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산단 8번 도로 광주시비정규직지원센터를 찾았다. 월 40건 정도 상담이 들어오는데 청소년 알바의 최저임금 진정을 많이 했단다. 노동청 근로감독관이 투덜거릴 정도다.
목포행 열차에서 들리는 남도 사투리가 정겹다. 광주 송정역에 빗방울이 흩날린다. 팽목항의 절규를 전하려는 듯 바람소리가 스산하다. 하남산업단지 4번 도로를 가로질러 7번 도로에 내렸다. 자동차 엔진블록용 주형을 만드는 현대비앤지스틸. 농성 천막이 1톤 트럭 위에 실려 있다. “처음엔 땅에 천막을 나뒀는디, 고정돼 있으면 불법건축물이라고 철거한다고 해서 차라리 차 위에 올려불자 그랬지요.” 금속노조 한국비앤지스틸 박형열 분회장은 ‘농성용 캠핑카’에서 살고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이 회사의 직영은 공장장과 창원 본사에서 온 사무직 5명뿐이다. 130명의 생산직은 전부 코아정밀과 코아월드라는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다. 창원공장에는 정규직이 많지만 광주와 울산은 비정규직 공장이다. “신입사원들이 와도 못 버티고 나가뿝니다. 현장 온도가 40~50도 넘고, 화학약품의 가스 때문에 눈은 따갑고 피부 발진도 생기고, 그렇게 힘들게 일했는데 월급을 받아보고는 다음날 안 보이죠.”
현대위아 사내하청으로 있을 때는 정규직노조의 합의로 성과급을 받기도 했다. 2012년 현대비앤지스틸로 인수되면서 연봉이 400만원가량 깎였다. 더 이상 못 참겠다며 금속노조에 가입했더니 복수노조가 만들어졌고, 금속 조합원들만 못살게 굴었다. ‘노조 그만두는 날은 사직서 쓰는 날’이라며 잘 버티던 선배는 며칠 전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회사를 떠났다. 95명에서 시작한 조합원은 이제 16명 남았다. 간부 2명은 해고됐다. 인근의 현대위아 광주공장도 6개 하청업체 500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일한다. 대기업은 광주에 비정규직 공장만 세우고, 민주당이 같이 만든 복수노조법은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마저 앗아간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구청장은 노동자의 처지보다 천막 철거에만 관심이 있다.
현대비앤지스틸 광주공장 앞에 설치된 농성 트럭. | 박점규
대기업의 광주 비정규직 공장
바람이 세차게 분다. 금호타이어 비정규직노조 사무실이 활기차다. “비정규직 휴게소에 정규직노조 지회장이 와서, ‘형님, 문 하나 내 드릴까요’라고 하는 거예요. 엄청 반가웠죠. 새벽부터 공장 구석구석을 다니며 정규직·비정규직 구분 없이 깍듯하게 대하고, 이렇게 원하청 경계의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비정규직 서경일 수석 부지회장의 얼굴이 밝다.
10년 전인 2004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고용보장을 이끌어낸 노조위원장이 지금 정규직노조 허용대 지회장이다. 그동안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을 무시하고, 힘든 일 떠넘기고, 3D 업종을 도급화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새 지회장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7월 1일 채권단은 워크아웃 중인 금호타이어의 미국 조지아 공장 건설 재개를 위한 투자를 승인했다. 올해 말에 워크아웃을 졸업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잘 나가던 금호타이어는 2008년 금융위기와 금호그룹 형제의 난 때문에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아무 잘못도 없는 노동자들은 연봉이 40%나 깎였다. 정규직 월급이 기아차 사내하청 월급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정규직은 줄고 하청은 1000명으로 늘었다. 광주근로자건강센터에서 금호타이어 비정규직 170명을 상담했고, 최근 27명이 산업재해 승인을 받았다. 비정규직지원센터는 법률지원을 해준다. 비정규직 신현균 지회장은 “지역 단체가 비정규직에게 큰 힘이 된다”며 밝게 웃는다.
하남산단 8번도로 광주시비정규직지원센터를 찾았다. 월 40건 정도 상담이 들어오는데 청소년 알바의 최저임금 진정을 많이 했단다. 노동청 근로감독관이 투덜거릴 정도다. 광주시 공공기관 비정규직 실태조사도 하고 있고, 시민들 의식조사와 민간부문 실태조사도 준비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노조와 동아리 설립을 지원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공단의 퇴근시간, 꽉 막힌 호남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 그쳤던 빗줄기가 흩날린다. 저녁 7시 광주지하철 농성역 역무실에서 3명의 역무원이 반갑게 맞는다. “여기, 아까 아가씨 어디 가 있어?” 동네 할머니가 역무원에게 빌려간 우산을 돌려주며 고마움을 전한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방송이 들리자 역무원들이 일제히 CCTV를 지켜본다. 사고가 날 때마다 하나씩 생긴 CCTV는 36개까지 늘어 이곳저곳을 감시한다.
