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인가요, 로봇인가요?” 로보캅이 된 머피도, 로보캅이 되도록 허락한 그의 아내 클라라도 몇 번이나 되묻는다. 머피는 얼굴 아래 상반신만 남아 있다. 뇌와 심장이다. 그밖의 몸은 로봇. 감정은 인간이지만 시스템으로 감정의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이쯤되면 정체성에 혼란이 오지 않을 수 없다.
호세 파딜라 감독의 로보캅(2014)은 로보캅의 액션보다는 내면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다. 시원하다기보다 묵직한 영화다. 알렉스 머피는 범죄집단을 추적하고 있다. 이들은 머피의 차에 폭탄을 설치하고, 머피는 사망 직전에 이른다. 미국은 로봇경찰로 시끌벅적하다. 로봇기술을 가진 다국적기업 ‘옴니코프’는 미국의 치안 유지와 경찰 보호를 위해 로봇경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아예 미국 경찰 전체를 로봇으로 대치하고 싶어한다. 미국 의회는 반대다. 감정이 없는 로봇에게 치안을 맡겼다가는 더 큰 부작용이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여론은 반대가 우세한 상황. 옴니코프의 선택은 머피다. 이들은 머피를 로보캅으로 만들어 디트로이트의 치안을 완벽하게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냉철한 기계로 변해갈수록 머피는 인간미를 잃어버린다. 이제 머피는 옴니코프의 자산으로 취급된다. 로보캅은 옴니코프의 사업수단으로 전락한다. 대기업에 연루된 언론도 동조한다. 뇌물에 흔들리지 않는 로보캅을 본 여론도 옴니코프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거대 자본을 가진 기업은 세상을 이런 식으로 움직인다.
사람에게 로봇을 이식하는 것, ‘융합’이다. 생물학과 기계공학의 접목이고, 의학과 로봇공학의 결합이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심리학과 전자공학도 한몫 한다. 공동작업, 협력, 합작이라는 의미로 경제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가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다. 콜라보레이션은 소비 마케팅에서는 업종이 다른 기업간의 협업을 뜻한다. 각기 다른 브랜드가 손잡고 공동전선을 편다. 업종의 경계를 넘는 협력을 통해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시장과 소비문화를 만들어낸다. 삼성전자가 프랑스 보르도의 이미지를 채용해 보르도 TV를 생산해낸 것이나 LG전자가 프라다폰을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렌터카 업체는 ‘뽀통령’인 뽀로로와 꼬마버스 타요를 래핑한 차를 내놓아 가족 이용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부산모터쇼에서는 쉐보레가 범블비를 트랜스포머와 함께 선보였다. 현대·기아차는 이에 대응해 변신로봇 ‘또봇’을 전시했다.
콜라보레이션 마케팅은 제품에 유명인과 명품 브랜드, 유명 디자이너, 미술작가 등을 접목시키기도 한다. 미국의 스니커즈 브랜드인 스케처스는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함께 ‘브리트니 스피어스 스케처스’를 시장에 내놨다. 이렇게 생성되는 시장을 콜라보경제학(Collabornomics)이라 부른다. 콜라보레이션과 이코노믹스의 합성어로 ‘협력의 경제학’을 의미한다. 더욱 개별화되는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융합을 할 수밖에 없다.
콜라보레이션의 기원을 이탈리아 금융가문에서 찾기도 한다. 이탈리아 피렌체 메디치와 밀라노의 스포르차 가문은 당대 예술가들을 지원해 르네상스를 꽃 피워냈다. 이런 전통은 패션산업으로 이어져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상업제품 생산에 참여하는 전통을 낳았다.
하지만 콜라보레이션이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자칫 잘못 섞었다가는 되레 부작용이 나기도 한다.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 교묘하게 접목해야 제값 이상을 받을 수 있다.
옴니코프는 ‘로봇은 인간미가 없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러자 인간에 로봇을 입히는 방법을 택한다. 인간의 감정을 기계에 담아 기계가 비인간적인 살육에 나서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인간미를 갖춘 로봇, 과연 옴니코프는 콜라보레이션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