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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강요당하는 수많은 세 모녀들

입력 2014.04.14 18:16

어느날 세 모녀는 얼싸안고 엉엉 울었으리라. 고통스러운 삶을 더 이상 유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 택할 수 있는 건 품위 있는 죽음뿐이었다.

지난 3월 마지막 토요일, 전교조 초대 위원장 고 윤영규 선생님 9주기 추모행사가 광주 5·18 묘역에서 열렸다. 나는 그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교육운동 초기에 함께했던 분들과 함께 주최 측에서 마련한 버스에 올랐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이 반가웠다. 그런데 80년대 중반 교육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 30~40대 젊은이들이 모두 초로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주고받는 얘기도 뜨거운 현실 문제보다는 앞으로 남은 날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것들이었다.

나도 촉촉이 봄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죽음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그때 손전화 진동이 울렸다. 요즘 웬만한 건 문자나 카톡으로 하고 음성통화는 귀한 데다가 전화 오는 횟수도 줄어 모처럼의 전화가 반갑기도 했다. 저장된 번호는 아니었다. 누굴까? 반신반의하며 전화를 받았다.

세 모녀가 자살한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주택 반지하 방. 지난 2월 28일 찾은 이 집 텔레비전 위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찍은 가족사진이 놓여 있었다. / 박은하 기자

세 모녀가 자살한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주택 반지하 방. 지난 2월 28일 찾은 이 집 텔레비전 위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찍은 가족사진이 놓여 있었다. / 박은하 기자

“여보세요. 여긴 ○○보험회산데요.”

모르는 여성의 목소리는 활기찼지만 내 기분은 별로였다.

내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속사포처럼 말이 날아왔다.

“아버님, 지금 들고 계신 암보험은 80세까지만 보장이 되거든요. 아버님 혈압약 드시는 거 상관없이 100세까지 보장되는 보험으로 바꿔드릴 수 있어요 아버님!”

그 쪽은 내 나이와 병력 등 내 개인정보를 훤히 알고 있는 듯했다. 한편으론 괘씸한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벌써 이렇게 됐구나 생각하니 안타깝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주민센터로부터 공문 형식의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내가 다음달이면 만 65세가 되니 노령연금 등 해당자는 미리 신고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나도 이젠 어쩔 수없이 ‘지공대사’(지하철 공짜 대상)가 되는구나, 이젠 슬슬 죽을 준비를 해야 되는구나 생각하며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헌법상의 권리인 자기결정권
올해는 4월 20일이 기독교 교회력으로 부활절이다. 예수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산 것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실제로는 예수가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민중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형을 받으며 죽어간 일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철저히 인간의 기본권으로서의 자기결정권에 기반하고 있다. 성경 기록자들에 따르면, 예수는 죽기 전에 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피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결국은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고 실천에 옮긴 것으로 되어 있다. 전태일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의 노동 현실과 처참한 노동자의 삶을 고발하고 알려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자기희생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과감히 분신을 결단했다.

우리는 이러한 죽음에 어떠한 법이나 윤리, 도덕의 잣대도 들이대지 않는다. 그 행위가 누구의 억압이나 간섭도 없이 이루어졌고, 그 내용이 철저히 이타적 공익에 부합함은 물론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삶을 존경하는 차원을 넘어 따라 배우려는 모범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자기결정권이란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행복을 추구하려는 헌법상의 권리이다. 국가권력을 비롯하여 그 누구로부터도 간섭 없이, 일정한 사적 사항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의적 권리를 말한다. 그런데 가장 큰 쟁점이 되는 것은 역시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다. 의학적으로는 존엄사라는 말로 통용된다. 전혀 깨어날 가망성이 없는 의식상실 상태의 환자가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생명유지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2009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에 의해 ‘환자의 신체 침해를 수반하는 구체적인 진료행위가 환자의 동의를 받아 제공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진료행위를 계속할 것인지 여부에 관한 환자의 결정권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는 판례 수준으로 소극적 안락사를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존엄사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가장 적극적으로 행사된 사례가 바로 스콧 니어링의 죽음이다. 니어링 부부는 복잡한 도시 뉴욕에서의 단칸방 생활을 청산하고 산골로 내려가 손수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산다. 어느 해 그는 언젠가 맞을 죽음에 대해 ‘이웃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자기의 소회와 각오를 밝힌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이 찾아오면 죽음의 과정이 다음과 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어떤 의사도 주위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죽음에 대해 무지한 것처럼 보인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지붕이 없는 열린 곳에 있었으면 한다. 죽음이 다가오면 음식을 끊고 마시는 것도 끊고자 한다. 어떤 장례식도 열려서는 안 된다. 어떤 식으로든 목사의 설교, 그 밖의 다른 종교인이 장례를 주관해서는 안 된다. 화장이 끝난 뒤 재를 거두어 우리 땅의 나무 아래 뿌려주기 바란다.”

가난의 벽에 절망, 생을 정리하다
그는 100살이 되기 한 달 전 유서를 다시 써서 부인에게 맡기고 단식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1983년 가장 품위 있고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했다. 스콧 니어링의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은 ‘더 이상 산다는 것이 어떤 내용도 지니지 못한다’는 판단이라고 유서에서 고백하고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의미한 삶에 대한 포기의 자기결정이 존엄한 인간의 태도라는 것이다.

결이 다르긴 하지만, 최근 나는 가난의 벽 앞에서 절망하며 스스로 생을 정리한 서울 송파구 세 모녀의 죽음도 또 다른 존엄사라고 생각한다. 60세의 어머니와 35·32세의 두 딸, 8년 전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시며 빚만 남겼다. 딸 둘은 고혈압·당뇨 등으로 일을 할 수 없는 환자였고, 어머니가 식당 주방 아르바이트로 겨우 가족의 삶을 유지시키고 있었다.

장래에 대한 희망이 조금도 없는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그 고통과 절망감이 오죽했을까? 죽음의 유혹은 이미 그들 곁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유일한 노동력인 어머니가 팔을 다쳐 식당 일을 못하게 되고,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손 벌릴 데가 없었다. 동사무소나 다른 기관도 찾아봤지만 형식 요건이 되지 않았다. 반경 500m 안에 크고 작은 교회가 10개도 넘었지만 아무 상관없는 닫혀 있는 건물에 불과했다.

어느날 세 모녀는 얼싸안고 엉엉 울었으리라. 도대체 길이 없는 막힌 절벽. 넘을 수도 없었지만 어찌어찌 넘는다 해도 기다리는 건 절망밖에 없다고 판단했으리라. 고통스러운 삶을 더 이상 유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 택할 수 있는 건 품위 있는 죽음뿐이었다. 남은 돈으로 죽기 전 마지막 여행도 할 수 있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하면 밀린 집세와 공과금을 낼 수 없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주인아주머니께 짧은 글을 남겼다. 그리고 그것이 유서가 되었다.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짧은 글 속에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두 번이나 들어갔다. 이 나라는, 우리 사회는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는데, 그들이 오히려 미안해 하고만 있다. 어느 전직 대통령은 수백억의 나라와 사회에 대한 빚을 갚지 않고 떵떵거리고, 어느 재벌은 일당 5억짜리 노역을 살다가 들통이 나는 이런 비상식의 사회에서, 우리 주변의 수많은 가난한 세 모녀는 오늘도 존엄사를 강요당하고 있다.

<이수호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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