코는 파텍 필립이나 바쉐론 콘스탄틴 같은 스위스 최고급 메이커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는 스타일을 적용하고 싶어했다. 이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스위스 브랜드가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세이코의 자부심이 오히려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측면을 거울처럼 광을 낸 입체적인 바인덱스와 일본의 전통 검에서 착안한 날렵하게 뻗은 핸즈 모양 같은 작은 요소들 하나하나에도 세이코는 심혈을 기울였다. 이는 훗날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 ‘그랜드 세이코 스타일’로 불릴 만큼 컬렉션 특유의 심미적인 개성으로 회자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쿼츠 아스트론을 위시한 다양한 쿼츠 시계들로 전 세계를 주름잡기 시작하면서 최고급 기계식 시계를 표방한 그랜드 세이코는 자연스럽게 쇠퇴일로에 들어선다. 그리고 1975년께부터는 아예 한동안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러나 세이코가 1970~1990년대에 오직 쿼츠 시계에만 집중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꾸준히 기계식 무브먼트와 시계를 선보였고, 1980년대 말 일본이 아닌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도 부품 공장을 설립해 세이코 5 같은 저가 기계식 시계 역시 셀 수 없이 많은 종류를 생산함으로써 오히려 기계식 시계의 매력을 다시 현대인들에게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쿼츠 시계로 스위스 시계업계를 위협했던 브랜드의 행보 치고는 실로 아이러니한 면이 아닐 수 없다.

그랜드 세이코는 1988년 다시 컬렉션에 등장한다. 하지만 당시엔 기계식이 아닌 쿼츠식으로 출시되었다. 새로운 기계식 무브먼트를 탑재하고 온전히 부활한 해는 그로부터 10년 후인 1998년. 핸드와인딩(수동)과 오토매틱(자동) 두 종류의 기계식 무브먼트(9S 시리즈)를 탑재한 그랜드 세이코는 당시 일본 내수용으로만 선보였다. 그럼에도 어느새 일본을 넘어 세계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 조용한 파장을 일으켰다. 예상 외의 성공에 고무된 세이코는 2000년대 중반 들어서면서부터 차츰차츰 라인업을 키워갔고, 기계식 모델뿐만 아니라 쿼츠와 스프링드라이브로 불리는 자체 특허 신기술을 도입한 독창적인 칼리버를 탑재해 전통과 혁신을 아우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1967년 모델을 새롭게 복각한 700개 한정 모델 SBGW047

1967년 모델을 새롭게 복각한 700개 한정 모델 SBGW047

크로노미터 인증 기준보다 엄격한 기준 적용
이후 2011년에는 창립 130주년을 기념해 스프론 610이라는 새로운 밸런스 스프링과 반도체 제조기술로 탄생한 MEMS 같은 정밀한 부품들을 도입해 파워리저브 시간과 성능을 배가시킨 세 가지 종류의 그랜드 세이코 한정판을 발표해 각광을 받는다. 그리고 세이코 손목시계 제조 100주년을 맞은 2013년에는 1967년에 발표한 초창기 역사적인 그랜드 세이코 모델 44GS를 복각한 세 종류의 한정판 모델을 공개한다.

이렇듯 세이코는 21세기 들어 그랜드 세이코를 브랜드를 대표하는 최상위 컬렉션으로 확실하게 안착시켰다. 첨단 소재와 제조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사 고급시계만 취급하는 시즈쿠이시 공방 소속의 국가 장인들에 의해 수작업으로 조립, 검수되는 그랜드 세이코 시계는 스위스의 공식 크로노미터 인증(COSC) 기준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만 출시될 수 있어 그 전설적인 명성에 부합한다고 하겠다.

그랜드 세이코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럽의 시계평론가들도 먼저 인정하게 만든 아시아에서 생산된 가장 뛰어난 품질의 시계이자 세이코의 자부심의 집결체이다. 가깝지만 먼 나라인 일본의 그것이기에 우리 입장에서는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 지레 샘을 낼 필요는 없다. 국내 시계업체도 세이코처럼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우물만 깊게 판다면 언젠가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세훈 타임포럼 시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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