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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시를 읽으며 갑을관계를 생각한다

입력 2013.05.20 16:47

“시냇가 헌 집 한 채 뚝배기 같고 / 북풍에 이엉 걷혀 서까래만 앙상하네 //
묵은 재에 눈이 덮여 부엌은 차디차고 / 체 눈처럼 뚫린 벽에 별빛이 비쳐드네”

다산(茶山) 정약용이 남긴 한시 <적성촌에서>의 첫 부분이다. 적성은 현재 경기도 파주에 있는 고을이다. 다산이 암행어사가 돼 1794년 이 지방을 순찰한 때 쓴 시다. <다산시선>을 편집하고 우리말로 옮긴 송재소에 따르면, 이 시는 당시 농민의 생활과 지방관 및 아전의 횡포를 고발한 작품이다. 당나라 시성(詩聖) 두보의 리얼리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는 다산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적성은 내 고향 양주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니다. 더러 바람을 쐬러 갔던 고장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작품이 쓰인 18세기 후반 조선 사회의 풍경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당시는 정조 시대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개혁 군주였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삶이 적잖이 고달팠음을 이 시는 증거한다. 한갓진 전원 풍광이 아니라 황량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서러움이 담긴 시골 풍경이다.

다산 정약용. 이 초상화는 지난 2009년 전남 강진군청이 고증을 거쳐 제작한 것이다. | 연합뉴스

다산 정약용. 이 초상화는 지난 2009년 전남 강진군청이 고증을 거쳐 제작한 것이다. | 연합뉴스

“깨진 항아리 새는 곳은 헝겊으로 때웠으며 / 무너앉은 선반대는 새끼줄로 얽었도다 //
구리 수저 이정(里正)에게 빼앗긴 지 오래인데 / 엊그제 옆집 부자 무쇠솥 앗아갔네”

다산은 그 원인의 하나로 지방관과 아전을 포함한 토호세력의 횡포를 고발한다. 기본 생필품인 수저와 무쇠솥마저 가져간 이들은 백성들을 위해 일해야 할 관료들과 고리대금업을 하는 부자들이다. 영·정조 시대는 두 차례의 전란 이후 무너져가던 조선을 다시 일으켜 세운 시대였다. 두 국왕이 펼쳤던 개혁정책을 돌아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시를 보면 백성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신산했음이 분명하다.

다산의 시를 떠올리는 것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크게 논란을 이룬 ‘갑을관계’ 때문이다. 갑을관계는 계약서에 나타나는 두 계약 주체의 관계를 말한다. 동시에 갑을관계는 사회 전반에서 관찰되는 위계적인 경제·사회적 관계를 지칭한다. 이 갑을관계가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다산의 시가 증거하듯 전통사회에서 갑을관계는 한층 심각했다. 문제는 전근대사회의 특징이 21세기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되풀이돼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근대사회는 개인들의 계약을 통해 구성되며, 이때 개인은 자율적 주체로서 계약에 참여한다. 주목할 것은 이 계약에 존재하는 ‘권위’의 비대칭적 배분이다. 조직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정당화된 권력으로서의 권위가 어느 정도 요구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정당화되지 않은 권력인 폭력이 전근대사회처럼 빈번히 발생해 왔다. 권력을 가진 ‘갑들’의 정당하지 않은 횡포에 맞서 이제 ‘을들’이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을들의 저항이 이렇게 분출한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중요하다. 첫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사회 양극화에서 을들의 삶이, 특히 대리점주 등의 자영업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 등의 하층계급의 기본 생존권이 크게 위협받아 왔다. 둘째, 이러한 위협이 물질적 피해뿐만 아니라 인간적 무시로까지 나타났다. 산업화를 본격화한 지 50여년이 지난 현재, 인격적 훼손에 대한 ‘인정의 정치(politics of recognition)’의 요구가 발휘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정보사회가 진전되면서 사이버 공간이라는 을들의 입장을 표출할 수 있는 새로운 공론장이 등장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는 5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남양유업 대리점 피해사례 추가 발표 및 본사의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대리점 보호법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촉구했다. | 김기남 기자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는 5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남양유업 대리점 피해사례 추가 발표 및 본사의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대리점 보호법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촉구했다. | 김기남 기자

을들의 이러한 저항은 무엇보다 근대사회와 민주주의의 특징을 돌아보게 한다. 전근대 신분사회와는 달리 근대사회는 민주주의를 자신의 조정원리로 삼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비록 사회적 위치와 직급에 따라 불가피하게 권위의 불평등한 배분이 존재하더라도, 그 구성원들은 누구나 물질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평등해질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물질적 불평등도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정신적 불평등, 다시 말해 인간의 존엄이 무시되고 훼손당하는 것 역시 우리를 고통스럽고 분노하게 한다는 점이다. 정당한 타자로서의 ‘인정’을 요구하는 것은 근대사회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 ‘전근대’, ‘근대’, ‘포스트모더니즘’이 공존한다고 말하는데, 갑을관계야말로 여전히 존재하는 전근대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졸놈들 오는 것만 겁날 뿐이지 / 관가 곤장 맞을 일 두려워 않네 //
오호라 이런 집이 천지에 가득한데 / 구중궁궐 깊고 멀어 어찌 다 살펴보랴”

<적성촌에서> 후반부의 한 구절이다. 다산의 민중 사랑과 우국충정을 엿볼 수 있다. 이 시를 쓴 후 몇 년 뒤 다산은 유배의 길을 떠났다. 18년이라는 기나긴 유배 시기와 이후 해배 시기에 다산은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를 위시해 조선사회 전반의 개혁을 위한 정책대안이자 전통사회의 가장 위대한 학문적 업적인 일련의 저작들을 썼다.

다산 시대의 갑을관계와 현대사회의 갑을관계는 물론 크게 다를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갑을관계에 남아 있는 전근대적 가치와 관행을 해결해야 하는 것은 매우 시급하고 중대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문화적 과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먼저 정부와 국회는 법을 엄격히 집행하고, 갑을관계 해결과 공정거래 정착을 위한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을 더 이상 지체 말고 추진해야 한다.

문화적 차원에서는 갑의 위치에 있는 이들의 엄중한 자기 성찰이 요구된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의식의 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갑을관계는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시장을 포함한 사회는 약탈적 사냥터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사실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을 넘어 존재하는 근대사회의 제일의 가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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