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21조와 한국도 가입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9조와 21조에서 보장되고 있는 표현과 집회·결사의 자유는 탈북민이건 노동자건 일반 시민이건 존중되어야 한다.
지난 3월 6일 북한이 국내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자, 청와대는 “표현과 집회·결사의 자유를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제한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답변했다. 지극히 원론적인 답변이건만 어째서 이리 낯설고 어색할까.
표현과 집회·결사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다. 따라서 이러한 청와대의 답변은 문자상으로는 잘못된 점이 없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석연찮은 구석이 없지 않다. 우선 ‘대북 전단 살포’ 행위는 남북 간에 체결한 상호비방 금지의 약정에 어긋나는 일이며, 아무리 민간단체의 일이라도 안보와 직결되는 남북관계와 공공의 이익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참으로 너그럽고 여유로운 반응이다. 궁할 때마다 안보를 둘러대며 국민을 얼러대던 정부가 아니던가.
그동안 정부가 광장이나 거리로 내몰린 시민들이나 노동자들에게는 그 표현과 집회·결사의 자유라는 걸 얼마나 존중해 왔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표현을 업으로 삼는 문인과 언론인의 예를 보자. 지난 대선을 앞두고 시국선언을 한 젊은 작가 137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소장하고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안도현 시인이 재판을 받았으며, 서울의 소리 백은종 편집인은 박지만과 그의 5촌 조카들 두 명의 사망사건과 관련된 선데이저널 기사를 인용 보도한 일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나꼼수 방송의 주진우 기자도 이와 관련된 보도로 재판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유명 인사들이야 언론의 관심이라도 받는다지만, 일반 시민들은 소리 소문도 없이 경찰서와 검찰에 불려 다니며 갖은 고생을 겪고 급기야 재판까지 받는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집회의 자유는 더욱 옹색하다.
지난해 4월. 개성공단 가동이 중지된 것과 관련해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에서 김정은을 규탄하는 집회를 여는 보수단체들. | 김기남 기자
일반시민과 노동자에게는 엄격한 정부
부당한 해고를 알리기 위해 대한문 앞에서 집회를 이어온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무시로 분향소와 현수막이 철거되었고, 뜬금없이 조성된 화단에 밀려 집회 공간마저 빼앗겼다. 밀양 송전탑 설치에 반대하는 할머니들이 내건 현수막은 제한되고, 뒷산으로 향하는 발걸음마저 금지되었다. 강정에서는 해군기지 공사에 반대하는 집회와 현수막이 무단히 제한되고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연행되었다. 노동자들도 모르게 공장을 폐쇄한 채 사라진 사장의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른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가택침입 혐의로 연행되는 일들만 봐도 지금의 정부가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와 결사,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얼마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에 비하자면 탈북민들이 대북 비방 전단을 대형 풍선에 매달아 살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내전보살처럼 너그럽기만 하다. 헌법 21조와 한국도 가입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9조와 21조에서 보장되고 있는 표현과 집회·결사의 자유는 탈북민이건 노동자건 일반 시민이건 존중되어야 한다. 그 권리와 자유가 정부의 입맛에 따라 제한되거나 선택된다면 문제가 있다.
형평성 없는 표현과 집회·결사의 자유도 문제지만, 또 다른 문제는 탈북민들의 사회적 위상이다. 새터민이라 불리는 탈북민들은 사회적으로 경계인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새터를 찾아 이주하기까지 겪었을 고초는 필사적인 것이다. 월경에 성공한다 해도 이역인 중국에서 감시의 눈을 피해 살아야 하는 현실은 고달프며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정든 고향과 가족들과 헤어져 사선을 넘어야 하는 탈북 새터민들의 고통은 남북 분단이 근원적인 원인이라 하겠다.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며, 더 나아가 하나의 국가로 통일이 된다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고통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탈북 새터민들이야말로 남북 대결구도의 희생자들이라 하겠다.
풍선 전단이 ‘통일대박’에 도움될까
이런 탈북 새터민들이 지금처럼 남북 대결의 무기가 되어, 분단을 공고히 하며, 전쟁의 위기를 고조시키는 방편으로 이용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과 북의 이질적인 체제를 모두 겪은 이들이야말로 남북 간의 간극을 좁히고 대화의 물꼬를 터 나가는 다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겪은 분단의 고초를 종식시키기 위해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하고 통일을 앞당기는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마땅하다.
풍선에 매달아 보내는 전단은 과연 어떤 성과를 얻게 될 것인가. 자신들을 비방하는 전단을 읽은 북한의 권력자들이 잘못을 통회하며 평화통일을 위해 나서게 될까. 아니면 달러가 매달린 전단을 읽은 북한의 인민들이 봉기하여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기를 바라는 것일까. 그러한 바람대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나 북한 정권이 일거에 무너진다면 과연 우리가 바라는 평화통일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망상에 가까운 상상이지만, 북한이 통제 불능의 권력 공백 상태가 되는 걸 가정해 보자. 과연 무주공산이 된 북한을 대한민국이 접수하는 것을 접경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구경만 하고 있을까.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한민국이 통일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그들의 코앞까지 진출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초등학생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만에 하나 그러한 행복한(?) 시나리오가 현실로 이루어진다고 하자. 그럴 경우에 대한민국 정부는 수천만의 북한 동포들을 맞아들일 준비와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점진적인 통일이 된다 해도 엄청난 통일 비용이 소요될 상황에서 그러한 급격한 북한 정권의 붕괴에 대비할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준비가 갖춰져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가설이라 해도, 남북 간의 평화통일은 충분한 대화와 경제적 격차를 해소하여 통일 이후의 경제적 비용과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점진적인 노력과 준비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탈북단체가 보내는 전단은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 과연 그것이 정부의 말대로 ‘표현과 집회·결사의 자유’를 둘러대며 팔짱을 끼고 구경할 문제일까. 시민들의 정당한 비판이나 노동자들의 집회에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정부가 민족의 미래를 결정하는 남북 안보의 문제를 어떤 뱃심으로 그리 여유롭게 대처하는지 심히 의문스럽기 그지없다. 행여 탈북단체들의 북한 비방 전단에 은근한 동조의식을 느껴서 겉으로는 만류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실로 위험하고 유치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한쪽에서는 비방의 전단을 풍선에 매달면서, 한쪽에서는 ‘통일 대박’을 말하는 이 비상식의 처사에 대해 스스로 저울의 추를 가늠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이시백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