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회화에서 스페인 회화가 차지하는 위상은 독특하다. 근대 이후 서양 회화를 이끌어온 나라는 이탈리아,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방, 무엇보다 프랑스였다. 다빈치·미켈란젤로·라파엘로의 르네상스, 루벤스의 바로크와 렘브란트의 회화, 그리고 다비드가 고전주의를 연 이후의 프랑스 회화는 서양 회화의 중심을 이뤄왔다.
스페인 회화는 이러한 흐름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스페인 출신 화가들의 독창성에 있었다. 근대 스페인 회화를 대표한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그리고 고야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회화의 세계를 구축했으며, 특히 벨라스케스와 고야는 현대 회화에까지 큰 흔적을 남겼다. 이 세 화가의 작품들을 직접 감상하는 것은 내 오랜 꿈 가운데 하나였다.
<1808년 5월 3일>, 프란시스코 고야, 1814, 오일에 캔버스. |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소장
독일에서 오랜 시간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을 찾아간 것은 지난 2008년 9월이 처음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사회학대회에서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이 여행의 또 하나의 목적은 프란시스코 고야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바르셀로나대학에서 발표가 끝난 다음 오랜 친구인 신기욱과 함께 사라고사를 거쳐 마드리드로 향했다. 그리고 이튿날 시내에 있는 프라도미술관을 찾았다. 젊은 시절부터 화집으로 숱하게 보아온 고야의 작품들 앞에 마흔여덟이 돼서야 나는 이렇게 서게 됐다.
내가 고야를 찾아간 배경에는 촛불집회가 놓여 있었다. 그해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졸속 협상에 항의해 5월부터 8월까지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열렸다. 사회학 연구자로서 나는 글과 토론에서 촛불집회를 열렬히 옹호했다. 내가 보기에 촛불집회는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에서 매우 중대한 전환적 계기를 제공한 집회였다.
그때 촛불집회에 담긴 의미를 나는 제도정치에 맞서는 ‘생활정치’, 대의정치에 맞서는 ‘참여정치’, 계급정치에 맞서는 ‘위험정치’, 권위정치에 맞서는 ‘인정정치’, 아날로그 정치에 맞서는 ‘디지털정치’로 이해하고 또 주장했다. 무엇보다 촛불집회는 정당정치에 맞서서 시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시민정치의 등장을 알렸다. 기성 권력에 맞선 시민의 행동주의를 화폭에 담은 서양 회화의 대표작 중 하나를 그린 이가 다름 아닌 고야였다.
프라도미술관은 고야 작품의 보고(寶庫)다. <자화상>, <카를 4세의 가족>, <옷을 입은 마야>, <옷을 벗은 마야>, 그리고 <검은 그림> 연작 등 고야의 대표작들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이 작품들 못지않게 고야의 명성을 높인 그림이 <1808년 5월 2일>과 <1808년 5월 3일>이다. 전자의 작품이 프랑스 군대에 맞선 마드리드 시민들의 저항을 담고 있다면, 후자의 작품은 시민 봉기 가담자들에 대한 프랑스 군대의 처형을 그린 것이다.
고야가 이 작품들을 그린 것은 사건이 발생한 후 6년이 지난 1814년이었다. 이 작품들은 의뢰에 의해 그려진 게 아니라 고야가 정부에 직접 요청해서 그린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유명하지만, 특히 주목을 받아온 것은 <1808년 5월 3일>이다. 이 작품에서 고야는 전쟁의 비참함과 만행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화폭에 담아 인간의 야만성을 고발했다. 이 그림은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다룬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함께 전쟁의 광기어린 폭력을 고발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열렬한 옹호를 대변해 왔다.
스페인 시민의 저항과 촛불시민의 항의는 물론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스페인 시민 봉기에는 프랑스 지배를 거부하는 스페인 민족주의의 열망이 담긴 반면, 촛불집회에는 작동하지 않는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참여민주주의의 요구가 담겨 있다. 내가 <1808년 5월 3일>을 보려 했던 까닭은 결코 굴하지 않는 시민들의 열망에 대한 고야의 공감, 그리고 그 공감에 대한 나의 공감에 있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열망은 어느 나라이건 중단될 수 있는 게 아니다.
2008년 촛불집회도 그 해 여름에 끝난 게 아니었다. 그것은 2010년 ‘무상급식 논쟁’으로, 2011년 ‘희망버스 행진’으로 다시 나타났고, 이 과정에서 시민정치 담론으로 구체화했다. 이 시민정치는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본격적인 정치적 시험대에 올라섰다.
우리 사회의 진보에 부여된 정치적 과제는 좌절하고 상처입은 시민정치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이다. 사진은 지난 2008년 6월, 경찰이 광화문 광장에 설치한 컨테이너 장벽 앞에서 촛불을 들고 상념에 잠긴 한 시민. | 정지윤 기자
우리 사회에서 시민정치가 이렇게 부상한 것에는 두 가지 요인이 중요하다. 먼저, 외적으로 정당정치의 위기다. 기성 정당들이 시민사회의 정치적 대표성을 더 이상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시민들 스스로 정치세력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내적으로 시민단체들은 시민운동과 시민정치라는 분화의 지점에 도달해 있었다. 그동안 준정당적 역할을 해온 시민단체들은 인권·여성·환경·소수자 이슈 등에 주력하는 ‘순수 시민운동’과 정치권 혁신과 세대교체를 추구하는 ‘시민 정치운동’의 분업 구조를 이루게 됐는데, 이 시민 정치운동이 시민정치로 나타난 셈이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름의 성과를 얻은 시민정치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적극 개입했다. 하지만 시민정치의 도전은 두 선거의 결과가 보여주듯이 안타깝게도 좌절됐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현재 우리 사회 진보세력에 부여된 정치적 과제가 좌절하고 상처 입은 이 시민정치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에 있다는 점이다. 시민정치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시민 주체성의 구현, 다시 말해 시민사회의 참여민주주의의 요구를 기성 정치사회의 제도와 어떻게 결합시키느냐에 있다. 나중에 다시 이 문제를 다루겠지만, 민주주의에서 참여에 대한 열망은, 설령 그것이 일시적으로 유보된다 하더라도, 앞서 말했듯 결코 중단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프라도미술관 화집에서 <1808년 5월 3일>을 다시 한 번 보고 있다. 어두운 도시의 하늘, 땅을 적시는 죽은 시민들의 피, 그리고 총구를 겨누는 병사들과 절망에 싸인 시민들의 표정은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지금 막 처형당하기 직전 손을 들고 있는 흰색 옷을 입은 사람의 두려움과 분노가 가득 담긴 눈빛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고야는 모순적 화가였다. 성공한 왕실의 궁정화가였던 동시에 당대 역사를 비판적으로 응시한 혁명적 예술가였다. 무엇보다 그는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고통을 냉정하게 재현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인간을 옹호하고 사랑한 화가였다. 예술이란 무엇이고, 예술가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예술이든, 정치든, 무엇이든 그 한가운데에는 인간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