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확 빠진 여자 골프 스폰서 구하기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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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확 빠진 여자 골프 스폰서 구하기 쉽지 않네

입력 2014.01.07 14:10

지난해까지만 해도 웬만한 여자 선수들은 스폰서를 구했다. 그러나 올해는 스폰서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여자 골프 선수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렵지 않게 스폰서를 구했다. 어디 가든 몸값도 귀하신 몸이었다. 여자 골프의 봄날이었고, 황금기였다. 영원히 봄날을 구가할 것 같던 여자 골프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경기 불황과 몸값 거품론이 대두되면서 시즌을 앞둔 스토브리그는 그 어느 때보다 꽁꽁 얼어붙었다.

“이 정도로 시장 상황이 안 좋을지 몰랐어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통산 5승을 거둔 양수진(23)은 1월 1일 조용한 새해를 맞았다. 양수진은 지난해 말 전 소속사인 정관장과 후원관계를 끝냈다. 계약기간이 1년 남았지만 계약 조건이었던 일본 무대 진출을 포기하면서 정관장과 계약을 중도 해지했다. 양수진이 프로 데뷔(2009년) 뒤 무적 신세가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양수진이 지난해 4월 경남 김해 가야골프장에서 열린 KLPGA 투어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즈에서 우승한 뒤 환호하고 있다. |  KLPGA 제공

양수진이 지난해 4월 경남 김해 가야골프장에서 열린 KLPGA 투어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즈에서 우승한 뒤 환호하고 있다. | KLPGA 제공

과거 같았으면 새로운 스폰서 문의가 줄을 이었겠지만 올해는 전화기가 조용하다. 양수진의 에이전트인 이한나씨는 “올해 스토브리그가 워낙 축소되다 보니 문의조차 많지 않아 당황스러운 상황”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양수진처럼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선수는 많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동 중인 신지애(26)도 지난해 말 미래에셋과 계약 종료 뒤 스폰서를 찾지 못했다. 

2010년 KLPGA 투어 하이트 챔피언십 우승자인 장수화(25)도 지난해 말 메리츠금융그룹과 결별한 뒤 애타게 스폰서를 찾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시즌 마지막 대회인 조선일보-포스코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이민영(22)도 아직 스폰서가 없다. 

에이전트 업계의 한 담당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웬만한 여자 선수들은 스폰서를 구했다. 그러나 올해는 스폰서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다”고 말했다.

김세영이 홀아웃하며 갤러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KLPGA 제공

김세영이 홀아웃하며 갤러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KLPGA 제공

불황 여파로 기업들 계약 신중해져
경기 불황의 여파에도 여자 프로들은 얼마 전까지 호황을 누렸다. 2000년대 초반 이후 골프단이 봇물처럼 생겨난 데 이어 2000년대 후반 금융권이 앞다퉈 후원에 나서면서 어렵지 않게 후원사를 구했다. 상금랭킹 20위권은 1억원 안팎, 투어 시드만 있어도 3000만원 이상의 계약금을 받았다.

톱 랭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김하늘(26·KT), 김자영(24·LG), 양제윤(22·LIG)처럼 상품성과 실력이 뒷받침됐다고 평가받는 선수들은 3억~4억원 정도의 계약금을 받았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2012년 10월 프로로 전향한 김효주(19)는 롯데그룹과 연 5억원씩 2년간 10억원에 인센티브와 훈련경비 등을 따로 받는 대박을 터뜨렸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업계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속된 경기 불황 여파로 기업 예산이 줄자 스폰서들은 더 신중하게 따져보고 지갑을 열었다. 그래도 톱 랭커들은 후원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기업들이 중·하위권 선수 여러 명보다 확실한 스타급 선수 한 명을 지원하려고 하면서 원하는 수준의 계약금을 받았다.

