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계의 다빈치’. 데니스 홍(43·한국명 홍원서)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의 이름 앞에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세계로봇월드컵을 3연패하는 등 과학계의 스타로 주목받고 있는 로봇 공학자다.
그가 요즘 꿈 전도사로 변신했다. 자신 같은 미래의 과학자나 사회에 공헌하는 이들이 더 많이 성장하도록 수시로 고국을 찾아 강의를 하고 책을 펴내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돌아오지 않는 세월호 희생자를 생각하며 떠오른 얼굴도 데니스 홍 교수다. 재난구조용 로봇을 만드는 그라면 세월호를 뚫고 들어가 학생들을 구하는 로봇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혹은 상처받은 아이들과 유가족들에게 그의 꿈을 나눠줄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을 찾은 홍 교수를 만나 로봇이 과연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물었다.
재난구조로봇 전문가인데 현실은 어떤가요. 재난현장에서 어떤 일을 합니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난 뒤 세계 최고라는 일본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도, 미국에서 긴급하게 지원한 폭발물 제거 로봇 ‘패크봇’도 지진으로 무너진 험난한 지형과 고방사능 환경을 헤치고 현장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철수했던 기술자 가운데 50명의 최후 결사대를 재투입했죠. 당시엔 그 어떤 로봇도 후쿠시마의 결사대, 즉 사람의 용기를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계기로 전 세계 로봇공학자를 상대로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와 유사하게 설정한 재난상황을 로봇이 해결하는 국제 재난구조용 로봇대회 ‘다르파’를 엽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참 어려워요. 로봇이 자동차에 올라타 목적지까지 스스로 운전하고, 차에서 내려 나무와 덤불이 있는 100m 거리의 길을 통과하고, 건물 입구에 쌓은 장애물을 치우고, 사다리도 타고, 공구를 이용해 콘크리트 벽을 부수고, 심지어 고장난 부품을 새것으로 교체해야 합니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예선에서 우리 팀은 9위를 했어요. 우승이 목표였다면 대회 맞춤형 로봇을 제작했을 테지만 제게 대회는 인류를 구할 로봇을 개발하기 위한 테스트 무대일 뿐이어서 그저 한 번 도전해본 것입니다. 본선은 2015년 6월에 열려요. 저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사람의 일상을 돕기 위한 따뜻한 로봇을 만드는 중입니다.”
과학대회나 엑스포 등 행사에는 꼭 로봇이 등장합니다. 로봇에 대한 관심은 뜨거운데 정작 소개된 로봇은 인사하거나 춤추는 정도더군요.
“로봇이 등장하는 공상과학 기술을 다룬 영화나 책이 많아 대중들의 기대가 너무 큽니다. 아직까지는 그저 단순하게 걸음을 걷는 로봇이라고 해도 일단 작동이 시작된 후 거리 측정을 하는 스캐닝, 그리고 거리에 맞게 다리를 움직이는 프로세싱을 거쳐도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처럼 한 발 한 발 디디는 수준입니다. 최첨단기술의 총아라는 로봇이 이 정도밖에 안 되냐고 사람들은 실망합니다만, 하늘을 휭휭 날아다니고 쓰러지는 건물을 한 팔로 일으키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합니다. 아마 제가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쯤 재난구조용 로봇이 하늘을 날아 고층빌딩 길을 뚫고 사람을 구조하는 것을 보며 손주에게 ‘저게 할아버지가 만든 로봇이야’라고 자랑하지 않을까요.”
로봇은 종류가 다양합니다. 외양도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기계처럼 생긴 것부터 피부까지 사람과 비슷한 것이 있고, 김밥 마는 로봇부터 로봇청소기까지 기능도 다채롭더군요.
“그건 로봇의 개념이 각각 다르고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의 철학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동차도 로봇의 일종이죠. 제게 로봇은 그저 ‘지능형 도구’입니다. 로봇에 인생을 건 학생들은 이 말을 들으면 너무 실망하더군요. 하지만 로봇은 인간을 돕고 우리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해주는 도구로서, 해서는 안 될 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가려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로봇은 절대 안 만듭니다. 로봇은 사람이 될 수 없으니까요.”
