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나 자신의 시대를 이끌고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는 화가가 있다. 이탈리아, 프랑스와 함께 서양 회화를 이끌어온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는 하르먼스 판 레인 렘브란트(1606-1669)다. 네덜란드 출신의 또 다른 거장으로는 빈센트 반 고흐가 있다. 하지만 평생 네덜란드를 떠나지 않았던 렘브란트야말로 저지대 지방의 회화적 전통과 시민적 전통을 대표해온 화가였다.
인물화, 풍경화, 종교화, 그리고 판화에 이르기까지 회화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렘브란트는 수많은 걸작들을 남겼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렘브란트 작품들에 나타난 넓게는 모더니티의 정신, 좁게는 저지대 지방의 역사성이다. 여기서 저지대 지방이란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지칭한다. 북쪽에 있는 네덜란드는 독립전쟁을 통해 1581년 에스파냐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반면, 남쪽 플랑드르 지방인 벨기에는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렘브란트가 활동할 당시 저지대 지방에는 또 한 명의 거장이 생존해 있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다. 흥미로운 것은 두 화가의 서로 다른 화풍이다. 렘브란트가 근대 초기 시민사회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면, 루벤스는 귀족예술로서의 바로크를 완성하고 있다. 사회학 연구자라는 직업 탓인지 몰라도 나로서는 시민사회의 정신을 화폭에 담으려 했던 렘브란트의 작품들에 아무래도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렘브란트, 프란스 반닝 코크 대위의 중대(야간순찰), 1642, 캔버스에 오일,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 경향자료사진
흔히 <야간 순찰>로 알려진 <반닝 코크 대위의 중대>는 렘브란트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암스테르담 민병대의 한 그룹을 이끈 프란스 반닝 코크 대위와 그의 동료들의 주문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이 작품이 걸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빛과 어둠의 극적 대비 효과를 통해 민병대원들의 다양한 모습을 생생히 담아냈다는 데 있다. 이 놀라운 집단 초상화는 17세기 중엽 당시 세계 무역을 제패하고 있던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활력을 증거하고 있다.
서구 모더니티의 역사에서 네덜란드가 갖는 특수성은 주목할 만하다. 에스파냐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네덜란드는 전통적인 모직물공업과 1602년 설립한 동인도회사에 기반한 중개상업으로 초기 자본주의를 주도했다. 17세기의 암스테르담은 유럽 경제의 중심지였다. 영국·프랑스·독일과 비교해 인구 규모도 적고 천연자원도 상대적으로 취약했지만, 이러한 발전전략을 통해 네덜란드는 세계 경제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이러한 네덜란드의 번영에는 무엇보다 시민계급과 시민사회의 발전이 그 배경에 놓여 있었다. 저지대 지방은 서유럽 그 어느 지역보다도 근대적 시민사회가 일찍 성장한 곳이다. 이들은 한편으로 상공업에 종사하면서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관료제와 교육기관 등 근대적 제도들을 정착시켰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네덜란드·덴마크·스웨덴 등으로 대표되는 서유럽 ‘강소국’의 특징이다. 이 나라들은 지정학을 고려할 때 외부의 유동성과 압력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국가적 차원의 순발력 있고 유연한 대응, 다시 말해 선택과 집중의 발전전략을 통한 사회 발전을 이뤄 왔다. 이러한 사회 발전은 오랜 역사적 전통 속에 형성된 시민사회의 기반 위에서 추진돼 왔다. 렘브란트의 <야간 순찰>은 바로 이 시민사회의 역사성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최근 이 강소국들 가운데 네덜란드가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은 1982년 체결한 바세나르 협약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타협 모델을 만들어 왔다는 점이다. 바세나르 협약은 임금 안정과 근로시간 단축을 중심으로 하는 아래로부터의 합의를 강조한 모델이다. 세계화가 강제하는 시장 유연화를 어느 정도 허용하면서도 이로부터 파생되는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게 이 모델의 목표였다.
안타까운 것은 ‘보수적 시민사회 대 진보적 시민사회’의 대립과 갈등은 현재 매우 예각적이고 갈수록 구조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2일, 보수단체 회원들이 시청앞 광장 인근에서 촛불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 홍도은 기자
네덜란드 모델이 갖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비(非)배제’, ‘비(非)갈등’의 ‘경쟁적 사회협약’이라는 점이다. ‘비배제, 비갈등’이란 가능한 다수의 이해관계자를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시킴으로써 이익을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세계화 시대 어느 나라이건 가장 중요한 국가 과제는 국제경쟁력과 사회 형평성의 동시 제고라 할 수 있는데, 네덜란드 사례는 사회협약을 통해 이 두 과제를 동시에 성취한 모델로 평가받아 왔다.
우리 사회에서도 노무현 정부의 초창기에 네덜란드 모델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당시 노사관계의 대안으로 네덜란드 모델의 도입이 제기됐고, 이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이뤄졌으나 결국 흐지부지됐다. 외국 모델을 수용하는 데는 일방적 모방을 넘어선 창의적 재구성이 요구된다. 중요한 것은 네덜란드·덴마크·스웨덴과 같은 강소국의 사회적 타협 모델이 우리 사회의 현실을 돌아볼 때 타산지석 이상의 의미를 안겨준다는 점이다.
지난 대선을 통해 우리 사회는 복지국가 구축을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국가 과제로 합의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선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간의 역사적 대타협이 요구되며, 바로 이 점에서 사회적 타협을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또 구체화해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과제가 요청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적 시민사회 대 진보적 시민사회’의 대립과 갈등은 현재 매우 예각적이고 갈수록 구조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도적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그리고 기계적으로 사회적 타협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현재 지불하는 대립과 갈등의 사회적 비용이 결코 적지 않다는 데 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 세력이 다른 세력을 압도하는 게 가능하지도 않고 규범적으로 타당하지도 않은 현실을 고려할 때 새로운 사회적 타협을 모색하는 것이 지속가능하고 실현가능한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야간 순찰>을 보면 프란스 반닝 코크 대위와 빌렘 반 라이턴뷔르흐 중위가 화면 중앙을 차지하고 있지만, 모든 인물들이 자신의 개성을 다양하게 드러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렘브란트는 17세기 네덜란드 시민사회가 갖고 있던 개방성과 포용성, 그리고 역동성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국가 주도의, 혹은 시장 주도의 발전이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포함한 새로운 국가·시장·시민사회 간의 생산적 균형을 만들어내야 하는 우리 사회의 국가적 과제에 <야간 순찰>은 여전히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