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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와 경제민주화

입력 2013.05.14 10:54

그동안 이 기획에서 친숙한 예술 양식임에도 영화가 그렇게 많이 다뤄지지는 않았다. 오늘은 오래된 영화 하나를 주목하고 싶다. 1974년에 발표된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다. 영화의 원작은 1925년에 발표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이며, 그동안 여러 차례 영화화했다.

1974년 판 <위대한 개츠비>가 나름 유명한 까닭은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났다기보다 당시 전성기를 구가한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개츠비의 역할을 맡았다는 점에 있었다.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 등으로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한 레드포드는 이 영화에서 신비롭고 매력적인 인물 개츠비를 인상적으로 연기했다. 마침 이번주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개츠비의 역을 맡은 영화가 개봉된다고 하니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무상급식과 복지국가가 의제화하면서 그와 한 쌍을 이루는 개념으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사진은 지난 2월, 기습 개점 사실을 알리는 대형 유통업체의 체인점 현수막을 보며 허탈해 하는 상인. | 박민규 기자

2010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무상급식과 복지국가가 의제화하면서 그와 한 쌍을 이루는 개념으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사진은 지난 2월, 기습 개점 사실을 알리는 대형 유통업체의 체인점 현수막을 보며 허탈해 하는 상인. | 박민규 기자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지난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작품은 아메리칸 드림의 빛과 그늘을 다룬 미국적인 텍스트이자, 부와 사랑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해부한 고전적인 텍스트다. 여기서 소설보다 영화에 주목하는 것은, 비록 명화의 반열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잭 클레이튼이 감독한 <위대한 개츠비>가 화려하고 다채로운 영상으로 1920년대의 미국 사회, 흔히 ‘재즈 시대’라고 불린 당대의 모습을 생생히 전달하고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0년대 서구 사회는 그 헤게모니가 서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가 ‘팍스 아메리카나’가 본격화했음을 널리 알린 시대였다. 한 자료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수년 사이에 미국 금보유량은 세계의 절반에 육박했고, 세계 자동차의 80%, 전화의 61%를 보유했다. 1923년 1인당 석유 소비량의 경우 프랑스는 37㎏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956㎏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런 미국의 전성시대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이내 1929년 대공황이라는 첫 번째 위기에 도달했다.

그동안 대공황의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토론이 이뤄져 왔다. 그 유력한 설명 가운데 하나가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분석이다. 그는 과잉 생산과 과소 소비에서 대공황의 원인을 찾았다. 상층은 풍요로웠지만 노동자와 실업자를 포함한 하층계급은 빈곤했던 ‘풍요 속의 빈곤’의 시대가 1920년대였다. 뉴욕 주식시장의 주가 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은 이내 전 세계로 파급됐고, 이 경제위기는 1933년 출범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부의 일련의 정책을 통해 비로소 극복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개봉한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영화 신문광고. | 경향자료사진

1970년대 개봉한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위대한 개츠비> 영화 신문광고. | 경향자료사진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내가 떠올리는 것은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1920년대의 특징이 넓게는 현재의 세계 사회, 좁게는 현재의 우리 사회 모습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초점을 우리 사회에 맞춰보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의 경제위기는 그 세세한 원인은 다르더라도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대공황 전후의 시기와 상당히 닮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최근 잠시 시야에서 사라져 있지만 위기에 빠진 우리 경제를 개혁하려는 담론으로 제시된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적어도 2010년 지방선거 이전까지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대중적인 개념은 아니었다. 2010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무상급식과 복지국가가 의제화하면서 그와 한 쌍을 이루는 개념으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구체적으로 동네 빵집·치킨집 등 이른바 골목상권의 위기와 대형마트 입점과 이에 따른 재래시장의 위기로 나타난 자영업 문제, 한진중공업 사태와 희망버스 행진으로 주목받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무엇보다 재벌대기업과 영세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 문제 등이 경제민주화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경제민주화란 한 마디로 시장을 포함한 경제영역의 민주화, 다시 말해 경제행위 주체들의 자유와 평등을 증진시키는 것을 뜻한다.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선 소극적 의미에서의 재벌대기업 개혁을 포함한 공정한 시장질서의 구축과 조세 정의의 확립, 적극적 의미에서의 사회 양극화의 해소가 주요 과제로 제시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출발선에서 기회균등, 과정에서 참여와 통제, 결과에서 공평분배로 나눠볼 수 있다.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성취하기 위해선 재벌개혁, 조세 정의, 양극화 해소 등 개별 정책 대안에 대한 포괄적인 로드맵, 사안의 특성에 따른 구체적인 전략, 그리고 국민적 공감대가 요구된다. 예를 들어 경제민주화의 핵심 영역으로 제시되는 재벌개혁의 경우 공정거래법 등의 법 개정, 기업집단법 등의 법 제정, 엄격한 법 집행, 시민사회의 감시 강화 등이 요구되는데, 크게 보아 포괄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되 사안별로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더불어 모처럼 형성돼 있는 재벌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계속 유지해가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경제민주화가 시장 안에서의 새로운 시대정신이라면, 복지국가는 시장 밖에서의 새로운 시대정신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정치의 일차적 과제가 자원과 가치의 합리적 조정 및 배분에 있다면, 시민 다수가 갈망하는 새로운 정치는 다름 아닌 시장에서의 행위 주체들의 활력을 보장하면서도 시장이 가져오는 불평등을 적절히 제어하는, 다시 말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제대로 구현하는 데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위대한 개츠비>로 돌아가면, 개츠비에 대해 관객들은 묘한 양가적 감정을 갖게 된다. 밀주업 등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개츠비의 타락한 모습에 실망하지만, 데이지에 대한 개츠비의 집착적이나 더 없이 순정한 사랑에는 공감을 느낄 수도 있다. 개츠비의 비극은 아메리칸 드림의 좌절이며, 물질주의에 맞서온 이상주의의 패배다.

<위대한 개츠비>의 무대인 1920년대 재즈 시대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서구문명에 회의를 보이면서 동시에 더 없이 흥겨운 재즈에 심취하던 시대였다. 한편에선 고도성장과 부의 집중이 이뤄지고, 다른 한편에선 부패와 도덕적 타락이 진행되던 시대를 배경으로 개츠비의 위험한 사랑과 모험이 펼쳐진다. 재즈 시대와 적잖이 닮아 있는 현재 위기에 빠진 신자유주의 시대가 과연 어떤 미래를 열어갈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역사가 더 나은 시대로의 끝없는 변화를 보여 왔다면, 경제민주화는 그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제도개혁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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