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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 특수관계인에 ‘아리송한 기부’

입력 2014.06.02 19:40

육영사업에 뜻이 있어서 자기 돈 내고 학교 설립하는 데 무어라 시비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남의 돈을 가져다가 육영사업에 쓰는 부분이다. 그건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범죄행위다.

남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남을 돕는 일에 써달라고 돈을 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본인이 직접 그런 일을 하겠다고 남을 돕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를 만드는 것은 더 좋은 일일 것이다. 정말 그런가.

다음 사례를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이 좋은 학생을 가르쳐 영재를 길러내야겠다는 뜻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학교를 설립하고 이 학교에 (정확히는 이 학교를 거느리고 있는 학교법인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가 돈을 기부하도록 했다. 본인은 이 학교법인의 이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 학교는 학생을 뽑아서 가르치고 있다.

하나금융 임직원 자녀들 특례입학
이 행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우선 좋게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사회적으로 칭송받아야 할 좋은 일이고, 이런 좋은 일에 쓰자고 기부를 하는 것도 좋은 일이고, 또 기부를 장려하는 것도 딱히 나쁘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 좋은 일 하는 데 돈 좀 내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문제겠는가.

1982년 동방사회복지재단으로 출발한 삼성생명공익재단의 당초 목표는 어린이집을 만들어주는 사업이었지만 현재는 병원사업이 사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삼성생명공익재단은 리움박물관, 삼성어린이교육문화센터 건물(사진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 정지윤 기자

1982년 동방사회복지재단으로 출발한 삼성생명공익재단의 당초 목표는 어린이집을 만들어주는 사업이었지만 현재는 병원사업이 사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삼성생명공익재단은 리움박물관, 삼성어린이교육문화센터 건물(사진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 정지윤 기자

그러나 이 행위는 특정한 경우에 엄격하게 금지되는 행위다. 우선 기부금의 출처가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일 경우다. 자기가 육영사업에 뜻이 있어서 자기 돈 내고 학교 설립하는 데 무어라 시비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남의 돈을 가져다가 육영사업에 쓰는 부분이다. 그건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범죄행위다.

예를 들어 회삿돈을 가져다가 쓰는 것은 회삿돈의 주인 되는 사람들의 허락을 받지 않는 한 일종의 절도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회삿돈의 주인은 주주다. 따라서 이런 형태의 기부는 주주총회 또는 그 대리기구인 이사회의 승인을 얻지 않는 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회삿돈의 사실상의 출처가 채권자들인 경우가 그런 경우다. 예를 들어 이 회사가 은행이라면 은행 돈의 대부분은 사실상 예금자 돈이다. 그런데 이사회가 덜컥 이런 결정을 맘대로 내리는 것이 옳은 것인가.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에는 무엇인가 찜찜하다. 특히 이사회의 멤버가 학교법인의 이사장으로 행세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지원의 대가가 순수한 공익적 목적이 아니라 임직원 자녀들이 그 학교에 특례 입학하는 것과 연계되어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실제로 우리나라 금융 관련 법령은 금융기관이 이런 경우에 ‘기부’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것은 순수한 기부가 아니라 대가성을 노리고 하는 거래에 불과한데, 그 거래의 조건이 금융회사에 현저하게 불리하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이 사례는 거의 정확하게 하나금융지주의 하나고등학교 불법지원 문제와 일치한다. 그런데 검찰은 똑 부러진 설명도 없이 관련인에 대한 고발을 각하했다. 검찰은 정말 모든 기부는 다 면죄부를 주어 마땅할 정도로 좋은 행위라고 보았단 말인가.

또 다른 예를 들어 보자. 병을 고치는 일은 좋은 일이다. 병을 고치는 일에 써 달라고 돈을 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병을 고치는 일을 하는 공익재단에 돈을 기부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정말 그럴까.

어린이 집을 지어준다는 좋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금융기관 주식을 출연하여 만든 재단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 재단의 이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과 이 재단이 합하여 지배하고 있는 금융기관을 동원해서 이 재단에 기부를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재단은 당초 어린이집을 만들어주는 사업을 하다가, 나중에는 돈을 받고 진료를 해주는 병원 사업을 하게 되었다. 병원 사업이 날로 몸집을 키워서 나중에는 이 수익사업이 전체 재단 사업의 대부분이 되고, 당초 목적이었던 어린이집 사업은 쥐꼬리로 쪼그라들었다.

이 병원은 공교롭게도 해당 금융기관이 소유한 건물에 세를 들어 살고 있다. 재단은 금융기관을 지배하고, 금융기관은 재단에 기부를 하고, 재단은 그 돈으로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 어린이집 사업은 별것이 없고, 재단은 돈이 남아서 계속 돈을 쌓아두고 있다.

설립목적 도외시한 수익사업 치중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아니다. 우리나라의 금융규제 체계에 의하면 원래 특수관계인에 대해 금융기관이 기부를 하거나 현저한 정도로 특혜를 주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런데 이 경우 순수한 공익 목적의 기부가 너무 위축될 수 있다고 하여 작년에 정부는 시행령을 개정해서 순수한 공익적 기부행위에 대해서는 일부 면죄부를 주었다. 그러나 위의 사례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당초 설립 목적은 사실상 도외시한 채 수익사업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또 이미 다 알아차렸겠지만 이 사례는 삼성생명공익재단에 대한 삼성생명의 과거 기부행위와 매우 흡사하다. 현재 삼성생명은 삼성생명공익재단에 대한 기부를 중단한 상태다. 그러나 과거 기부행위에 대한 감독당국과 사법당국의 판단은 아직 남아 있다.

비영리 공익법인의 오남용 사례는 그 밖에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오남용 사례는 그것이 상속세 및 증여세를 합법적으로 절약하면서 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승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현재 특정 회사 주식을 5% 이내에서 공익법인에 기부할 경우 상속세 또는 증여세를 완전 면제받는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상속자나 증여자가 공익법인의 이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경우 사실상 ‘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공짜로 상속 및 증여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심지어 동일인에 대한 규제도 없어서 재단을 여러 개를 만들어서 각 5% 이내로 기부하면 이론적으로는 한도 규제 자체를 회피할 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하루빨리 동일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산정할 때는 서로 동일한 지배관계 내에 있는 공익법인의 지분은 합산하도록 하고, 더 나아가 이것이 ‘지배권의 부당한 상속’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공익법인의 보유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 행사를 일정 범위 내로 제한하는 방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부는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얼마든지 나쁜 목적을 추구할 수도 있는 행위이다. 그것을 좋은 행위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부가 진정으로 공익 목적에 사용되고, 기부자가 당초의 기부 취지를 명확히 하는 것 이외에는 그 기부금의 활용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통제해야 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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