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최후의 날-중앙정부 지원이 아쉬운 지자체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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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최후의 날-중앙정부 지원이 아쉬운 지자체 사업

입력 2014.07.29 11:14

서기 79년 8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연안에 있는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다. 하늘을 뒤덮은 화산재가 땅으로 쏟아져 내렸다. 베수비오 화산 아래 있던 휴양도시 폼페이는 그날 지도에서 사라졌다.

폴 W S 앤더슨 감독의 <폼페이: 최후의 날>(이하 폼페이)은 폼페이의 마지막날을 담은 영화다. 폼페이가 사라진 뒤 1500여년이 지난 1592년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 폼페이 유적들을 발굴했다. 화산재에 파묻혔던 사람들은 화석이 됐다. 그 중에는 서로 끌어안은 연인도 있었다. 이것이 <폼페이>의 모티브가 됐다.

마일로는 어릴 때 로마군에게 가족을 잃는다. 어른이 된 그는 노예 검투사로 성장한다. 폼페이로 팔려가는 길에 영주의 딸 카시아를 만난다. 두 사람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카시아는 로마 상원의원인 코르부스에게 끈질긴 구애를 받지만 그가 싫다. 풍요를 기원하는 비날리아 축제, 마일로는 다른 검투사와 싸워 이겨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마일로는 코르부스가 어린 시절 자신의 가족을 죽인 장본인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카시아를 지키고, 자신의 복수를 위해 마일로는 경기장에 선다. 그 때 화산이 폭발한다. <폼페이>에는 신분을 초월한 사랑과 큰 스케일의 재난현장을 보여줬던 <타이타닉>과 검투사의 거친 삶을 담은 <글레디에이터>가 섞여 있다.

폼페이의 영주인 루크레셔는 로마 상원의원 코르부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열심이다. 심지어 딸까지 코르부스에게 보낸다. 루크레셔는 폼페이에 대형 원형경기장과 도로, 상수도 시설 등을 짓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서는 로마의 재정지원이 필수다. 코르부스 의원은 원로원에서 폼페이의 재정지원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코르부스는 카시아와 결혼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건다.

[영화 속 경제]폼페이 최후의 날-중앙정부 지원이 아쉬운 지자체 사업

예나 지금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사업을 하려면 중앙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대형 경기장이나 수도, 도로 등의 건설은 지자체가 혼자 힘으로 하기 힘들다. 휴양도시인 폼페이도 상황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자체가 사회간접자본(SOC)을 짓고 싶다고 해서 중앙부처가 마냥 허가해줄 수도 없다. 재정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예비타당성 조사다. 대규모 개발사업의 우선순위, 재원조달방법, 적정투자시기 및 투자액 등을 평가해 사업 추진이 타당한가 여부를 밝히는 조사다. 1999년 도입됐다.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 드는 사업 중 예산이나 기금에서 300억원 이상 지원되는 건설사업, 정보화사업, 국가연구개발사업 등이 조사대상이다.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비용편익(B/C) 분석에 지역 균형발전을 더해 종합평가(AHP)를 내린다.

B/C는 1 이상, AHP는 0.5 이상이 되어야 사업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1999∼2009년 10년간 436개 사업(사업비 208조원)에 대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했다. 이 중 41%인 179개 사업(사업비 107조원)이 예타에서 탈락해 사업이 추진되지 못했다. 예타는 선심성 지역개발사업이 추진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일정 부분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문제점도 있었다. 제도가 도입된 지 15년간 예타 기준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예타 적용을 받는 사업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졌다. 이 때문에 정부가 작은 사업까지 간섭하는 꼴이 됐다. 또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예타 평가가 똑같이 진행되면서 비수도권의 불만이 커졌다. 비수도권의 경우 인구가 적어 예타 편익분석이 상대적으로 나쁘게 나온다. 정부는 최근 예타 기준을 총사업비 1000억원 이상이면 국고 지원 600억원 이상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로마시대 때 예타 제도로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시스템이 있었더라면 루크레셔가 코르부스 상원의원에게 그렇게 비굴하게 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랬다면 딸 카시아의 운명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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