홍 교수가 세계적 명성을 얻은 것은 2009년 시각장애인용 로봇자동차를 만들면서죠. 당시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 1면에 기사가 크게 다뤄지고 ‘로봇계의 다빈치’란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2007년 교수로 임용된 후 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인 다르파(DARPA)에서 무인 자동차 경주대회가 열린다는 뉴스를 보고 동료교수, 학생들과 팀을 만들어 3등을 했어요. 그 후 미국 시각장애인협회가 ‘시각장애인 드라이버 챌린지’란 행사를 열었어요. 다르파에 참가할 때 개발한 ‘오딘’이란 로봇을 활용할 생각이었는데 그들이 원하는 것은 시각장애인을 태우고 알아서 움직이는 자동차가 아니라, 시각장애인이 직접 판단해서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였습니다. 다들 포기했지만 저는 일단 안대로 눈을 가리는 시각장애인 체험을 하고 시각장애인 협회에 가서 그들과 생활하며 관찰했습니다. 보는 것 말고는 뭐든 할 수 있는 그들을 위해 1년 동안 땀흘려 탄생한 자동차가 ‘데이비드’입니다. 헤드폰을 쓴 시각장애인이 컴퓨터의 지시를 받아 운전대를 움직이면서 진짜 운전을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웨스란 시각장애인 청년이 무사히 데이비드를 운전한 후에 지어 보인 그 행복한 미소를 잊을 수가 없어요. 비록 엉금엉금 기어가는 수준의 자동차였지만 자기가 직접 자동차를 운전한 후 보여준 함박웃음을 보며 제가 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구나란 확신을 가졌습니다.”
세계적으로 로봇공학자들이 많은데 홍 교수가 각광을 받는 이유가 뭔지요.
“저보다 똑똑하고 유능한 과학자가 많지만 제가 ‘팀’을 잘 만들어서 좋은 성과를 내기 때문일 겁니다. 로봇 만들기가 어려운 것은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계·설계부터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 알아야 제대로 된 로봇이 탄생합니다. 저는 일곱살 때 영화 <스타워즈>를 본 후 로봇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로봇의 기초를 잘 알아서 어디에 문제가 있고 무엇이 편리한지도 알지만, 제가 모르거나 못하는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서 팀을 조직하는 데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언제나 ‘나의 로봇’이 아니라 ‘우리 로봇’이라고 부릅니다. 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팀이 만든 것이니까요.”
이번에 펴낸 책도 <로봇박사 데니스 홍의 꿈 설계도>이고, 강연이나 인터뷰에서 항상 꿈을 강조합니다. 냉철한 과학자가 몽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꿈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단언컨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꿈을 가졌고, 그 꿈이 사람들과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신념이 있고, 그걸 이뤄가는 과정에 있으니까요. 우리 젊은이들은 공부는 정말 열심히 하는데 왜 하는가를 모릅니다. 공학이 뭔지도 모르면서 취직이 잘 될 거란 생각에 공대에 진학합니다. 과학이란 도구와 수학이란 언어가 결합된 슈퍼 히어로가 공학입니다. 다들 미션(소명)은 없고 패션(욕망)만 있으니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왜 하는지도 몰라 좌절하는 것 같아요. 꿈이 뭐냐고 물으면 ‘꿈이 없다’고 하는 청년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습니다.”
꿈은 남이 아니라 본인이 꾸는 것이지만, 부모의 영향도 중요하지 않나요. 우리 부모들은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자녀를 통해 대리만족하려 하거나 그저 안정적인 직업만 강조해서 오히려 부모와 자식 사이가 멀어지기도 합니다.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도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문제청소년으로 낙오자가 됐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죠.
“맞아요. 부모 태도가 정말 중요합니다. 제가 아이 때도 텔레비전을 해부하는 등 개구쟁이 짓을 해서 이름을 <개구쟁이 데니스>란 만화영화 주인공에서 따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야단을 치지 않고 오히려 격려해주셨어요. 저도 다섯살 난 제 아들이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같이 장난치고 뛰어놀고 하염없이 계속되는 ‘왜?’란 질문에 끝없이 답을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아이의 질문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일반상식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같이 의심해보는 것, 아이의 순수한 질문을 받을 때 느끼는 신선한 충격이 제게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물론 모든 질문의 마지막 대답은 ‘그건 아빠가 널 사랑하기 때문이야’라고 끝나죠. 아이들에게는 우리 부모가 자기에게 관심을 갖고 있고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줘야 합니다. 얼마 전 아이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면서 ‘냉장고는 문을 열면 불이 켜지는데 문이 닫혀 있을 때도 불이 켜져 있나요’라고 묻기에 휴대폰 사진기에 타이머를 설치한 후 냉장고 문을 닫았다가 꺼내 보니 껌껌해서 사진이 찍히지 않았어요. 문이 닫히면 불도 꺼짐을 같이 확인하면서 같이 배워가는 과정이 아이의 꿈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과학영재가 많습니다. 세계수학대회, 과학올림피아드를 휩쓸고 로봇도 곧잘 만들던 영재들이 왜 성인이 되거나 대학에 가면 비범이 평범으로 바뀔까요.
