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애가 LPGA에 회원 자격을 반납하고 일본 투어에 전념하기로 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상금왕에 올랐던 신지애는 올 시즌 JLPGA 상금왕을 목표로 잡았다.
“(신)지애는 왜 안 나온대요?”
지난달 말 태국 촌부리 시암골프장 올드 코스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세 번째 대회인 혼다 타일랜드. 삼삼오오 모인 한국 선수들은 신지애의 근황에 대해 궁금해 했다.
예정대로라면 신지애는 그보다 2주 앞서 열린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에 전년도 우승자 자격으로 출전해야 했다. 그러나 시즌 세 번째 대회가 열리도록 신지애는 두문불출했고, 그의 근황을 아는 한국 선수는 거의 없었다.
그 시각 신지애는 미국 팜스프링스에서 막바지 동계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의 몸은 미국에 있었지만 마음은 일본을 향해 있었다. 신지애는 이미 지난 1월 LPGA에 회원 자격을 반납한 상태였다.
혼다 타일랜드에서 만난 LPGA 관계자는 “시즌 개막 전인 1월 중순 신지애가 전화와 이메일로 회원 자격을 반납했다. 절차에 따라 홈페이지 등에서 신지애의 이름을 모두 삭제한 상태”라고 확인해줬다.
신지애가 지난해 8월 영국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 골프장에서 열린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티샷을 날리고 있다. | AP연합뉴스
슬럼프 이후 일본 투어로 마음 기울어
신지애가 미국 투어에서 마음이 떠났다는 조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감지됐다. 지난해 10월 국내에서 열린 하나·외환 챔피언십 당시 신지애의 부친 신제섭씨(53)는 “지애는 미국 투어에서 이룰 만큼 다 이뤘다. 이제는 새로운 도전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에는 LPGA 투어 최고 우승상금(70만 달러·약 7억5000만원)이 걸린 최종전 CME 타이틀홀더스에 불참하고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 리코컵에 출전하면서 뭔가 중요한 변화가 있음을 암시했다.
그의 매니지먼트사는 “2014년 시즌 일본 투어 카드 유지를 위한 대회 수를 채우기 위해 일본 투어 최종전에 출전했다”며 “2014년 시즌부터 미국보다는 일본 투어에 비중을 두고 활동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말 그대로 일본 투어에 비중을 높이겠다는 이야기만 나왔을 뿐 미국 투어 포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사실상 신지애는 이미 그 때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고 털어놨다. 신지애는 “미국 투어 포기에 대한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왕 일본 투어의 비중을 높이기로 한 이상 한쪽에 올인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말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신지애의 목소리는 마음의 짐을 털어낸 듯 밝았지만 오랜 고심의 흔적도 묻어나왔다.
신지애가 미국 투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슬럼프를 겪은 이후였던 것으로 보인다. 2008년 비회원 신분으로 LPGA 투어 3승을 거두며 돌풍을 일으킨 신지애는 2009년 LPGA 투어에 정식 데뷔해 2010년까지 8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그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2011년 허리 부상으로 삐끗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승 없이 2년여간 침묵하는 사이 박인비(26·KB금융그룹), 스테이시 루이스(29·미국), 수잔 페테르센(33·노르웨이)의 ‘3강 구도’는 점점 굳어졌고, 신지애에 대한 평가는 냉혹해졌다.
전형적인 A형 스타일이라고 자신을 표현하는 신지애는 “주위의 평가와 기대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헝그리 정신이 사라졌다’, ‘한물 갔다’는 이야기에 속이 상했고, 한때는 수면제 없이 잠을 못잤다”고 털어놨다.
2012년 다시 2승을 거두며 부활했지만 예전같지만은 않았던 것도 그의 결심을 굳힌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신지애는 2013년 시즌 개막전인 한다 ISPS 호주여자오픈에서 11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시즌 초반 허리 통증이 재발해 몇몇 대회를 건너뛰었다.
초크라인(Chalk Line)이라고 불릴 만큼 정확도를 앞세운 샷이 장점이었지만 투어 전장이 점점 길어지면서 스윙을 교정했던 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독이 됐다.
