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픽쳐스
제목 잡스(Jobs)
감독 조슈아 마이클 스턴
출연 애쉬튼 커쳐, 조시 게드, 더모트 멀로니, 매튜 모딘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27분
개봉 2013년 8월 29일
사실 극장에 가기 전, 이미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스티브 잡스. 반세기 뒤에도 그의 이름은 회자될 것이다. 그의 삶은 드라마 자체였다. 그는 여러 차례 바닥을 경험했다. 그리고 극복했다. 인생의 가장 화려한 순간 그는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어어 이게 아닌데.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던 순간 느끼던 당혹감이다. 영화 <잡스> 이야기다.
애쉬톤 커셔의 스티브 잡스 재현은 그럴 듯했다. 구부정한 그의 걸음걸이까지 완벽했다. 영화의 보도자료를 보니, 캐릭터에 몰입한 나머지 스티브 잡스의 채식 식단까지 따라하다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특히 젊은 시절의 잡스 외모 재현은 거의 똑같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포스터에 실린 나이든 스티브 잡스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그를 잊기엔 아직도 “하나 더(one more thing)!”를 말하는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 장면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인가.
스티브 워즈니악을 연기한 조시 게드의 ‘풍채’나 성격 묘사도 실제의 워즈니악과 닮았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이 영화의 미덕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스티브 잡스의 젊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 특히 빌 게이츠와의 애증관계에 대해서는 이 영화에 비해 외모 재현은 조금 떨어지지만 1999년에 나온 TV용 극영화 <실리콘 밸리의 해적들(Pirates of Silicon Valley)>에서 충분히 다뤄졌다.
필자는 잡스가 생존해 있을 당시 그와 관련한 여러 기사를 썼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일화와 에피소드를 읽었다. 잡스의 전기가 나왔을 때도 사서 봤다. 영화의 홍보문구는 이렇다. “아무도 몰랐던 그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웬걸, 다 아는 이야기였다. 스티브 잡스가 1983년 펩시 회사의 사장이었던 존 스컬리를 영입하면서 “남은 인생을 설탕물이나 팔면서 보내겠느냐”고 설득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다. 필자는 그 이야기를 스티브 잡스가 넥스트 컴퓨터를 설립하고, 다시 애플에 되팔 때 한국 신문에 실렸던 그의 풀 스토리에서 읽었다. 그게 1997년쯤이니 벌써 15년도 더 된 이야기다. 잡스가 ‘애플Ⅱ’의 후속 프로젝트에 자신이 버린 딸의 이름, 리사를 붙인 것 역시 유명한 이야기다.
아쉬운 것은 기왕 원래 이야기를 재현하기로 했다면 극적인 요소들을 더 넣을 수도 있었다. 이를테면, 영화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은 이런 부분 같은 거다. 리사가 10살 되던 해 리사의 어머니 크리스 앤 브레넌은 더 이상 아이를 감당할 경제적 여력이 안 됐다. 그녀는 낡은 트럭을 타고 잡스의 회사 앞까지 가 리사를 차에 남겨둔 채로 떠났다. 10살배기 꼬마는 잡스에게 울먹이며 자기가 트럭을 몰고 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다. “자기의 아이가 아니다”라며 날뛰던 스티브 잡스가 어느덧 시간이 지나 보니 이제는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크리스 앤 브레넌과 함께 살고 있었다는 식이다. 사실 이것은 연출의 미숙함이다. 기존에 나와 있는 잡스 스토리와 다른 것을 보여주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스티브 잡스 못지않게 괴팍하다고 할 수 있는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이야기를 다룬 <소셜네트워크>는 그에게 모든 것을 뺏겼다고 주장하는 왈도 세브린의 시각에서 영화를 풀지 않았는가! 영화의 바탕이 되는 원작이 있기는 하지만.
잡스 인생에서 최대 황금기이자, 사람들이 가장 많이 관심을 두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폰·아이패드 개발과 관련한 이야기를 영화가 다루지 않은 것은 의도적이다. 그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조너던 아이브와의 첫 만남 정도에서 일부러 이야기를 끊었다. 과연 그게 큰 울림을 줄까. ‘뭐야 이게. 여기서 끝나는 건가’ 하는 시큰둥함은 필자만의 반응이 아니었다. 한 외지 평가대로 기왕 이렇게 만들 바에야 TV용 영화로 몇 편 정도 나눠서 만들면 어땠을까. 스티브 잡스의 삶을 제대로 재해석해낼 영화는 앞으로 다시 만들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