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가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조세피난처 고객 명단에 포함돼 있다는 한국인 245명의 이름을 순차적으로 공개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조세정의네트워크(TJN)가 한국에서 조세피난처에 이전된 돈이 7790억 달러(약 857조원)에 달해 중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라고 발표한 바 있다.
<보물섬> 니컬러스 섁슨 지음 · 이유영 옮김 | 부키 | 2만원
부키에서는 딱 1년 전 조세정의네트워크의 상근 연구원인 저자가 쓴 <보물섬>이라는 경제서를 낸 바 있다. 조세피난처의 본질이 무엇이고, 어떻게 발전해 왔으며,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등 조세피난처의 거의 모든 것을 560쪽의 방대한 분량에 아우른 책이다. ‘보물섬’이라는 제목은 원서 제목 ‘Treasure Islands’를 그대로 번역해 붙인 것으로, 기업 세계에서는 다국적 기업이 세제 등 여러 면에서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장소를 빗대어 오랫동안 사용되고 있는 용어다.
이 책에서는 개인이나 법인이 여타 국가의 법과 규제를 피해갈 수 있도록 ‘비밀주의’까지 서비스하는 곳으로 조세피난처를 규정한다. 그런데 조세피난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역외(offshore)’다. 즉 조세피난처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주로 자국 거주민이 아닌 ‘비거주자’에게만 제공된다. 저자는 이를 ‘링·펜싱(ring-fencing)’이라 표현하는데, 국외 거주자에게 제공하는 혜택으로부터 자국민을 울타리 쳐 ‘보호’하는 것이다. 예컨대 돈을 자국에 쌓아 두는 비거주자에게는 영세율 혜택을 주지만 자국민들에게는 온전한 세율을 적용한다. 자국민에게까지 그러한 혜택을 주면 손해를 볼 수 있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슈퍼리치나 기업이 이러한 역외 체제를 악용해 자국(역내)에 세금을 덜 낸다면, 그렇다고 그들에게 탈세 서비스를 제공한 조세피난처 거주민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없다면, 결국 슈퍼리치와 기업에게 ‘보조금’이 지급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 된다. 즉 자본과 대기업에 부과되어야 할 조세부담이 보통 사람들의 어깨로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조세피난처를 중심으로 한 역외 체제가 ‘부는 상향식으로, 리스크는 하향식으로 재분배’할 뿐이라고 일갈한다.
세계 무역량의 절반 이상, 은행업 관련 총자산의 절반 이상과 다국적 기업들의 외국인 직접 투자액(FDI)의 3분의 1이 역외 세계를 거친다. 2010년 IMF는 작은 섬나라에 소재한 금융센터들의 대차대조표상 자산계정을 합산하면 세계 총 GDP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8조 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미 조세피난처와 페이퍼컴퍼니 관련 뉴스에서 아마존이나 애플, 삼성전자 등 세계 유수 기업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본 지 오래다. 그런데도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양상이나 대중의 인식을 보면,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탈세행위가 일부 부자나 기업 오너의 일탈, 부패 정도로 치부되는 느낌이다. 그만큼 조세피난처와 역외 체제에 대한 정보와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관리·감독의 칼을 빼들어야 할 국세청, 금감원, 관세청 등 관련 기관도 마찬가지다. 이 책이 출간되자 여러 경로를 통해 단체 구입을 해간 관련 기관이 꽤 되는 것을 보면 이런 정보에 대한 목마름이 감지된다.
금융·회계·세무와 관련된 ‘전문적’ 영역이기에 거리감을 느끼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역외 거래의 피해자가 다름 아닌 바로 ‘당신’임을 설득력 있게 웅변한다. 이 책이 충분히 읽히지 않고 있어 편집자로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임종민<부키 기획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