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음악과 관련해 내 시선을 끈 기사들 중 하나는 미국의 대중 가수 밥 딜런(Bob Dylan)에 관한 것이다. 록 뮤지션으로는 처음으로 밥 딜런이 미국 문예아카데미 명예 회원이 됐다는 소식이었다.
미국 문예아카데미는 예술분야의 명사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명예의 전당’이다. 시인 에즈라 파운드, 재즈 뮤지션 듀크 엘링턴 등이 종신회원이었고,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와 배우 메릴 스트립 등이 명예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록 뮤지션으로서의 밥 딜런이 갖고 있는 위상을 보여준 작은 사건이었다.
돈 맥클린이 1971년 부른 노래인 ‘American Pie’에서는 당시까지 대중음악의 역사가 다뤄진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 롤링 스톤스와 더불어 그가 제임스 딘의 코트를 입고 나타나 우리처럼 평범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고 회고한다. 그가 곧 밥 딜런이다. ‘Blowin’ in the Wind’와 ‘Knockin’ on Heaven’s Door’를 위시한 그의 노래들은 반전을 외치고, 평화를 노래하고, 인권을 옹호했다. 그는 주류문화에 맞서는 ‘반(反)문화’의 아이콘이었다.
사회적 맥락이 부재한 채 개인의 사적 감정의 회로에만 머물러 있는 대중가요들을 듣게 되면 뭔가 아쉬운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사진은 TV 가요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아이돌 그룹의 공연 장면. ※ 사진은 기사 본문 중 특정 언급 내용과 상관없습니다. | 이석우 기자
인간의 계통발생적 측면에서 볼 때 세대가 공유하는 집합적 정서가 만들어지는 시기는 대체로 10대 중·후반부터 20대 중·후반까지다. 시대적 상황과 동년배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이 집합적 정서는 평생 내내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민주화세대, 신세대, 88만원세대 등 세대에 따른 이 집합적 정서는 그 세대의 정치의식 및 사회의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구적 차원에서 세대에 따른 집합적 정서를 대표하는 가수는 (그룹을 제외한다면) 1960년대와 70년대는 밥 딜런, 1980년대와 90년대 초·중반은 스팅,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에미넴일 것이다. 밥 딜런은 반전운동 등 신사회운동의 세대문화를, 스팅은 개인주의적 여피의 세대문화를, 에미넴은 좌절과 분노의 세대문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밥 딜런의 노래를 처음 듣게 된 것은 10대였던 1970년대다. 청바지와 통기타로 대표되던 당시 청년문화와 잘 어울리는 밥 딜런의 노래들을 자연스럽게 듣게 됐고 좋아하게 됐다. 그의 노래들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곡은 1964년 발표한 앨범
“얼빠진 편견이 설쳐대도 ‘모든 증오를 찢어버려’라고 난 외쳤어. 삶은 흑과 백이라는(이분법의) 거짓말이 머릿속에 맴돌더라도 난 삼총사의 낭만적인 사실을 꿈꿨어. 어쨌든, 그건 내게 깊게 뿌리내렸어. 그땐 정말 늙었는데, 지금 난 더 젊어졌어.”
‘My Back Pages’의 2절 가사다. 이 곡은 한편에서 1960년대 전반 격렬했던 미국 사회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개인의 삶과 공공의 정치가 가져야 할 보편적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음악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음악가와 당대 사회는 결코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교향곡은 절제와 균형의 고전주의를 강조한 근대 초기의 계몽주의적 이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밥 딜런의 노래는 1960대 미국 사회 현실을 고발하고 그 속에서 취해야 할 개인의 윤리적 태도를 고뇌하고 있다.
지난 2012년 5월 29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록가수 밥 딜런에게 자유의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 AP 연합
내가 밥 딜런을 떠올리는 것은 최근 우리 대중음악의 현실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대중음악은 너무 가벼워지고 지나치게 상업화돼버렸다. 물론 노래가 좋아 그것을 즐기면 되지 무엇을 그렇게 따지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인간의 정서를 고급과 저급으로 나눠선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맥락이 부재한 채 개인의 사적 감정의 회로에만 머물러 있는 대중가요들을 듣게 되면 뭔가 아쉬운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누구는 내가 민주화세대의 집합적 정서에 갇혀 음악의 사회적 역할을 너무 좁게 바라본다고 할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가 보기에 밥 딜런 류의 노래들은 너무 무겁고 훈계조로 가르치려고만 해서 따분할 수 있다.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정서적 공감대다. 이런 사실을 나 역시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가득찬 노래들을 들으면 아무래도 낯설게 느껴진다. 결국 나도 이렇게 ‘꼰대 세대’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음악이 가질 수 있는 사회적 계몽성의 상실이 여간 안타깝지 않다.
“스스로 교수인 척하는 말은 어리석다고 하기엔 너무도 진지하게, 학교에서 자유는 곧 평등이라고 외쳤어. ‘평등’, 그건 결혼서약처럼 신성한 거야. 그땐 정말 늙었는데, 지금 난 더 젊어졌어.”
‘My Back Pages’의 4절 가사다. 여기서 밥 딜런이 노래하는 ‘자유가 곧 평등’(Liberty is just equality)이라는 말은 국가와 시민사회를 공부하는 내게 여전히 중요한 통찰을 안겨준다. 진정한 자유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 사회 구성원들 삶의 조건이 가능한 한 평등해야 한다는 게 밥 딜런이 전달하려는 메시지일 것이다.
‘‘My Back Pages’는 이후 여러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됐다.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1992년 밥 딜런의 가수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에서 여러 동료 및 후배와 함께 부른 곡이다. 로저 맥퀸, 톰 패티, 닐 영, 에릭 클랩튼, 조지 해리슨이 참여해 밥 딜런과 함께 이 곡을 열창한다. 이 가수들이 활약했던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지금 30주년 기념 앨범에 실린 ‘My Back Pages’를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내 귀에 반복해 걸리는 것은 ‘그땐 정말 늙었는데, 지금은 더 젊어졌어’(I was so much older then, I’m younger than that now)라는 후렴이다. 물리적 나이는 더 들었지만 정신적 나이가 오히려 젊어졌다는, 밥 딜런이 20대 중반에 노래한 이 구절은 나의 경우 오십을 넘어선 현재에도 여전히 그 울림이 작지 않다. 나이가 들어가는 자연스러움을 부정할 필요도 없지만,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은 정체가 아닌 오히려 퇴보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