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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만화 ‘진격의 거인’과 포위된 젊음

입력 2013.07.02 11:51

우리 사회 청소년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다.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이들에게 허락된 몇몇 여가활동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주요 대화 주제이기도 하다. 청소년뿐만이 아니라 20~30대 마니아들도 적지 않다. 청소년 시절에 가졌던 취미가 계속 이어지는 것일 게다.

일본 만화 열풍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각은 그렇게 곱지만은 않다. 일본 사회에 대한 무관심 내지 거부감이 한 원인이라면, 일본 만화에 담긴 문화적 코드들, 예를 들어 폭력성과 일본 중심주의에 대한 우려가 다른 원인일 것이다. 한·일관계의 과거와 현재를 생각하면 이런 기성세대의 생각은 수긍할 만하다. 개인의 자아의식과 사회의식의 기본 틀이 형성되는 청소년 시절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일본 만화 열풍이 그렇게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찬란하고도 거침없어야 할 젊음이 불안한 미래로 포위돼 있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사실 암울한 것이다. 지난해 9월 서울 성동구 한양대 올림픽체육관에서 열린 ‘JOB 페스티벌’에서 구직 학생들이 채용 부스에서 상담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찬란하고도 거침없어야 할 젊음이 불안한 미래로 포위돼 있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사실 암울한 것이다. 지난해 9월 서울 성동구 한양대 올림픽체육관에서 열린 ‘JOB 페스티벌’에서 구직 학생들이 채용 부스에서 상담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만화 열풍이 왜 부는지에 대해 사회학 연구자로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 까닭은 무엇보다 일본 만화의 경쟁력에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드라마가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킨 이유가 작품의 높은 완성도와 공감대에 있듯이, ‘잘 만들어진’ 일본 만화는 유사한 삶의 조건에 놓인 동아시아 청소년과 청년세대에게 나름의 공감을 불러 모으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연재 중인 아즈마 키요히코의 <요츠바랑!>, 우미노 치카의 <3월의 라이온>, 요시노 사츠키의 <바라카몬>을 보면 거기에는 일상과 사랑과 삶의 따뜻함 또는 애틋함이 생생히 살아 있다.

일본 만화에서 최근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이 이사야마 하지메(諫山創)가 그린 <진격의 거인(進擊の巨人)>이다. 우리말로 10권까지 옮겨진 이 만화는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져 방송되고 있는데, 그 제목을 본뜬 패러디들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진격의 거인>은 <원피스>, <강철의 연금술사>, <디 그레이맨>에 필적할 만한, 아니 그것을 넘어서는 상상력과 박진감을 보여준다. 일본에서 이미 주요 만화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 시리즈의 누적 판매규모가 1200만권에 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진격의 거인>을 한 번 다뤄볼까도 생각했는데, 아직 완결되지 않아서 유보해 왔다. 하지만 이에 대한 기사들이 더러 쓰이는 것을 보고 이 작품을 사회학적으로 어떻게 볼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일본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청소년과 청년세대가 이 만화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문화현상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다른 판타지물들이 그러하듯 <진격의 거인>의 도입부는 치밀히 계산된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준다. 100년 전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인들이 나타난 이후 인류는 세 겹으로 이뤄진 대규모 성벽을 쌓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데, 새로운 돌연변이 거인이 다시 나타나 첫 겹의 성벽을 부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러한 위기상황에 소꿉친구들인 앨런, 미카사, 아르민이 중심이 되어 그 거인들과 맞서 싸워 나가는 게 이제까지의 기본 줄거리다. 한편에선 예기치 않은 상상의 세계들이 전개되고, 다른 한편에선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 이어짐으로써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사야마 하지메 작, , 학산문화사

이사야마 하지메 작, <진격의 거인>, 학산문화사

<진격의 거인>에 대해 이런저런 감상과 분석이 이뤄져 왔는데, 내 주목을 특히 끌었던 것은 국제정치적 시각에서 읽은 것이다. 이 분석은 <진격의 거인>의 설정이 현재 일본이 놓인 위기상황과 유사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군사국가화를 은연중에 부각시킨다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미지의 거인은 다름 아닌 부상하는 중국을 암시한다고 보고 있기도 하다. 다소 과도한 듯한 해석이지만, 최근 일본 사회의 현실을 지켜볼 때 나름 수긍할 만한 대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격의 거인>에 담긴 코드는 여럿일 수 있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정체성의 사회학’이다. 거인들이 나타나 성벽 안에서 생존해가는, 그리고 다시 또 다른 거인들에 의해 위협받는 상황은 청년실업, 루저 문화 등으로 상징되는 우리 젊은 세대의 현실, 다시 말해 ‘포위된 젊음’과 대단히 유사하다. 10대가 시작되면서 청소년을 압박하는 ‘입시경쟁’은 대학 입학과 더불어 이제는 ‘취업경쟁’으로 변화하고, 이러한 과정은 청년세대에게 결국 불안의 정체성을 안겨주게 된다.

알 수 없는 거인은 바로 ‘불안한 미래’이며, 주인공 앨런으로 대표되는 거인에 대한 분노는 다름 아닌 ‘젊음의 분노’다. 거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조사병단에 들어간 앨런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은 불안과 분노의 정체성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대응일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젊음은 절로 아름답고 빛나는 것이다. 긴 삶에서 젊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이자 특권은 바로 이 만화의 제목인 진격, 다시 말해 거침없는 전진에 있다. 그런 찬란하고도 거침없어야 할 젊음이 불안한 미래로 포위돼 있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사실 암울한 것이다. <진격의 거인>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것은 불안, 분노, 암울로 특징지어지는 정조(sentiment)이며, 바로 이 점이 일본의 젊은 세대는 물론 우리 젊은 세대가 이 만화에 공감하는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앞서 주호민의 웹툰 <무한동력>을 다룰 때 나는 청년실업 해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청년실업 등으로 인해 포위된 젊음이 그 사회의 미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청년세대의 좌절로 사회의 활기가 크게 줄어들고 고령인구의 증대로 사회의 역동성이 빠르게 약화하는 현상은 일본 사회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에 가까운 진단일 것이다.

만화도 예술의 한 영역이라는 점에서 볼 때 <진격의 거인>의 작품성이 <요츠바랑!>이나 <3월의 라이온> 또는 <바라카몬>보다 높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더불어 <진격의 거인>의 열풍이 그리 오래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진행되는 스토리를 지켜볼 때 대개의 일본 만화가 그러하듯 연재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높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격의 거인> 만화 자체보다도 그 열풍에 담긴 의미다. 젊음이 포위돼 있다면 기성세대는 그 포위를 풀어놔야 할, 제도개혁을 이뤄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는 중대한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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