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제작하고 밀실의 정치모사가들이 연출하며, 검경과 언론이 조감독과 스태프로 동원된 이 초대형 누아르 앞에 어느 영화, 어느 드라마가 감히 명함을 내어놓을 수가 있겠는가.
요즘 영화관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자고 나면 극적인 사건들이 줄을 잇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화 관계자들이 투정 삼아 하는 말에 따르자면 “이 나라의 현실이 워낙 스펙터클하기 때문에” 웬만한 영화의 상상력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좌면우고할 틈이 없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미처 인지하지 못하지만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여순 반란군의 중책이었던 장교가 몇 해 뒤에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되고,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 31명이 그 대통령의 ‘목을 따기 위해’ 청와대 지척까지 잠입해 총격전이 벌어지더니, 18년 동안 철권통치하던 독재자는 급기야 여대생을 옆에 끼고 술을 마시던 안가에서 심복의 총에 살해되는 사건으로 엔딩을 장식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재임 220개월 동안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105개월간 계엄령과 비상조치가 발동되었으니, 비상이 정상인 나라였던 셈이었다.
경찰이 압수수색과 체포영장 집행으로 금수원에 진입한 6월 11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 금수원 정문 앞에 구원파 신도들이 집결해 있다. | 정지윤기자
영화의 상상력 뛰어넘는 이 나라 현실
스펙터클이 어디 대통령의 안가에서만 있겠는가. 실미도에 있던 특수부대원들이 버스를 타고 거리에서 폭사하고, 야구 중계 도중에 사이렌이 울리며, “현재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에 적기의 공습을 받고 있습니다”란 방송을 들어야 하고, 멀쩡하던 백화점이 백주에 무너지고, 한강을 가로지른 대교가 갑자기 도막이 나서 내려앉는 현실에 이르러선 웬만한 영화의 상상력은 감히 대거리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할 판이다. 이런 연고로 이 나라의 영화는 현실을 따라잡기에 급급할 뿐이다.
무소불위의 군인 출신들이 군홧발로 국정을 농단하고, 정보기관원이 여당 국회의원의 수염을 뽑던 시절에 조폭영화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조폭과 당시의 통치자는 비슷한 캐릭터를 지녔다. 검은 안경과 검은 세단을 애용하고, 주색을 밝히며, 피 묻힐 일을 심복들에게 시키다가, 심복의 손에 살해되는 결말도 비슷하다. ‘안가’에서 여대생을 끼고 시바스리갈을 마시다 최후를 맞은 통치자의 캐릭터는 곧바로 이 땅에 ‘룸싸롱’ 문화를 보급했고, 이어서 ‘호스티스 영화’류의 에로물이 전성기를 이룬다.
그렇다 해도 눈앞에서 6000톤의 여객선이 모로 누워, 그 안에 탄 수백명의 어린 학생들이 배와 함께 침몰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국민들의 충격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유족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엄단을 약속했던 대통령과 정부가 보인 후속조치는 오로지 청해진해운 선주 유병언과 구원파에 집중된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대통령과 정부의 무능에 격분한 국민들의 눈은 새로 개봉한 이 드라마에 시나브로 쏠리게 된다.
‘오대양’이라는 선정적인 포스터를 내걸고 등장한 ‘구원파’는 무언가 은밀한 미스터리의 냄새를 풍기기에 충분하다. 국민들이 ‘오대양’ 사건과 ‘세월호’ 사이의 방정식에 골몰하는 사이에, 장면은 쫓고 쫓기는 추격 신으로 이어진다. 금수원을 둘러싼 경찰과 신도들 사이의 대치 장면과 현수막으로 주고받는 대화, 행방이 묘연해진 유병언과 이를 뒤쫓는 검·경의 추격전은 드디어 ‘미스터리’를 지나 ‘스릴러’로 넘어간다. 긴박감을 높이기 위해 언론 변사들은 연일 유병언의 일가족과 사생활을 털어가며 복선과 암시의 정교한 장치들을 만들어나간다. 전국을 강타하는 추격전에 현상금이 없을쏘냐. ‘오억원’이라는 인생역전의 로또 현상금이 내걸린다. 뭐니 뭐니 해도 추격전의 절정은 수배 사진이다. 서부개척기 열차 강도의 현상광고처럼, 유병언 부자의 사진과 변장했을 경우의 가상 사진까지 내걸린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복고풍의 장면이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된 이철과 유인태의 변장 사진을 본 후로 얼마 만에 만나는 70년대풍의 장면인가. 누벨 바그를 넘어 이제 이 국가적 드라마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되살린 신복고풍의 미학을 오늘에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미스터리로 시작 스릴러·에로까지 가미
바야흐로 ‘스릴러’에 이르러 유병언은 졸지에 고전영화 <도망자>의 캐릭터로 변신한다. 연일 종편 방송들은 미스터리하고 스릴 넘치는 추격전을 보도하기 위해 ‘이단연구가’와 ‘전 구원파 신도’라는 듣도 보도 못한 조연들까지 총동원하여 드라마의 긴장감을 높이고, 졸지에 국민들은 ‘대도 신창원’의 앙코르 로드쇼를 다시 감상하기에 이르렀다.
도망자 유병언이 왕년의 대도 신창원처럼 꼬리를 보였다 안 보이기를 반복하며 신출귀몰하고, 경찰과 쫓고 쫓기는 대추격전이 지루해질 무렵이면 ‘액션’이 등장해야 한다. 결정적인 제보에 의해 현상범은 궁지에 몰리고, 궁지에 몰린 도망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류의 참신한 구호를 외치며 ‘지강헌’처럼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거나, 아니면 궁지에 몰린 도망자를 구하기 위해 대거 투입된 구원파 신도들과 경찰 사이에 <유병언 구하기> 대활극만 벌어진다면 ‘미스터리’로 시작하여 ‘스릴러’를 거친 이 드라마는 ‘액션’까지 갖추게 되는 셈이다.
그것만으로는 뭔가 아쉬운 구석이 있다. 이런 아쉬움을 기다렸다는 듯이 어느 종편에서 도주를 돕는 여신도와 유병언 사이의 야릇한 관계를 속치마 자락처럼 내보였다. 오, 드디어 관능적인 ‘에로’의 요소까지 결합하니, 가히 삼류 누아르의 결정판이 완성되는 지점이다.
이 정도면 제 아무리 세월호의 참극에 분노하고 비탄에 빠진 국민일지라도 능히 그 눈을 사로잡을 만하다. 의혹의 단서, 정교한 복선과 암시, 서스펜스한 추격과 난관, 그리고 대반전의 서프라이즈 장치가 갖춰졌으니 어찌 흥행을 의심하겠는가. 그걸로도 흥행이 안 된다 해도 걱정할 게 없다. 월드컵이라는 세계적인 블록버스터를 수입해 오면 되잖는가.
대한민국이 제작하고 밀실의 정치모사가들이 연출하며, 검·경과 언론이 조감독과 스태프로 동원된 이 초대형 누아르 앞에 어느 영화, 어느 드라마가 감히 명함을 내어놓을 수가 있겠는가.
이 나라의 모든 연출가와 영화감독들은 긴장하여야 할 것이다. 이 국가적·민족적·신자유주의적인 상상력과 연출력에 자신의 나태와 무능과 고루함을 반성함이 마땅하다. ‘대선 개입’이라는 평년작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곧이어 스펙터클한 블록버스터를 준비하는 그 근면과 성실과 주도면밀함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과연 이 드라마에 유병언을 캐스팅한 연출가는 누구일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는 정치가가 쓰고, 작가들은 정치를 표절하는 이 비상식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이시백<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