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아 연대기’와 다른 세계를 상상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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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와 다른 세계를 상상할 권리

입력 2013.12.24 14:53

이 기획을 진행하면서 가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있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가 그것이다. 우리 인간은 왜 예술을 만들었고, 또 그것을 공유해 온 것일까? 어느 역사와 사회든 예술이 없던 곳들은 없었다.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살기 시작한 이래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말과 글을 통해 시를 짓고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

예술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 살아갈 빵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존재다. 아니 인간은 차가운 이성보다는 따뜻한 느낌, 자유로운 상상과 함께 살아온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에 대한 첫 번째 규정이 물질적 생활에 관한, 두 번째 규정은 정신적 생활에 관한 것이라면, 세 번째 규정은 예술적 생활에 관한 것이다. 

인간이 감성과 상상력을 가진 존재인 한, 그것을 표현하려는 다양한 욕구들이 형상화된 게 다름 아닌 예술이다. 이런 예술은 다른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공감은 자신의 삶과 자신이 속한 사회의 선 자리와 갈 길을 돌아보게 해왔다.

인간의 감성과 상상력을 생각할 때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다. <나니아 연대기>는 아일랜드 출신의 C.S.루이스가 쓴 연작 동화다. 나니아라는 환상의 대륙 속에서 아이들이 벌이는 모험들을 다룬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은 한편으론 차분해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다소 들뜨고 분주해지는 때다. 차분히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다가오는 새해를 계획하는 시간이다. 사진은 구세군 자선남비가 등장한 연말 거리 풍경. | 정지윤 기자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은 한편으론 차분해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다소 들뜨고 분주해지는 때다. 차분히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다가오는 새해를 계획하는 시간이다. 사진은 구세군 자선남비가 등장한 연말 거리 풍경. | 정지윤 기자

이 작품은 옥스퍼드대학에서 함께 문학을 가르친 동료인 J.R.R.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함께 대표적인 판타지 문학으로 꼽혀 왔다.

<나니아 연대기>는 모두 7편으로 이뤄져 있다. 제1권 <마법사의 조카>에서 시작해 제7권 <마지막 전투>로 끝난다. 1950년대에 출간된 이 연작에서 맨 처음 발표된 작품이 제2권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The Lion, The Witch & The Wardrobe)이다.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이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은 2005년 월트디즈니사에서 앤드루 아담슨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나이든 교수 집으로 피신했던 형제·자매인 피터, 수잔, 에드먼드, 루시가 집에 있는 옷장을 통해 나니아로 들어갔다가 겪는 뜻밖의 모험을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나니아의 왕인 사자 아슬란이 자리를 비운 사이 마녀는 나니아를 황량한 겨울이 계속되는 곳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용감한 네 어린이들은 아슬란과 함께 마녀의 마법을 풀어 나니아를 구하게 된다는 게 그 줄거리다.

루이스는 영문학자이자 기독교 작가다. 무신론자였지만 유신론으로 회심한 그는 기독교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기독교 변증론의 대표적 인물이기도 하다. <나니아 연대기>의 바탕에는 기독교적 문제의식, 다시 말해 인류의 탄생과 멸망, 인간의 죄와 신의 구원 등에 대한 루이스의 생각이 깔려 있다.

물론 그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드러나게 설파하는 게 아니라 어린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암시적으로 전달한다.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요구되는 일련의 과정을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어린이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게 루이스가 이 작품을 쓴 동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니아 연대기>를 떠올리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꿈과 상상력에 관한 것이다. 이 연작은 이제까지 출간된 순서에 따라 세 편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 이어 <캐스피언 왕자>와 <새벽 출정호의 항해>까지 국내에서도 상영됐다.

루이스가 펼쳐놓은 상상의 세계와 그 안에서 계속되는 모험들은 진정 경이로운 것이었다. 영화로 만들어진 세 편의 이야기들은 시간을 달리하고 있지만, <나니아 연대기>의 전체 일곱 편의 이야기들은 치밀하게 이어져 있다.

무엇인가를 꿈꾸고 상상한다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부여된 고유한 권리다. 꿈과 상상은 현실과 언제나 긴장을 갖는다. 중요한 것은 꿈과 상상이 비록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진실을 갈망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의 포스터.| 경향자료

<나니아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의 포스터.| 경향자료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물질적 생활이다. 하지만 물질적 생활이 충족된다고 해서 정신적 생활이 절로 의미 있어지거나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진실이며, 이 진실은 우리가 꾸는 꿈과 품는 상상에 잇닿아 있다. 거칠게 말해, 꿈과 상상이 부재한 삶은 기실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예술과 예술적 생활이 갖는 의미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연말 분위기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은 바로 이 꿈과 상상을 특히 자극하게 된다. 지나간 시간에 대해 이런저런 아쉬움을 갖게 하고, 다가오는 시간에 대해 크고 작은 기대를 품게 한다.

한편으론 차분해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다소 들뜨고 분주해지는 시간이 12월이다. 밤의 시간이 가장 긴 동지가 이 12월에 있지만, 그 다음날부터는 다시 낮의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는, 다시 말해 새로운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시간이 시작된다.

12월은 또 크리스마스의 계절이다. 크리스마스는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당시 게르만족의 습속인 동지 축제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생명의 시작이자 구원의 출발을 상징한다. 

낡고 지나간 것들을 이제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것들을 정결히 맞아들이는 의례로서의 크리스마스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서서 우리로 하여금 가는 해를 돌아보게 하고 오는 해를 기대하게 한다.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으로 돌아가면, 막내 루시가 옷장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놀랍게도 거기엔 눈이 내리는 숲이 펼쳐져 있고, 저 멀리 가로등 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나무들 사이에서 가로등 불빛 아래로 상반신은 사람이지만 하반신은 염소인 숲의 정령 파우누스가 한 손엔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엔 갈색 꾸러미를 안은 채 나타났다. 나니아의 세계가 열리는 첫 장면이다.

지나가는 것은 지나가는 것이다. 아쉬워할 것은 아쉬워하되 너무 많이 후회하지는 말자. 주어진 조건 아래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자. 

거기 옷장을 열고 들어가면 눈이 내리고, 가로등이 빛나고, 그 누군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꿈을 꾸고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겐 아직까지 있다고 생각하자.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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