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이 해에 나는 재수를 했다. 시내에 있는 재수 전문 학원을 다녔다. 특별한 경험이었던 탓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학교 주변지역 이외에는 거의 알지 못했다.
이때서야 나는 북촌과 서촌, 인사동과 무교동, 명동과 남산을 제대로 알게 됐다. 같이 재수하던 친구들과 전철 1호선을 타고 동인천역까지 가서 월미도에서 바람을 쐬기도 했다.
이 해 어느 여름날 수색에서 일이 있어 그때는 잘 몰랐던 서울의 서부지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아현동과 이화여대와 연세대를 거쳐 이름도 특이한 모래내 옆을 지나가게 됐다.
모래내가 구기동과 평창동에서 시작해 홍제동과 성산동을 거쳐 한강으로 들어가는 하천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서른이 넘어서였다. 홍제동쯤에 이르면 모래가 많아 냇물이 모래 밑으로 스며들어 흘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돌아보면 스무 살 이후 지난 30여년 동안 유학시절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낮시간을 이 서부지역에서 보내 왔다. 모래내, 작은 다리들이 많아 ‘세교(細橋)’라는 이름에서 시작된 서교동, 그리고 장마철만 되면 물이 차고 넘쳐 ‘물의 빛깔’이라는 인상적인 지명을 갖게 된 수색(水色) 등 이 지역은 나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특히 열여덟의 나이로 처음 본 모래내 시장 풍경은 기억에 여전히 생생하다.
<em>“어제는 먼지 앉은 기왓장에 / 하늘색을 칠하고 / 오늘 저녁 누이의 결혼 얘기를 듣는다 (…) // 거기서 너는 살았다 선량한 아버지와 / 볏짚단 같은 어머니, 티밥같이 웃는 누이와 함께 / 거기서 너는 살았다 기차 소리 목에 걸고 / 흔들리는 무우꽃 꺾어 깡통에 꽂고 오래 너는 살았다”
</em>이성복의 시 <모래내·1978년>의 한 부분이다. 1970년대 후반 서민들이 주로 살던 모래내 풍경을 담고 있다. 모래내 옆으로는 수색을 거쳐 문산으로 향하는 경의선이 지나간다. 기차 소리가 이따금씩 들렸고, 서울이 아직 완전히 개발되지 않았던 때라 작은 채마밭들이 펼쳐져 있기도 했다.
이성복 시인의 시 ‘모래내·1978년’가 실린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 문학과지성사
1978년 당시는 유신체제가 막바지에 도달한 시점이다. 재수생인 나로서는 그 실체를 정확히 알기는 어려웠다. 학원에서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했기에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어른처럼 담배를 피우는 성인문화를 익히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공부 이외에 소설과 영화도 적잖이 봤고, 친구들과 왜 사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를 두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모래내·1978년>과 재수 시절을 떠올린 것은 최근 우리나라 청소년의 현실 때문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안타까운 기사들을 만나게 돼 울적해진다. 입시철이 되면서 전해지는 청소년 자살에 관한 소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올해 역시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특목고 입시 때문에 자살한 학생들에 대한 마음 아픈 뉴스들이 잇달아 전해졌다.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청소년(15~24세) 사망 원인 중 1위를 차지한 것은 자살이었다. 인구 10만명당 1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2001년의 7.7명에 비교할 때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자살 충동에 관한 통계를 보면, 2011년에 자살을 한 번 이상 생각해 본 청소년은 11.2%였다. 그 주요 원인으로는 13~19세의 경우 성적 및 진학 문제(39.2%)가 가장 높았고, 가정불화(16.9%)와 경제적 어려움(16.7%) 등이 이어졌다.
주목할 것은 다른 나라 청소년들과의 비교다. 지난 10여년간 OECD 회원국의 평균 청소년 자살률이 감소해 온 반면, 우리나라는 그 반대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 왔다.
문제는 이러한 경향이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는 우려에 있다. 청소년 자살 방지를 위해 정부를 포함한 여러 사회단체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또 그 프로그램들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여주고 있지만, 자살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추진하지 않는 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만큼 학벌사회가 강고하게 유지되고, 패자부활전마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사회는 드물다.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이런 반인간적인 학벌체제를 유지할 것인가. 사진은 지난 11월 7일, 긴장된 표정으로 2014년 대학수학능력평가 시험에 임하는 응시생들. | 김기남 기자
학벌사회로 인해 청소년 교육의 중요한, 아니 거의 유일한 목표가 대학입시에 맞춰져 있는 한, 다시 말해 학벌사회와 이와 연관된 대학입시제도를 개혁하지 않는 한, 안타깝게도 청소년 자살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학벌사회를 바꾸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학벌체제가 이렇게 강고한 사회도 드물고, 패자부활전마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사회를 찾기도 어렵다.
우리 사회는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반인간적인 학벌체제를 유지할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특목고 시험이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물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의 결과 하나에도 한없이 절망하는 청소년들을 지켜보면 기성세대로서 더없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을 금하기 어렵다.
<em>“더 살 수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 우연히 스치는 질문-새는 어떻게 집을 짓는가 /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풀잎도 잠을 자는가, / 대답하지 못했지만 너는 거기서 살았다 붉게 물들어 / 담벽을 타고 오르며 동네 아이들 노래 속에 가라앉으며 / 그리고 어느 날 너는 집을 비워줘야 했다 트럭이 / 오고 세간을 싣고 여러 번 너는 뒤돌아보아야 했다”
</em>
<모래내·1978년>의 마지막인 이 구절을 보면, 1978년 처음으로 봤던 모래내 시장 풍경이 떠오른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누이, 그리고 떠나는 모래내를 여러 번 뒤돌아보아야 했던 동생은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었기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기억 속의 과거와 현실 속의 과거는 적잖이 다르다. <모래내·1978년>을 통해 내가 기억하는 과거는 당시 암울했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현실 속의 과거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청소년 시절을 현재의 청소년들의 상황과 비교하면, 새는 어떻게 집을 짓는지, 뒹구는 돌은 언제 잠을 깨는지, 풀잎도 잠을 자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그래도 숨 쉴 수 있는 더 많은 꿈과 여유의 공간이 그 때는 존재했다는 점이다. 우리 청소년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학벌체제와 이와 연관된 대학입시를 더 이상 이렇게 놓아둬서는 안 될 것이다.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