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말해야 할 것]노조법 독소조항을 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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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말해야 할 것]노조법 독소조항을 폐하라

입력 2013.12.31 10:58

  • 백철 기자

‘불법파업’ 자의적 적용 조항 등 노동자 권리행사 막는 ‘덫’ 곳곳에

2014년 들어 여러 가지 노동 관련 법률이 새롭게 적용된다. 일단 최저임금이 4860원에서 5210원으로 오른다. 육아휴직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확대되며, 작업장 안전법규를 지켜야 하는 사업장의 범위도 확대된다. 대법원에서 통상임금의 범위를 확대함에 따라 이에 대한 법 개정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동3권, 특히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에 대해서는 10년이 넘게 크게 바뀌는 것이 없다. 으레 그렇듯 2013년이 마무리되기 직전 터져나온 철도파업은 정부에 의해 ‘불법’으로 규정됐다. 철도노조 파업이 불법이 되는 근거가 바로 현행 노조법 2조 5항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파업을 포함한 노동자의 노동쟁의는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에 한정된다. 정부는 철도 민영화가 실제 추진되는 것도 아닐 뿐 아니라, KTX 경쟁체제 도입은 근로조건과 직접적 상관이 없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보고 있다.

1997년 2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서울 종묘공원에서 민주적 노동조합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7년 2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서울 종묘공원에서 민주적 노동조합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조5항 파업범위 ‘근로조건’으로 제한
이미 2000년에 노동법 전문가 김선수 변호사는 파업의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게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불법파업’이 남발된다고 지적했다. 당시 김 변호사는 노동법 개정이나 정부의 실업정책 등 노동자들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 표명과 의사 관철의 수단으로 파업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철도노조 측은 경쟁체제 도입이 구조조정 등 근로조건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철도파업이 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철도노조는 6.7% 임금인상 조건을 내걸어 최대한 노조법 2조 5항에 합치된 모양새를 갖췄다.

한 보수 인사는 “철도노조가 철도 민영화를 빌미로 임금인상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말한 바 있다. 이 인사는 파업의 정당성 여부를 가르는 기준은 ‘급여 수준’이라며 “생존권을 위협받는 수준에 있는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선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인사의 기준에 따라 파업을 할 경우 근로조건을 내걸면 ‘밥그릇 지키기 투쟁’이 되고, 근로조건을 내세우지 않으면 불법파업이 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된다.

물론 현행 노조법에 급여 수준에 따라 파업의 권리가 제한된다는 규정은 없다. 하지만 보수언론은 온갖 핑계를 대며 파업 자체를 죄악시해 왔다. 경제가 어려우면 경제가 어려우니 파업을 자제하라고 하고, 연봉이 평균 이상인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귀족 노조’ 프레임을 동원한다. 2001년에는 “가뭄 극복에 매진해야 한다”며 파업 중단을 촉구한 사설도 있었다.

파업을 죄악시하는 논리의 근원에는 ‘법과 원칙’이 있다. 정부가 불법으로 규정했으니 잘못된 파업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특정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이후 꺼내드는 법 조항이 바로 형법상의 업무방해죄(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함)다. 파업 자체에 정당성이 없기 때문에 파업으로 이뤄진 모든 손해가 업무방해라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불법파업’을 규정함으로써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미 쌍용차 노조는 46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고, 철도노조 역시 코레일로부터 77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당했다. 2012년 대선 직후 자살한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 역시 유서에 사측의 158억원 손해배상 청구가 심한 압박이 됐다고 썼다.

불법 규정되면 거액 손배소로 이어져
대법원은 2009년 철도파업에 대해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것은 아니다”라며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경우”에 한해서만 업무방해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봤다.

또한 2010년 헌법재판소도 “쟁의행위는 단체행동권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고용주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한다”며 업무방해죄를 과도하게 적용해선 안 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정부의 ‘불법파업’ 공세를 멈추려면 국회가 대법원과 헌재의 결정에 맞게 법을 수정해야 한다. 법원의 판단이 있기 전까지 사법부가 아닌 행정부가 마음대로 파업의 불법성 여부를 단정짓고,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할 수 없도록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현재 국회에는 총 12건의 노조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야당 의원들의 낸 개정안에는 사측의 무리한 직장폐쇄를 막거나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을 더욱 보장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의 개정안에는 상급단체 노조전임자에게도 회사가 급여를 지급하도록 하는 안이 담겨 있다. 개정안들은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 또는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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