“우리 학생들 중에 로봇에 미친 아이들이 많아요. 그런데 로봇을 좋아하는 마음과 기계 조작을 잘하는 손재주는 취미에 불과합니다. 진짜 세상을 바꾸는 연구를 하려면 수학, 물리, 화학을 좋아하고 잘해야 합니다. 저도 어릴 때는 수학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로봇을 만들려면 수학을 모르고는 안 되겠기에 열심히 하다 보니 잘하게 되더군요. 수학은 계산하는 공부가 아니라 생각을 하는 학문입니다. 한국과 외국의 수학 교육의 차이는 우리는 무조건 정답을 찾기만 하면 되고, 외국은 그 과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인’ ‘코사인’을 왜 배워야 하는지도 안 알려주고 무조건 공식을 외우라는 주입식 교육으로는 영재가 재능을 발휘할 수 없어요. 행글라이더 날개의 각을 보여주며 이 각도를 재려면 삼각함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면 스스로 열심히 하게 됩니다. 아이의 호기심을 키워주는 것은 부모의 인내심과 참을성 같아요.”
꿈만큼이나 ‘실패’도 강조하더군요. 얼마 전 삼성전자의 신세대 직원들에게도 성공법이 아니라 ‘실패’할 권리를 허하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습니다.
“젊은이들을 만날 때마다 가장 많은 질문이 ‘실패하면 어떻게 할까요’였습니다. 해보지도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니 무슨 도전이 가능하겠어요. 저도 로봇을 만들며 정말 엄청나게 많이 실패했어요. 지난번 재난로봇대회에서도 미 항공우주국(NASA) 존슨우주센터의 로봇 ‘발키리’(Valkyrie)가 꼴찌를 했습니다. NASA는 모든 과제에서 0점을 받았어요. 결과를 비웃는 사람도 있지만 이걸 기억해야 합니다. NASA는 1969년 달에 사람을 올려놓는 데 성공하기까지 이전 10년간 셀 수 없이 실패했다는 것을요. 저는 NASA의 도전을 보면서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성공할 수 없으니까요. 절벽으로 아슬아슬하게 가야 새로운 혁신이 있습니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에서는 혁신이 생겨날 수 없죠. 삼성 등 대기업의 경우 실패를 용인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에 없는 것을 탄생시키려면 실패를 안고 가는 문화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너무 성과주의, 엄숙주의에 사로잡힌 기업 임원들의 분위기가 문제예요. 한국 기업의 임원들은 웃기는 이야기를 해도 웃지를 않습니다. 웃음을 참지 말고 편하게 웃고 긴장을 풀어야 소통이 되고, 실패해도 웃고 다시 일어서야 혁신이 가능합니다.”
현 정부는 ‘창조경제’를 강조합니다. 정부가 과학 융성에 도움을 주는 방안은 뭘까요.
“정부는 장기 관점에서 기초과학이나 기초기술에 투자해야 합니다. 기초가 쌓이면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없지만 나중에 진짜 필요할 때 뭔가 만들어낼 수 있는 토양이 됩니다. 한국에서 정부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는 당장 먹거리가 되는 주제여서 한국 교수나 과학자들은 눈앞의 성과를 내야 하니 압박이 심합니다. 미국은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것을 할지 고민하고 원천기술 개발을 지원하죠. 당장 성과를 내기 위해 어설프게 탑을 쌓다 쓰러지는 한국과 대조적이죠. 또 제가 방송 출연이나 강의를 하며 대중에게 저를 노출하는 이유도 과학자도 신나고 재미있는 사람, 멋진 직업임을 알려주기 위해서랍니다. 드라마에 보면 근사한 의사, 변호사만 많지 멋진 과학자는 등장하지 않아요. 연예인처럼 군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저를 보고 과학자를 꿈꾸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행복합니다.”
대부분 너무 진지하거나 우울한 한국의 과학자들을 보다가 ‘조증’을 의심할 만큼 명랑하고 밝은 데니스 홍 교수를 보니 처음엔 좀 어색했다. 하지만 열정적으로 인터뷰를 하고 “앞으로 요리사, 마술사. 놀이기구 디자이너가 될 것”이라고 미소짓는 그의 행복 바이러스에 금방 감염됐다. 그런데 홍 교수가 한국에서 로봇을 만들어도 저런 천진한 미소를 유지할 수 있을까….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