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 인하가 한시적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연중 그린피가 꾸준히 저렴한 가격으로 유지될 때 골프 인구를 늘릴 수 있다.
현재 대중 골프장의 18홀 평일 그린피는 8만원 선. 그러나 몇 년 안에 그린피 5만원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4일 전북 군산의 군산CC. 회원제(18홀)를 제외한 54홀짜리 대중 골프장의 클럽하우스는 라운드를 즐기려는 골퍼들로 북적였다.
서울에서 3시간 정도 거리인 지방 골프장에 비수기인 겨울, 그것도 평일 오후에 이런 장면이 연출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올해 이 골프장에서는 주말을 제외하고도 한 달에 보름 이상 이런 상황이 반복됐다.
지난해 12월부터 평일 9만원이었던 그린피를 4만5000원으로 인하하는 ‘반값 골프’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내장객이 크게 늘었다. 숙박을 포함한 1박2일 36홀 패키지를 10만원에 판매했는데, 하루 평균 40개 정도가 팔려 짭짤한 재미를 봤다.
특히 과거 특정 요일, 시간대에 이뤄졌던 할인 형태를 버리고 평일 전 시간대에 걸쳐 동일한 조건의 할인 정책을 펴면서 대박을 쳤다. 군산CC의 서종현 이사는 “겨울 날씨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반값 골프’를 시행하면서 예년과 달리 정신없이 바쁜 겨울을 보냈다”고 말했다.
비수기인 겨울 ‘반값 골프’ 행사 중인 대중 골프장을 찾은 골퍼들이 경기를 진행하고 있다. / 군산CC 제공
비수기인 겨울엔 원래 그린피가 저렴해진다. 그동안 5만원대 그린피를 선보인 곳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4만원대 그린피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그린피가 점점 저렴해지는 이유는 골프장은 과잉 공급된 반면 내장객은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 골프장 그린피 파괴 보편화
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 따르면 2002년 165개소였던 골프장은 2012년 말 기준 437개소로 10년 만에 2.6배 급증했다. 반면 지난 2002년 이후 부킹 혼잡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홀당 이용객 수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대중 골프장은 지난 2002년 4955명에서 2012년 말 3831명으로 급감했다. 회원제 역시 4261명에서 3341명으로 크게 줄었다.
골프장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군산CC의 서종현 이사는 “골프장은 점점 늘어나는데 골프 인구는 정체되면서 지방 골프장의 상황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린피 인하는 지방 골프장의 생존을 위한 돌파구인 셈”이라고 말했다.
군산CC의 시도는 다른 골프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라도, 경상도 등 서울에서 먼 지방 골프장은 그린피 파괴가 보편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올 겨울에는 서울에서 1시간 30분 이내 중부권 골프장에서도 그린피 5만원 안팎을 받는 곳이 많아졌다.
서울 강남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충북 충주의 임페리얼레이크골프장은 2월 말까지 평일 최저 5만원의 그린피로 18홀을 돌 수 있다. 오전 10시 이전에 티오프 하면 27홀에 9만5000원이다.
97%의 골퍼를 위한 그린피 인하 필요
강원도 원주의 파크밸리골프장은 2월 14일까지 주중 4만원, 2월 말까지 주중 5만원으로 그린피를 낮췄다. 인근의 벨라스톤골프장도 14일까지 5만원, 2월 말까지는 6만원으로 주중 그린피를 책정했다.
여기에 인터넷 회원 가입을 하면 횟수에 제한 없이 1만원을 추가 할인해 줘 사실상 4만~5만원에 라운드 할 수 있다. 이 골프장 관계자는 “한 골프장이 그린피를 내리면 인근 골프장들도 눈치를 보면서 비슷한 수준에 그린피를 맞추게 된다”고 말했다.
일부 골프장들은 골프존(www.golfzon.com), 골팡(www.golfpang.com), 에이스골프(www.acegolf.com), 엑스골프(www.xgolf.com) 등 골프 전문 사이트와 제휴해 임박한 티타임에 한해 5만원 이하의 땡처리 그린피 제품도 선보이고 있다.
