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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무르>를 통해 본 품위 있는 죽음

입력 2013.05.27 18:27

인간에게 실존적으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죽음에 관한 것이다. 삶의 종언인 죽음 앞에 우리 인간은 더 없이 무력하다.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이들도 없지 없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죽음의 육체적 고통 때문만이 아니다. 생명의 마감인 죽음은 이 세상에서 맺은 모든 관계들에 작별을 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 존재의 의미 중 하나가 관계에 있는 한, 죽음은 우리에게 낯설고 어렵고 또 두려운 그 무엇이다.

201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미하일 하네케 감독의 영화 .

201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미하일 하네케 감독의 영화 <아무르>.

죽음과 관련해 사회학적으로 주목할 주제는 존엄사 문제다. 존엄사란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해 의미가 사실상 없는 연명조치를 중단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죽음을 맞게 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2009년 김모 할머니에 대한 연명치료의 중단을 둘러싸고 이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이뤄지기도 했다.

이런 존엄사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영화가 얼마 전 개봉돼 내 시선을 끌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만든 영화 <아무르(Amour)>다. <피아니스트> <히든> <하얀 리본> 등 그의 영화들은 발표될 때마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 왔다. <아무르> 역시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예술이 갖는 힘 가운데 하나는 공감이다. 이 공감은 두 가지로 나눠진다. 편안한 사실에 대한 자연스러운 공감과 불편한 진실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그러나 강렬한 공감이 그것이다.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대면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내어 그것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 <아무르>다. 불현듯 방문하는 죽음의 그림자를 우리는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음악가 노부부인 조르주와 안느의 이야기다. 행복한 노후를 보내던 조르주와 안느의 삶은 안느가 병에 걸리면서 극적으로 바뀐다. 아내 안느의 입원과 수술, 그리고 퇴원과 남편 조르주의 간호 등 죽음으로 이르는 길이 담담하면서도 마음 아프게 그려진다. 그 대상이 부부든 부모든 누구나 한두 번쯤 겪게 되는 죽음의 체험을 하네케 감독은 차분하면서도 예리하게 재현함으로써 삶과 죽음, 그 사이에 놓인 사랑(amour)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아무르>를 통해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의 품위 있는 죽음의 조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적 합의와 이에 대한 법과 제도의 정비가 요구된다. 특히 회생 가망이 없는 환자의 생명 연장에 관한 존엄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중대한 문제다. 이 이슈가 결코 간단하지 않은 것은 많은 경우 환자의 고통이 가족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그 고통은 정신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물질적 측면에서도 주어진다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2009년에 발표한 윤영호 등의 연구가 주목할 만하다. 이 연구에 따르면, 사회경제적 부담이 없는 경우에는 62.3%가 본인이 치료 말기에 관련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 사회경제적 부담이 있는 경우에는 44.9%만이 본인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한편, 사회경제적 부담이 없는 경우 가족이 치료 말기에 관련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21.7%였고, 사회경제적 부담이 있는 경우 그 비율은 49.1%였다.

이 연구가 함의하는 결과 가운데 주목할 것은 의료보장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 연명 기간이 길어질 때 경제적 부담으로 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사례가 증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본인의 자율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선 환자와 그 가족의 경제적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점을 이 연구는 보여준다.

겪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가족의 죽음에 대해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 결정이 경제적 요인에 따른 것이라면, 그 고통은 남아 있는 이들에게 결코 작지 않은 회한을 남겨주게 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품위 있는 죽음이 국민 다수에게 허용되기 위해선 법적 기준의 마련 못지않게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존엄사가 실질적으로 가능할 수 있는 의료보장 등 복지정책을 포함한 제도개혁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지난해 5월 칸 영화제 시상식에서 미하엘 하네케 감독(가운데)이 두 주연 배우와 함께 서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5월 칸 영화제 시상식에서 미하엘 하네케 감독(가운데)이 두 주연 배우와 함께 서 있다. AFP/연합뉴스

이른바 ‘웰 다잉’ 문화 형성에서는 시민사회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죽음은 실존적·사회적 측면의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가장 극적인 체험인 만큼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사회적 토론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우리 사회처럼 유교문화의 전통이 여전히 두드러진 나라에서 죽음에 대한 바람직한 공론화는 쉽지 않은 과제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침묵한다고 해서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문화가 절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품위 있는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본인은 물론 가족과 친지, 나아가 시민사회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그리고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 등에 대한 토론이 활성화해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리 전통 및 현실에 맞는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조르주와 안느의 안타까운 사랑과 죽음을 지켜보면서 부지불식간 떠올랐던 것은 몇 해 전 아버지의 죽음이다. 여든이 넘으신 아버지는 당신 삶의 마지막 한 해를 세브란스병원과 은평구의 한 병원에서 보내셨다. 오래 전 어머니의 죽음에 이어 내게는 두 번째로 다가온 죽음의 충격이었다. 장례를 어떻게 치렀는지 정신이 전혀 없었다는 기억과 더불어, 죽음의 기별에서 하관에 이르기까지 이 지상에서 아버지와 이별하는 모든 순간들에 대한 세세한 기억이 결코 지워지지 않는 도장의 붉은 인주처럼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다.

고향 양주의 불곡산에 어머니와 나란히 아버지를 모신 다음 내려오는 길에는 흰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고향 산에서 어머니와 함께 계신다 하더라도 내리는 저 눈발에 아버지가 추워하실 텐데 하는 생각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고 길이 미끄러워지니 이제는 내려가자고 넷째 형님이 옆에서 재촉하는데 아버지가 누워 계신 산 쪽을 나는 돌아보고 또 돌아봤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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