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세월호와 촛불]세월호 유가족, 촛불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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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세월호와 촛불]세월호 유가족, 촛불을 만나다

입력 2014.06.02 19:42

  • 백철 기자

가족대책위·시민단체 대책위, 정치공세 빌미 우려 ‘진상규명 서명운동’ 고리로 조심스럽게 손잡아

“저희는 세월호 참사 단원고 유족들입니다. 저희를 잊지 말아주시고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에 동참해 주십시오.”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이 직접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이하 가족대책위)는 5월 29일부터 서울 지하철 서울역·여의도역·신촌역·영등포역 앞에서 길거리 ‘1000만인 서명운동’에 나섰다. 이 자리에는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 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도 함께했다.

이날 단원고 유가족 유연민씨는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앞에서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세월호 유가족입니다. 저희에게 힘을 주세요’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선 유씨의 이마에는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는 3시간 넘게 땡볕을 정면으로 맞으며 오가는 시민들에게 서명운동 참여를 호소했다.

5월 29일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앞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진상규명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 백철 기자

5월 29일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앞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진상규명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 백철 기자

유씨는 “세월호 참사는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 전 국민의 일”이라며 “과거 참사 때는 잠시 마음은 아팠지만 내 일이 아니라 금세 잊었다. 이젠 여러 단체들의 힘을 빌려 국민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아 달라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자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유가족들을 행동에 나서게 만든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는 국회다. 여야는 애당초 5월 27일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실시계획서를 통과시키기로 했고, 이에 가족대책위는 국회에서 토론 장면을 지켜보기 위해 같은 날 오후 1시에 국회를 찾았다.

유가족 “전국 돌며 1000만명 뜻 모을 것”
그러나 여야 합의가 불발로 끝나자 유족들은 국조특위 실시계획서가 통과될 때까지 국회를 떠나지 않는 한편, 각계 단체와의 연대에 나섰다. 5월 28일부터 가족대책위는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주요 노동·시민단체와 4대 종단을 직접 찾아가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 활동에 도움을 요청했다.

길거리 서명운동에 참여한 유가족 김종기씨는 “안산 분향소에서도 수많은 분들이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에 동참해주셨다. 그럼 안산까지 오시기 어려운 분들은 어떻게 하나.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의 국민들을 찾아가 설명하고 호소하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국회에서 국정조사 합의가 이뤄진 5월 29일 밤 10시쯤 버스를 타고 국회를 떠나 경기도 안산 합동분향소로 돌아갔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서명운동 목표인 1000만명이 달성될 때까지 서울시내는 물론 전국 주요 도시에서 길거리 서명운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시민단체들은 5월 1일부터 공동 기구를 꾸려(초기 이름은 세월호 참사 대응 각계 원탁회의) 가족대책위와 함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아 왔다. 시민단체들은 단원고가 위치한 안산과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매주 촛불집회를 열었지만 유가족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유가족 유연민씨는 “처음엔 촛불집회 성격이 뭔지 잘 몰랐고, 정치성향을 가진 행사인 줄만 알았다”며 “이제는 순수하게 유가족과 함께하겠다는 뜻을 가진 분들의 힘을 빌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조심스러웠던 것은 대책회의 참가단체들도 마찬가지다. 대책회의 서명위원장인 김은진 한국진보연대 교육위원장은 “괜히 우리들이 나섰다가 오히려 세월호 참사 가족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어서 4월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여러 시민단체들의 과거 전력을 들어 ‘좌파’, ‘정치단체’ 등의 공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세월호 참사 가족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걱정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시간이 지나고 세월호 참사가 단순 사고가 아니라 생명보다 이윤을 추구한 결과로 드러났다. 그래서 5월부터는 시민사회가 나서서 유족분들의 견해를 최대한 존중해 서명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책회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5월 29일까지 세월호 가족대책위와 국민대책회의는 온·오프라인에서 약 70만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2주 만에 70만명의 서명을 받은 것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라며 “6월 초까지 1차 목표로 100만명 서명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5월 24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추모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 김창길 기자

5월 24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추모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대책위도 정치구호 자제하며 공감 끌어내
길거리 서명운동에 나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촛불시민들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로 “정치색보다는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점을 꼽았다. 실제 일부 언론의 묘사와 달리 국민대책회의는 정권퇴진 등의 요구를 전면에 내걸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책회의가 사실상 ‘박근혜 퇴진’과 같은 주장을 못하게 막는다며 대책회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김성일 청년좌파 대표는 “지금의 촛불시위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의 차원에 그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가기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박근혜 퇴진’과 같은 구호가 나오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데모당’ 회원인 임미리 전 현대사기록연구원 상임이사는 “유가족을 고려해 ‘박근혜 퇴진’과 같은 강한 구호를 외치지 말자곤 하지만 실제로는 지방선거로 정권을 심판하자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 전 이사는 “어떤 구호를 하지 말자는 것 자체가 ‘정치선동’을 하지 말자는 또 다른 선동의 프레임에 말려든 것”이라며 “시민들이 유가족들의 슬픔에 공감해 촛불을 들었지만 유가족들의 뜻이라는 이유로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행동이 제한받을 순 없다”고 말했다.

일부 민주노총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지난해 12월 경찰의 민주노총 본부 침투사건 이후 민주노총이 공언해오던 ‘박근혜 정권 퇴진’ 기조가 퇴색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한 공무원노조 중앙위원은 “5월 17일 1차 촛불 때에 비해 24일의 2차 촛불 때에는 ‘박근혜 퇴진’을 언급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민주노총이 나서서 참사를 막지 못한 정권 자체를 겨냥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민주노총은 지난해 정권 퇴진의 기조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유가족분들도 일부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과 공통분모를 가지는 수준의 구호를 외치자는 것이지 무차별적으로 ‘박근혜 퇴진’을 주장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박근혜 퇴진’도, 세월호 참사 촛불집회에 대한 보수층의 색깔론도 경계했다. 단원고 학생 유가족 김종기씨는 “청와대 행진 등 정치색이 있는 행동은 거부한다. 반대로 자신들에 반하는 단체가 유족들을 돕는다고 거기에 색깔을 씌우는 것 역시 너무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활동이라면 진보단체, 보수단체를 가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뜻을 함께하는 시민단체라면 이념과 무관하게 나서달라는 것이다. 유가족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거리 행동에 나서면서 촛불집회는 6월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유가족 사이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촛불을 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유가족 김종석씨는 “지방선거와 월드컵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세월호가 잊혀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참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유지시켜야 한다. 정말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유족들이 직접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촛불을 들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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