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범위한 ‘잊혀질 권리’의 인정은 디지털시대에 있어서 역사의 기록과 보존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제약될 수도 있다.
지난 5월 유럽연합(EU)의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JC·European Court of Justice)가 구글의 검색 결과에서 특정인의 개인정보와 관련된 링크를 삭제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인터넷에서의 ‘잊혀질 권리’(the right to be forgotten)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잊혀질 권리’란 정보의 주체가 온라인 상의 자신과 관련된 모든 정보에 대한 삭제 및 확산 방지를 요구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 및 통제권을 말한다. 이러한 ‘잊혀질 권리’는 정보기술의 발달과 인터넷과 검색엔진의 고도화로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개인의 정보들이 저장되고 검색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히 잊혀지던 것들이 영원히 남게 되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인해 대두되었으나, 실제 어디까지 그 권리를 인정해야 하는지는 모호했다.
구글의 검색결과 삭제청구 허용
이 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사법재판소의 위의 판결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판결은 2010년 스페인에 거주하는 마리오 코스테하 곤잘레스라는 사람의 소송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구글에서 검색하면 자신의 부채와 그로 인한 부동산 경매가 진행된 것에 대한 1998년도 신문기사가 나오자 구글에 삭제 요청을 했다. 구글은 신문사와 상의하여 “사실보도이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답변을 보냈다. 그러자 곤잘레스는 2010년 3월 5일 스페인의 개인정보보호원인 AEPD(Agencia Espanola de Proteccion de Datos)에 그 기사를 실은 라 뱅가디아(La Vanguardia) 신문사와 검색서비스를 제공하는 구글 및 구글 스페인을 상대로 위 기사의 삭제와 검색 결과의 제거 또는 차단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였다.
AEPD는 “위 기사는 경매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적법한 기사”라는 이유로 라 뱅가디아에 대한 기사 삭제 청구는 기각하였으나 구글과 구글 스페인에 대한 처분은 달랐다. 이들은 검색엔진의 운영자로서 개인정보를 처리한 것이고, 그 정보가 개인정보 주체의 기본권과 존엄성을 해치는 것으로 개인정보 주체가 그 사실이 제3자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을 원한다면 원 기사의 삭제 여부에 상관없이 검색 결과에서 이를 제거해야 한다면서 신청인의 신청을 받아들이는 결정을 한 것이다.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은 위 결정에 대한 법원의 후속 판단으로 구글의 검색엔진이 자동으로 정보를 찾고 저장하여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개인정보처리로 인정하면서 구글도 개인정보처리자로 간주, 스페인의 개인정보 보호 준칙의 규제대상으로 본 것이다. 이에 따라 곤잘레스의 검색 결과 삭제 청구를 허용하였다.
이 판결로 잊혀질 권리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다시 높아지며,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논쟁들이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다양한 의견들이 발표되고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특히 거듭되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고를 겪고 있고, 이로 인한 보이스피싱, 사이버 명예훼손 등의 사회문제가 커지고 있는 국내 사정상 더욱 열띤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논의가 성급한 법제화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미 지난해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에 의해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과 ‘저작권법’에 정보 주체가 공개된 정보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하자는 의안이었다. 당시 이 의원은 “잊혀질 권리의 핵심은 포털의 자정능력을 되찾는 것”이라며 법률조항의 신설을 통해 삭제 요청 시 반드시 삭제해야 하는 의무를 포털들에 부과하는 것이 입법 취지라고 밝힌 바 있다.
정당한 비판 억압하는 수단 남용 우려
그러나 이미 기존 법률만으로도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경우에는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삭제를 요청할 수 있다. 오히려 정보 주체의 피해 주장만으로 광범위한 삭제를 가능하게 하여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약하고 국가와 정보권력, 사회권력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보 주체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적법 정보에 대한 일반적인 삭제권으로 ‘잊혀질 권리’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잊혀질 권리’에 대해 처음으로 규정하였던 EU의 유럽 일반정보보호규정(GR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초안에서도 ‘잊혀질 권리’를 명시적으로 규정하며 일정한 적용 요건과 예외사유를 나열하고 있다. 위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도 개인정보처리자의 개인정보 처리에 한정되는 것으로 일반적인 정보삭제권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즉, 삭제의 요건도 무조건적인 삭제가 아니라 정보가 정보 주체의 민감한 사생활에 관한 것이고, 처음 게재된 뒤로 16년이 흐르면서 수집·처리 목적에 비추어 적절성·관련성·과도한 처리에 해당하지 않을 조건과 최신성 및 처리 목적에 비추어 필요한 기간을 초과하여 식별성 있는 상태의 보관을 금지하는 조건에 위배되는 경우에 한하는 경우로 제한하였다. 다시 말해 새로운 권리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개인정보 보호 준칙의 해석을 통해 검색 결과에 대한 삭제를 인정하였을 뿐이다.
또한 광범위한 ‘잊혀질 권리’의 인정은 디지털시대에 있어서 역사의 기록과 보존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제약될 수도 있다. 아울러 인터넷에서의 평판은 다수에 의한 상호작용과 평가가 결합하여 신뢰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이는 시장과 사회적 교섭의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고 있는데, 그러한 평판 형성의 근거가 되는 정보들을 인위적으로 제거할 수 있도록 허용하게 되면 오히려 객관적인 평판 형성이 불가능하게 되어 인터넷 정보의 신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더 커지며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고 이에 대한 조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이를 이해관계자들의 자발적인 조정과 협력으로 해결하지 않고 행정기관의 통제와 법·제도를 통한 규제로 해결하려는 정책당국의 입장은 지양되었으면 한다.
위 판결의 주인공인 곤잘레스는 구글 검색에서 1998년도 신문기사의 링크는 삭제했으나 오히려 자신의 정보를 전 세계 뉴스매체를 통해 알린 셈이 되었다. 곤잘레스가 이 뉴스들과 수많은 블로그와 웹사이트들에 올려져 있는 정보들을 다 삭제 요청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인터넷 상에서 ‘잊혀질 권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윤원철 KINX 경영지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