지난 5월 6일 저녁이었다. 열차에서 한 남자가 소화기를 뿌리며 난동을 부렸다. 연락을 받은 이현수 역무원이 뛰어내려가 제지하자 손을 물어뜯었다. 다행히 승객들은 다치지 않았다. 그런데 손이 찢어진 역무원은 병원에 가서 개인 돈으로 치료하고 돌아와 업무를 해야 했다. 지하철역 아래로 뛰어내렸다가 올라오지 못하거나 에스컬레이터에서 굴러떨어지는 일은 흔하다. 최근 광주도시철도 박정태 지회장은 ‘썬큰광장’에서 여성을 폭행하고 도망가는 강도를 잡기 위해 뛰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농성역에서 3조 3명씩 일하는 9명의 역무원은 광주도시철도공사 직원이 아니라 모두 민간에 위탁된 역의 비정규직 역무원이다. 광주시내 19개 역사 중에서 17개 역이 ‘비정규직역’이다.
광주시내 17개 역이 ‘비정규직역’
최문석 역무원이 휴게실에 들어가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혼자 저녁을 먹는다. 민정씨는 자전거를 타다 팔, 다리를 다치고 얼굴을 12바늘이나 꿰맸는데도 출근하고 있다. 그녀가 없으면 둘이서 업무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정태씨는 컴퓨터를 옮기다 액정이 깨졌는데, 집에 있는 모니터를 가져와야 했다. 습하고 더운 지하, 직원들이 돈을 모아 선풍기 3대를 샀다. 2년 이상은 일해야 역무업무에 익숙해지는데 7월 1일부로 바뀐 역장은 지하철 표도 팔기 어렵다. 최문석씨는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는 데는 돈을 안 쓰고, 예산타령만 한다”며 “승객 안전은 안전대로, 직원 복지는 복지대로 어렵다”고 말한다. 다리를 절룩거리며 출근한 민정씨는 비상시 개인별 임무카드를 목에 걸고, 비상대응 매뉴얼을 정리하며 CCTV를 살핀다. 5·18 항쟁의 도시 광주 지하철역 풍경이다.
마지막 여정은 광주의 자랑 기아자동차. 이기곤 광주지회장과 비정규직 대의원들이 반갑게 맞는다. 1986년 이 지회장이 아시아자동차에 입사할 무렵 3000명이었던 직원은 지금 정규직 6300명, 비정규직 700명이 일한다. 10년 전에 비해 매출액은 4배, 순이익은 5배 늘었다.
1공장 2층 트림반으로 올라갔다. 행거에 매달린 쏘울과 카렌스가 차례로 들어온다. 엔진 히터하우스와 연료호스를 연결하고 파킹브레이크를 설치한다. 뒷걸음질을 쳐야 하고 차에 들어가 허리를 숙여 일해야 한다. 정규직이 하기 싫어하는 힘든 공정, 사내하청분회 김학종 조직부장이 일하던 곳이다. 지난해 정규직 노사가 장기근속 자녀 우선 채용에 합의하자 ‘사내하청 우선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김 부장은 시너를 뿌리고 분신으로 항거했다. 세 딸아이의 아빠가 “아이들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다”고 외친 날은 우연히도 4월 16일이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는 지금도 서울의 화상전문병원에 입원해 있다.
차에 시트를 넣고 조립하는 공정. 10년 전 기아 공장에 들어온 김락희씨가 쏘울과 카렌스 안에 14㎏짜리 시트를 연달아 넣는다. 이어 정규직이 시트를 조립한다. 전에는 왼쪽 시트는 비정규직, 오른쪽은 정규직이 조립했던 걸 불법파견을 피한답시고 구분해놓았다. 곧 불법파견 여부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온다. 락희씨는 공장에 와보지도 않은 법원이 제대로 판결을 내릴지 걱정이다.
공장 앞 선술집에서 비정규직 대의원들이 분노를 쏟아낸다. 정규직과 하나의 노조를 이루다 보니 비정규직이 정규직노조에 기대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동료가 분신했는데도 가만히 있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알바 노동자들을 외면한다고 열 받아 한다. 최근 사내하청 130명을 뽑았는데 정규직 조합원들이 사내하청에라도 자녀를 넣으려고 했단다. 그런데 비정규직들이 우리 자녀도 해달라고 한단다. 정규직노조의 나쁜 것만 배우고 있다고 한탄한다. 밤이 깊어가면서 분노는 성찰과 반성으로 바뀐다.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5·18 광주 정신으로 다시 일어서자고 다짐한다. 광주의 새벽이 밝아온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