2009년 말 상금랭킹 1위, 2010년 세계랭킹 1위에 섰던 신지애는 지난해 말 상금랭킹 22위, 세계랭킹 14위까지 밀려났다. 신지애는 “LPGA 투어에서 활동하면서 몸에 많이 무리가 갔고 힘이 들었다. 일본에서 좀 더 즐겁게, 내가 원하는 골프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좀 더 즐겁게 골프를 하고 싶었다”
LPGA 투어가 화려한 메이저리그라면, JLPGA 투어는 미국에 비해 작지만 실리가 있다. 올 시즌 JLPGA 투어의 상금액(32억5000만 엔·약 337억원)은 미국(5630만 달러·약 600억원)보다는 작지만 대회 수는 37개로 오히려 미국(32개)보다 많다.
신지애가 지난해 2월 호주 캔버라GC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개막전에서 어프로치 샷을 한 뒤 공을 쳐다보고 있다. | AP연합뉴스
미국 투어는 전 세계를 도는 강행군 속에 한 해 2억원가량의 투어 비용이 들지만, JLPGA 투어는 이동거리가 짧고 경비도 절반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세계 최고 선수들이 샷 대결을 벌여 상금을 따내는 미국에 비해 일본 투어는 같은 실력이라면 더 경쟁력도 높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상금왕에 올랐던 신지애는 2008년 해외로 시선을 돌리면서 미국과 함께 일본 투어도 노크했다. 2008년부터 간헐적으로 일본 투어에 출전해 4승을 거뒀다.
신지애의 한 측근은 “신지애는 일본 투어에 대한 애정이 많다. 미국에 비해 투어 환경이 낯설지 않고 팬들도 많다. 그런 점들이 신지애가 일본 투어에 집중하기로 결심을 한 데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일본 투어의 시드 유지 조건인 연간 20% 이상 대회에 출전했던 신지애는 올 시즌 가능한 한 많은 대회에 나서기로 했다. LPGA 투어 회원 자격을 반납하고도 스폰서 초청이나 세계랭킹으로 연간 11개 정도의 미국 대회에 나설 수 있지만 이왕 한쪽에 올인하기로 한 이상 당분간 미국 쪽은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JLPGA 투어의 풀 시즌 인정 조건은 ‘60% 이상 대회 출전’으로, 규정대로라면 올 시즌 37개 대회 중 23개 이상의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팬 카페 회원들 “새 도약 기대” 응원
일본 측에서는 신지애의 행보를 반기는 분위기다. 일본의 주요 매체들은 2014년 시즌을 전망하면서 “메이저 대회 2승 등 LPGA 투어 11승을 거둔 신지애가 일본 투어에 전념하기로 했다. 전미정, 이지희 등과 함께 올 시즌 한국 선수들의 활약에 앞장설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JLPGA 투어 통산 17승을 거둔 이지희(35)는 “미국과 일본을 오가는 것은 체력뿐 아니라 경기력에도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신지애로서는 중요한 결단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신지애의 팬 카페인 <파이널 퀸 신지애> 회원들도 그의 결정에 대해 응원을 보내는 분위기다. 한 팬은 “조금 놀랐지만 신지애 프로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도약을 하길 바란다”는 글을 남겼다.
물론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LPGA 투어를 해설하는 임경빈 J골프 해설위원은 “신지애는 작은 키(153㎝)를 극복하고 세계 정상에 섰던 아이콘이다.
지난해에도 우승했고 전성기를 지난 것도 아닌데 갑자기 회원 자격을 반납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신지애의 부재로 LPGA 투어 내 한국의 영향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지난 2월 말로 5년간 몸담았던 미래에셋과 계약이 끝나 후원사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출 빈도가 약한 일본 투어에 진출해 계약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이야기도 나온다.
엇갈리는 평가를 뒤로 하고 신지애는 일본 투어 시즌 개막에 맞춰 3월 초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과 미국에서 상금왕에 올랐던 신지애는 올 시즌 일본 투어 상금왕을 목표로 잡았다.
신지애는 “오랜 고민을 하면서 팬들과 주위의 시선에 대해 신경이 쓰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정을 한 이상 후회는 없다. 어떤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신지애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는지 아닌지는 이제 오롯이 그의 몫이 됐다.
<이지연 중앙일보 체육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