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핵심은 진정성에 있다. 그 진정성은 자발성에 있으며, 무엇보다 사과에 대한 책임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지난 5월 19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를 했다. 세월호의 참극을 빚은 지 33일 만의 사과이다. 대통령은 이번 참사의 최종 책임자임을 자인하며,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세월호의 유족들 앞에서 사고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겠다”던 입장에 비하자면 진일보한 사과였다.
대국민 담화문을 읽는 중에 눈물까지 흘린 대통령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국민들이 그 눈물의 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국민들의 불경스러움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우선 엄단과 사과의 수순이 뒤바뀌었고, ‘최종 책임자’라는 말에 따라야 할 책임의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눈물만 있고, 책임의 알맹이가 없는 사과를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번 세월호의 참사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눈에 비친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를 모르거나, 서투르다고 보여질 수밖에 없다.
5월 19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 앞에 모여 세월호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문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사과를 모르는 지도자의 불행
유감스럽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대부분의 성장기를 일반 서민들의 삶과 격리된 청와대에서 보냈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게 알게 모르게 익힌 정치적 학습 가운데 사과라는 과목은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장기집권의 기간 중에도 국민에게 사과를 한 적이 없다. 1970년에 발생한 와우 아파트의 붕괴 사고로 33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도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불도저’ 김현옥을 ‘엄단’하였을 뿐이다. 월남전에 연 31만2853명을 파병하여 그 가운데 4624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맹방인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로 인해 후유증을 앓고 있는 파병 병사들에 대해서도 사과하지 않았다. 1973년의 1차 오일쇼크에 이어 1978년의 2차 오일쇼크에도 아무런 대책 없이 그 충격을 고스란히 국민들이 감당하게 한 뒤에도 전기를 낭비하는 국민들을 야단칠 뿐이었다.
사과는 아니지만, 그 비슷하게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 머리를 숙인 적은 있었다.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 앞에 “다시는 국민들에게 표를 애걸하지 않겠다”고 사정을 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과연 자신의 말을 지켰다.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만들어 아예 국민들이 투표를 하지 않게 하여, ‘다시는 국민들에게 표를 애걸’할 필요를 ‘발본색원’하였던 것이다.
방현석의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라는 소설에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국가지도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누나를 투표일까지 발이 부르터지도록 10월 유신 홍보물을 들고 가정방문을 다니게 만든 박정희는 정작 찬성표를 달라고 누구에게도 부탁하지 않았다. 돼지에게 부탁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다만 경고했다.
‘만일 국민 여러분이 헌법 개정안에 찬성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것을 남북대화를 원치 않는다는 국민의 의사표시로 받아들이고 조국통일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것임을 아울러 밝혀두는 바입니다.’
계엄령보다 더한 조치를 하겠다는 위협이었다. 순종하지 않는 돼지는 밥통을 빼앗고 때리겠다는 분명한 경고였다.”
고등학교 시절의 한문 선생님이 생각난다. 서예 실력도 출중한 그분은 학생들 앞에서 웃는 법이 없었다. 2년 동안 수업을 받으며 나는 한 번도 그분이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그분이 이런 훈계를 했다. 나중에 교사가 되면 명심하라며 “교사는 학생들 앞에서 웃으면 위엄을 잃어 제대로 가르칠 수가 없다”고 일러주었다. 일제시대 때 칼을 찬 스승에게서 교육받은 그분은 아마 제자들에게 웃음은 물론이고, 사과도 한 적이 없었다.
사과를 모르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란 박근혜 소녀는 무엇을 배웠을까. 이번 세월호의 참사를 수습하는 정부의 대응을 바라보며, 그 소녀의 학습 결과물이 새삼 걱정스러워진다. 눈물까지 흘리며 스스로 이번 사건의 ‘최종 책임자’임을 자인했음에도 여전히 그러한 걱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사과의 핵심은 진정성에 있다. 그 진정성은 자발성에 있으며, 무엇보다 사과에 대한 책임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입으로는 ‘최종책임자’로서의 사과를 말하면서도, 그 이후에 뒤따르는 책임은 해경과 청해진해운 선주와 관피아 공무원들에게 돌려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책임이 없는 사과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유족과 국민들의 슬픔은 무엇으로도 보상되기 어렵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우려되는 것은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대한민국호’의 앞날이다. 눈앞에서 국가 부재와 정부의 무능함을 지켜본 국민들이 지니게 된 국가 불신감도 역시 쉽게 해소될 수 없다. 그야말로 회복 난망한 국가적 재난이다.
책임 있는 국가지도자라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과오를 통감하며 자신의 정치적 진퇴를 포함한 책임의 행동을 보여야 할 것이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도 더 먼저 일어나는’ 민심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의 충격도 크지만 국민들이 이번에 갖게 된 회의와 불신은 국정원 대선 개입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부터 배태되어 온 것이다. 항차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지도자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국민에게 불신되는 국가가 어떻게 안정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은 연일 시청광장과 청와대 주변에 모여 촛불을 켠 시민들이 외치는 ‘대통령 퇴진’이라는 구호를 일부 전문 시위꾼이나 정치세력의 선동이라고 몰아쳐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신의 생업과 가사를 미루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이 무엇이 생기고 나중에 무슨 득을 본다고 전문적으로 시위에 나서겠는가. 그러한 시선이야말로 대통령의 사과를 더욱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애용해 온 ‘적폐와 엄단’이라는 말도 진정한 사과와 등치될 수 없는 단어이다. 오래 전부터 이어온 잘못이라 지금의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며, 나와 상관없는 아랫것들이 일으킨 잘못을 엄단하면 된다는 생각이라면 그것에서 어떻게 진정한 사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번에 눈물까지 흘리며 국민 앞에 머리 숙인 사과가 추락하는 지지도를 만회하며, 일시적으로 위기에 몰린 수세를 모면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것은 대통령 자신에게나, 이 나라의 국민에게나 대단히 위험하고 불행한 일이다.
그리하여 이번의 사과가 마지못해 옥루를 떨구며 국민들에게 ‘사과를 내려주신’ 성은이거나, ‘돼지를 향해 밥통을 빼앗고 때리는’ 위협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시백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