제공캐디 없는 ‘셀프 플레이’를 즐기는 골퍼들이 1인 카트를 세워두고 경기하고 있다. / 군산CC 제공
그러나 그린피가 5만원 이하로 내려갔다고 해서 모든 골프장의 내장객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골프장이 혹한, 혹서, 이른 새벽 등 내장객이 뜸한 때에만 한시적인 그린피 인하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피 5만원짜리 라운드를 하려면 극장의 조조할인처럼 꼭두새벽 티오프를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한국대중골프장협회 강배권 회장은 “현재 같은 그린피 인하 분위기는 본격적인 골프 대중화로의 초기 단계로 볼 수 있다”며 “그러나 그린피 인하가 한시적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연중 그린피가 꾸준히 저렴한 가격으로 유지될 때 골프 인구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대중골프장협회에 따르면 전국 대중제 골프장의 평일 그린피는 8만원이지만 주말 그린피는 15만원으로 여전히 비싼 편이다. 2008년 창설된 한국대중골프장협회에서는 연중 상시 그린피를 5만원대로 내리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강 회장은 “400만 골프 인구 중 회원권을 가진 인구는 3%인 12만명에 불과하다. 회원권이 없는 97%의 골퍼를 위해 그린피 인하 정책이 이어져야 한다”며 “65세 이상의 노인과 청소년에게 부가세(10%)를 면제해주는 등의 정책이 실행될 때 대중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대중골프장협회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 전국의 대중 골프장 수는 231개소. 이 중 9홀 코스와 회원제 골프장에 속한 병설 대중 골프장을 제외하면 그 수는 150여개로 확 떨어진다. 업계에서는 18홀짜리 순수 대중 골프장이 200개까지 늘어나면 연중 그린피 5만원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린피 인하만이 대중화를 위한 대안은 아니다. 대부분의 골프장에서 그린피 5만원이 무색하게 그보다 비싼 부대비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팀당 평균 10만원이 넘는 캐디피와 8만원 정도인 카트비, 식음료 비용 등을 감안하면 1인당 최소 5만원 이상을 부대비용으로 지출해야 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진정한 대중화를 위해서는 그린피를 포함한 모든 비용이 10만원 이하로 내려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대중골프장협회는 3월부터 캐디 없이 라운드하는 ‘셀프 플레이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기로 했다. 셀프 라운드는 미국의 경우 90% 이상 보급됐다. 일본도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전에는 캐디 플레이 비율이 100%였으나 현재는 셀프 플레이 비율이 80%까지 올라갔다. 반면 국내의 경우 아직까지 셀프 플레이 비율이 5% 미만이다.
‘셀프 플레이’ 비율 높여 부대비용도 낮춰야
셀프 플레이에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곳은 군산CC다. 2007년부터 ‘캐디 선택제도’를 실시한 군산CC는 라운드 비용 절감을 위해 올해부터 1인 카트 시스템을 도입했다.
지난해 12월 1만원만 내면 이용할 수 있는 1인 전동 카트 28대를 들여와 시범 운행한 뒤 1월 말 100대로 늘렸다. 2월 초에는 5000원만 내면 이용할 수 있는 수동 카트 20대를 들여왔다.
군산CC 서종현 이사는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라운드 비용에 포함된 모든 거품을 걷어냈다. 덕분에 이용객이 늘어났고 반응도 좋다”고 말했다. 군산CC는 모바일과 인터넷을 이용한 예약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1인 카트 전용 코스를 운영해 셀프 플레이를 정착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미온적이었던 다른 골프장들도 셀프 라운드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들썩이기 시작한 캐디피 인상이 원인이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18홀 이상의 국내 골프장 328개소 중 36.9%(121개소)가 팀당 캐디피로 12만원을 받았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서천범 소장은 “캐디피가 12만원이 되면 1인당 입장료를 5000원 인상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골프장은 많아지고 골프 인구는 줄어드는 상황에서 캐디피를 인상시키는 것은 골퍼의 이용을 억제해 골프장 경영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경영 수지 악화 방지를 위해 셀프 라운드 도입에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지연 중앙일보 체육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