하지만 올 시즌엔 톱 랭커라고 해도 원하는 몸값을 받기 힘들어졌다. 에이전트 업계의 한 담당자는 “그동안 여자 프로 선수들의 몸값이 너무 비쌌던 것이 사실”이라며 “경기 불황의 영향도 있지만 선수들의 몸값에 대한 ‘거품론’이 대두됐다. 올 스토브리그의 불황은 선수들 몸값에 대한 거품이 확 빠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속사와 계약이 종료돼 시장에 나온 선수들은 많지만 수요는 많지 않은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도 원인이다. 올 시즌 우리투자증권, 메리츠증권, LIG 등 금융업계는 약속이나 한 듯 골프 후원을 중단 또는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계약기간이 남은 일부 선수들을 제외하고 계약이 끝난 선수들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갈 곳 잃은 선수들이 많아졌다. KLPGA 투어의 대표적인 미녀 골퍼로 꼽히는 안신애(24), 홍란(28) 등도 스폰서 시장에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올 스토브리그에는 이상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과거처럼 톱 랭커들이 선택권을 쥐고 부르는 게 값이었던 분위기는 사라졌고, 몸값을 높이기 위한 밀당도 보기 어려워졌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KLPGA 투어 3승을 기록한 김세영(21) 정도만이 계약금을 높여 재계약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12년 KLPGA 투어 상금랭킹 2위 허윤경(24)과 KLPGA 투어 통산 4승을 기록한 김혜윤(25) 등은 비슷한 조건에 재계약 도장을 찍었다고 알려졌다.

업계의 한 담당자는 “그동안에는 스토브리그가 되면 연봉협상에 진땀을 흘렸다. 그러나 올해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며 “과거에는 우승 경력이 있는 선수들을 대우했지만 이제는 1승자들이 너무 많아 기업의 관심이 많이 떨어졌다. 우승을 했어도 계약하지 못하는 프로가 적지 않을 것 같다. 상금랭킹 중·하위권 선수들은 계약만 해도 감지덕지인 분위기”라고 전했다.

오히려 투어 무대 데뷔를 앞둔 루키들의 상황이 더 낫다. 과거에 비해 예산이 줄어든 기업들이 몸값 부담이 높은 톱 랭커보다 유망주 투자를 더 선호하는 추세로 돌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잘 발굴한 유망주가 스타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기업의 홍보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올 시즌 KLPGA 투어에 데뷔하는 김민선(19)과 백규정(19)은 지난해 프로로 전향하자마자 CJ오쇼핑과 계약했다. 김민선과 백규정은 지난 2012년 세계아마추어팀선수권에서 김효주와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한 국가대표 출신이다. 

지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박세리(37)와 연간 20억원+α 후원계약을 했던 CJ는 계약 종료 뒤 신예 선수들만 후원하고 있다. 톱랭커 한 명에게 들어가는 비용으로 여러 명의 유망주를 후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유망 루키에 대한 선호는 늘어
주방가구업체 넵스는 지난해 말 국가대표 출신 박성현(21)과 고진영(19)을 영입했다. 박성현은 지난해 2부 투어 상금왕, 고진영은 3부 투어 3승을 거둔 유망주들이다. 

넵스 역시 후원 계약이 종료된 배경은(29), 김지희(20) 등과의 재계약 대신 새로운 얼굴 영입을 택했다. 업계의 한 담당자는 “톱 랭커들은 몸값도 부담이지만 관리가 쉽지 않다. 반면 신인 선수들은 키워가는 재미가 있다. ‘못쳐도 본전, 잘 쳐주면 대박’이라는 이점도 있다”고 했다.

여자 투어의 거품론이 대두되면서 남자 골프계는 상대적인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그동안 남자 선수들은 여자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이 컸다. 기업들의 후원이 여자 선수들에게 집중되면서 톱 랭커가 아니면 스폰서 시장에서 이름조차 오르내리기 힘들었다.

그러나 스타성과 재능을 겸비한 꽃미남 골퍼들이 분위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마지막 대회인 헤럴드경제-KYJ 김영주골프 투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허인회(27)는 최근 국내 모 업체와 메인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KPGA 투어 보성CC 클래식에서 우승한 최장타자 김태훈(29)과 신인왕 송영한(23)도 여러 업체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내분 등으로 투어 수가 줄어드는 침체기를 겪으면서 남자 선수들은 그동안 너무 저평가됐다”면서 “유망한 스타들이 등장하면서 남자 골프도 조금씩 침체기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지연 중앙일보 체육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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