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KB금융지주가 국민은행 주주총회를 열어서 행장을 해임했다면 그것은 상식이 아니라 스캔들이고 해프닝이다.
금융권 초미의 관심사였던 KB금융그룹에 대한 임원 및 기관 제재 여부가 결국 연기됐다.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는 당초 예정되었던 6월 26일에는 당사자의 소명까지만 듣고 최종 결론은 다음 회의(7월 3일 예정)로 미뤘다. 이에 따라 임영록 회장, 이건호 행장 등 임원과 KB금융지주 및 국민은행은 향후 일주일 동안 계속 불확실성 속에서 영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KB금융지주 사태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현재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금융계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만화경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상식과 비상식이 어우러진 현란한 퍼레이드가 한창이다.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임직원들이 무더기 징계를 받게 된 KB금융지주의 서울 남대문로 본사로 지난 6월 10일 직원들이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위법이 아니라면 회장 의견이 우선
가깝게는 금융지주회사 체제 내의 지배구조가 문제다. 행장과 회장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누구의 의견이 중요한가? 그런 의견을 합법적으로 강제하는 장치는 무엇인가? 그런 행장 또는 회장을 견제하도록 만들어진 사외이사들은 그 소임을 다하고 있는가? 행장 또는 회장과 사외의사의 의견이 다르면 어떤 절차로 해결하거나 누구의 의견을 우위에 두어야 하는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도 있다. 자회사의 대표이사에 불과한 행장이 지주회사와 의견이 다르다면 왜 지주회사는 주주총회를 열어서 행장을 해임하지 않는가? 어차피 주주는 자기 혼자인데. 마찬가지로 자회사와 지주회사의 이사회는 왜 중징계의 대상이 된 회장과 행장의 직무를 당장 정지시키지 않는가? 특히 행장과 의견을 달리하는 것으로 알려진 국민은행 이사회는 왜 행장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가?
보다 근본적인 질문도 생각할 수 있다. 금융지주회사 체제 내에서 은행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과연 정상적인 겸업이 가능할 수 있는가? 공룡으로 성장한 금융지주회사가 금융시장의 안정성에 과도한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수많은 질문이 KB금융지주 사태와 연결되어 있다. 이 중에는 우리나라 금융구조의 기본 방향과 관련된 까다로운 질문도 있지만, 상당수에 대해서는 아주 상식적인 답이 있다. 그럼에도 현실이 문제가 되는 것은 현실이 그런 상식을 부정하고 비상식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 문제에 대한 상식은 무엇일까? 행장과 회장의 의견이 다를 경우 그것이 위법한 것이 아니라면 회장의 의견이 우선해야 한다. 왜냐하면 금융지주회사는 수많은 외부 주주에 대해 가장 직접적으로 책임을 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의견을 강제하는 장치는 무엇인가? 서로의 의견이 위법한 것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이 갈등을 해결하는 합법적인 방식은 자회사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금융지주회사가 단독 주주로 참석하여 행장을 해임하는 것이다. 자회사의 다른 이사들이 금융지주회사의 의견에 반대의사를 가지고 있다면 역시 그 이사들도 해임하면 된다.
만일 어느 한쪽의 입장이 위법한 것이라면 어찌해야 하는가? 회장의 입장은 지주회사 이사들 특히 사외이사들의 견제를 통과해야 한다. 따라서 지주회사 이사들이 보기에 회장이 문제가 있다면 지주회사 주주총회를 열어서 회장의 해임을 추진하면 된다.
행장의 입장이 위법한 것이라면 자회사 이사들이 유사한 행동을 하면 된다. 만일 이사회가 회장 또는 행장과 한통속이라면 어찌해야 하는가? 자회사가 한통속이면 금융지주회사가 주주총회를 통해 이들 모두를 해임하면 된다.
금융지주회사의 이사들이 한통속이라면 금융지주회사의 외부 주주들이 주주총회를 열거나 대표소송을 제기하면 된다.(금융지주회사 주주들이 자회사 이사들의 책임을 직접 추궁하는 이중대표소송은 현재 불가능하다)
위 해법은 말로 설명하자면 복잡해 보이지만 그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회장이나 행장 등 집행임원은 해당 이사회의 결정을 받들어 추진할 뿐이고, 그런 이사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면 그 회사의 주주들이 주주총회를 통해 바로잡는 것이다. 설명이 복잡한 것은 원리가 복잡해서가 아니라 금융지주회사의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상식적 해결 가로막는 관치금융
이제 두 번째 문제로 넘어가 보자. 왜 이사들의 견해 차이가 이사회나 주주총회 등 상식적인 장치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가?
그 이유는 바로 관치금융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는 이사회가 거수기인 것이 문제가 되지만 적어도 국민은행 이사회의 경우 이는 분명하게 사실이 아니다. 행장의 임명이 금융지주회사의 뜻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식적인 해결방법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선임 자체가 상식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높은 곳’에서 내려온 ‘지령’에 의해 행장이 임명되었는데, ‘어느 놈이 감히 머리를 꼿꼿하게 쳐들고’ 반대할 수 있겠는가?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KB금융지주가 국민은행 주주총회를 열어서 행장을 해임했다면 그것은 상식이 아니라 스캔들이고 해프닝이다. 실제로 은행 사외이사가 행장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이사회에서 이를 의결한 것이 해프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은가. 이사회의 결의를 이행하는 것을 거부한 행장의 행동이 해프닝이다.
물론 행장이 항변할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국민은행 이사회의 결정이 위법하거나 심각하게 부당하여 그 결의를 이행하는 것이 은행의 이해에 반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때 상식적인 해결은 행장이 감사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감사는 이를 대주주인 금융지주회사에 전하여 주주총회를 통해 금융지주회사가 국민은행의 다른 이사들을 해임하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결의의 이행을 거부하고 행장의 직을 사임하면 된다. 그것이 행장으로서의 충실의무이다. 감독당국에 가는 것은 행장의 직을 사임하는 과정에서 가는 것이 순서다. 왜냐하면 행장이 집행하지 않는 한 은행 이사회의 결의는 집행되지 않기 때문에 행장이 사임하기 전까지는 위법한 상황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감독당국의 징계는 몇 가지 실정법의 위반을 심사해서 그것대로 적법하게 진행하면 된다. 그러나 감독당국의 징계만으로 위에서 말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그것이 KB금융그룹, 아니 우리나라 금융계가 안고 있는 문제의 진정한 본질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