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겨울로 들어서는 이 계절이 되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강원도 화천에 있는 평화의 댐을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이제까지 평화의 댐에 두 번 가봤다. 첫 번째는 오래 전 춘천에서 대학교수를 하는 친구와 함께 바람을 쐬러 간 것이었고, 두 번째는 4년 전 모 잡지사가 기획한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기행을 위해 몇 사람과 함께 취재하러 간 것이었다.
친구와 함께 평화의 댐을 찾았던 때가 요즈음이다. 눈이 곧 내릴 것 같은 궂은 날씨에 우리는 춘천에서 화천으로 올라가 해산터널을 지나 평화의 댐까지 갔다. 깊은 산속에 돌연 나타난 거대한 댐은 딴 나라에 온 것과 같은 이국적 느낌을 안겨줬다. 더없이 편안해 보이는 우리 산야의 풍경 속에 놓인, 물을 가둬두지 않아 더욱 높아 보이는 댐의 위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낯섦과 낯익음을 동시에 갖게 했다.
친구와 나는 댐 위쪽의 한구석에 있는 휴게소로 가서 캔커피를 사마셨다. 곧 눈이라도 뿌릴 듯한 날씨 때문에 서둘러 돌아오려는데 평화의 댐을 구경하러 온 초등학생들을 만났다. 더없이 해맑게 웃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양구에서 댐 구경을 하러 왔다고 했다. 한 아이는 추운 날씨인데도 사과를 베어먹고 있었고, 다른 두 아이는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자기들끼리 즐겁게 떠들고 있었다.
우려스러운 것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국정원 개혁이 이뤄져야 할 불법 선거개입 사건에 이념갈등이 중첩되면서 대선이 끝난 지 1년이 다 돼가는데도 선거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재향경우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11월 25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사퇴 촉구’ 시국미사를 개최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규탄 기자회견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정지윤기자
이 장면은 오랫동안 내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깊은 산속이라 이른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눈발이 곧 쏟아질 것 같은 초겨울 오후, 아이들의 해맑은 목소리가 댐 저편 계곡에 부딪혀 메아리를 이루던 그 고적한 장면이 겨울이 오면 부지불식간에 떠오르곤 한다.
춘천으로 돌아오기 위해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양구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트럭 뒤칸에서 우리를 부르며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었다. 바람이 제법 차서 추울 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멀어져가는 트럭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느낀 낯섦과 낯익음은 기억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춘천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친구와 나는 이곳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노래를 하나 떠올리고 함께 불렀다. 장일남이 작곡한 가곡 <비목>이다. <비목>의 가사는 이곳 화천지역에서 군생활을 하던 장교 한명희에 의해 쓰여졌다. 그는 평화의 댐에 가까운 백암산에서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을 발견하고 이 노랫말을 썼다고 한다.
<em>“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옛날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
</em>
이후 이 노래가 더러 생각나 듣게 될 때면 평화의 댐을 찾아간 그 여행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서정적 가사와 차분한 멜로디가 잘 결합된 이 곡은 한때 TV 드라마에 쓰여 널리 알려졌지만, 한국전쟁이 남긴 아픔이 담겨 있는 노래다. 초연(硝煙)은 화약 연기다. 비목(碑木)은 묘비를 대신한 나무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작사가 한명희가 비목을 발견했을 당시의 쓸쓸하고 안타까운 풍경이 상상되기도 했다.
평화의 댐을 다시 찾은 것은 2009년 여름이었다. 화천에서 역시 해산터널을 지나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처음 찾아갔을 때와 비교해 달라진 게 있다면, 댐 아래에 있던 길로 갔던 옛날과는 달리 이제는 댐 위를 지나갈 수 있게 했다는 점이었다. 댐 가까이 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오래 전 캔커피를 마시던 휴게소가 상류 쪽에 있었고, 그때에는 없던 비목공원이 새롭게 조성돼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비목공원 쪽으로 걸어갔다. 아담하게 꾸며진 공원 안에 있는 <비목>의 시비를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돌아오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데 오래 전 이곳에 왔을 때 느꼈던 낯섦과 낯익음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그때 비로소 나는 그 낯익음이 바로 우리 산하의 풍경이 주는 편안함과 어린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였고, 낯섦은 한국전쟁이 남긴 처연함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됐다. 우리 사회를 탐구하는 사회학 연구자로서 전쟁의 상흔과 분단의 현실에 마음이 착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원도 화천의 비목공원. ‘비바람 긴 세월에 이름 모를….’ 산화한 젊은 무명용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든 국민가곡 ‘비목’의 무대이며, 평화의 댐에 자리잡고 있다. | 경향자료 사진
4년이 지난 지금 지난 여행들을 돌아보는 것은 최근 우리 정치 및 시민사회의 현실 때문이다. 올해 내내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사건으로 시작된 정치적 교착국면은 최근 종교계의 대응으로 새로운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와중에 정권 퇴진을 요구한 천주교 전주교구의 시국미사에서 박창신 원로신부가 발언한 북방한계선(NLL)과 연평도 포격에 관한 이야기로 인해 이념논쟁의 불이 다시 한 번 댕겨졌다.
연평도 포격에 대한 박 신부의 발언은 그 포격으로 희생된 이들의 가족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적절하지 않은 것이었다. 연평도 포격은 민간인에 대해 군사적 공격을 감행한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날 시국미사의 초점은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개입에 대한 규탄에 있었다. 국회와 정부가 이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기 때문에 종교계가 나선 셈이었다.
우려스러운 것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국정원 개혁이 이뤄져야 할 불법 선거개입 사건에 이념갈등이 중첩되면서 대선이 끝난 지 1년이 다 돼가는데도 선거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이념갈등의 한가운데에는 ‘종북이냐, 아니냐’의 프레임이 놓여 있다.
종북은 북한정권을 추종한다는 말이다. 다수의 진보세력이 반민주적 북한정권을 비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세력을 종북세력으로 동일시하려는 종북 프레임은 불법 대선개입의 부당성을 회피하고 자신의 지지세력을 결집시키려는 것에 불과하다.
북한의 침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분단체제를 공고히 했고, 이 분단체제는 남북갈등에 더하여 이제는 남남갈등까지 구조화해 놓았다. 남북갈등과 남남갈등이 맞물려 있는 이러한 ‘이중적 분단갈등’은 지구적으로 진행되는 세계사적 탈이념의 경향을 지켜볼 때 낯선 풍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사회가 오히려 ‘조장’하는 이러한 상황이 결국 자신의 정당성을 침해하는 결과로 돌아온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걸까?
이 글을 쓰면서 창밖을 보니 눈이라도 금방 내릴 듯하다. <비목>을 들으며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 해산터널을 지나 평화의 댐을 다시 한 번 찾아가 보고 싶은 시간이다.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