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라 코스모스를 안고 가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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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라 코스모스를 안고 가는 어머니

입력 2013.05.06 17:23

두 개의 기억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하나는 서울 시내에 관한 기억이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거의 쓰지 않지만 우리 세대가 즐겨 말하는 시내란 사대문 안을, 특히 세종로 사거리에서 동대문까지의 종로를 중심으로 한 지역을 지칭한다. 내가 시내에 진출한 것은 재수생 시절이었다. 인왕산 아래 자락에서 시작해 경복궁, 인사동, 탑골공원, 보신각, 명동, 그리고 남산 아래 자락까지 무던히도 돌아다녔다.

다른 하나는 삼선교에 관한 기억이다. 내가 다녔던 돈암동 용문중학교에서 아주 가까운 삼선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해방 직전 시부모를 모시고 신혼살림을 차렸던 곳이다. 경기도 양주의 시골 출신인 어머니 눈에 비춰졌던 당시 삼선교 모습을 어릴 적에 더러 듣곤 했는데, 식민지 시대 말기 경성의 풍경들인 전차와 다방과 유성기와 태평양전쟁의 전시체제라는 낯선 공간 속에서 어머니가 느끼셨을 놀라움과 두려움을 나중에 사회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이따금 생각하곤 했다. 어머니의 삼선교 이야기는 모더니티를 때로는 옹호하고 때로는 비판하는 나의 양가적인 태도에 무의식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쳐온 것으로 보인다.

양성평등은 더 이상 지나칠 수 없는, 헌신과 희생이란 이름으로 더 이상 유보할 수 없는 소중한 민주주의 가치다. 사진은 ‘어머니 날’을 맞이하여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학생들. 1971년. | 경향자료사진

양성평등은 더 이상 지나칠 수 없는, 헌신과 희생이란 이름으로 더 이상 유보할 수 없는 소중한 민주주의 가치다. 사진은 ‘어머니 날’을 맞이하여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학생들. 1971년. | 경향자료사진

“해방된 역마차에 태극기를 날리며 누구를 싣고 가는 서울거리냐. 울어라 은방울아, 세종로가 여기다. 삼각산 바라보니 별들이 떴네.”

어머니는 노래 듣기를 좋아하셨다. 시골에서 채마밭을 돌보실 때도, 도시로 이사 나와 가사를 도맡아 하실 때도 대중가요를 즐겨 듣거나 흥얼거리셨다.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1948년 장세정이 부른 <울어라 은방울>(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의 1절이다. 요즘도 세종로 인근에 약속이 있어 누군가를 기다릴 때 나도 모르게 삼각산을 한두 번 바라보게 된다. 이 노래에는 20대 초반의 어머니가 갖고 계셨을 그 어떤 느낌과 정서가 살아 있는 듯해 내게는 애틋한 곡이다.

10대와 대학생 시절에 여느 아이들처럼 나 역시 팝송에 열광했다. ‘월간팝송’을 매달 사 보았고, 용돈을 받으면 당시 백판이라고 불린 음반을 부지런히 사 모으기도 했다. 1985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 가끔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아들 방에서 끝없이 들려오던 밥 딜런의 포크, 마일즈 데이비스의 재즈, 킹 크림슨의 프로그레시브,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뉴 웨이브를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하는 것이었다.

굳이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회이론을 떠올리며 사회적 위치에 따른 취향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어떤 예술양식이든 그것이 갖는 사회적 의미다. 문학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아니면 영화든 우리가 예술을 감상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공감과 위안을 얻는 데 일차적인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위안과 공감을 통해 타자들과 명시적·묵시적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데 예술의 사회학적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 저녁 늦게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방안에 어지럽게 널려 있던 음반들이 자기 케이스에 꽂혀 언제나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자유의 종이 울어 팔일오는 왔건만 독립의 종소리는 언제 우느냐. 멈춰라 역마차야, 보신각이 여기다. 포장을 들고 보니 종은 잠자네.”

노래 ‘울어라 은방울’이 수록된 장세정의  앨범. | 경향자료사진

노래 ‘울어라 은방울’이 수록된 장세정의 <연락선은 떠난다> 앨범. | 경향자료사진

<울어라 은방울>의 2절이다. 이 노래 가사는 두 버전이 있다. 어머니가 부르시는 노래에서는 이 구절을 들을 수 있었지만, 한국전쟁 이후 리메이크된 곡에는 이 구절이 빠져 있었다. 그 이유는 노랫말을 지은 조명암(본명 조영출)이 월북인사이기 때문이다. 민주화 시대에 와서야 원래대로 불리기 시작한 이 가사에는 해방공간 당시 답답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는 셈이다. 어머니가 보내셨던 20대에는 미군정, 남한과 북한의 건국과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이 펼쳐졌다. 사회학 연구자로서 나는 텍스트를 통해 현대사를 배웠지만, 어머니는 온몸과 마음으로 그 시대를 견뎌내고 살아오셨다.

대학에 합격한 직후 어머니와 둘째 형님과 함께 이제는 없어진 종로2가 양우당 서점에 와서 입학 기념으로 책을 선물받고 보신각 옆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또 다른 노래인 현인이 부른 <서울야곡>을 보면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엔 찢어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흘렀다”라는 구절이 있다. 재수생 시절 무던히도 돌아다닌 탓에 보신각 주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때 어머니는 두 아들에게 보신각 타종을 다정히 이야기해 주셨다. 어머니의 소녀 같은 환한 표정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연보라 코스모스 앙가슴에 안고서 누구를 찾아가는 서울 색시냐. 달려라 푸른 말아, 덕수궁이 여기다. 채찍을 휘두르니 하늘이 도네.”

더러 마음이 어수선해지면 듣게 되는 이 노래에서 가장 좋아하는 마지막 3절이다. 자크 라캉에 따르면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는 대상에 대한 원초적 체험을 이룬다. 내가 타자들과 시민들에 대한 진정하고 일관된 사랑을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 왔다면, 그것은 어머니가 내게 선사한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어머니로부터의 사랑에 대한 기억, 나를 향한 어머니의 순정한 사랑에 대한 기억은 이제까지 나를 움직여온 가장 중요한 힘의 하나였다.

이 구절을 내가 유독 좋아하는 것은 어머니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20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들을 때마다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연보라 코스모스를 가슴에 안고 삼선교와 세종로와 보신각과 덕수궁을 걸어가셨을지도 모르는 어머니의 모습, 한 남자의 아내와 여섯 아이의 어머니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한 여성으로서의 어머니의 정체성을 자연스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전근대적 가부장적 권력이 얼마나 많은 이 땅 어머니들의 삶과 정체성을 억눌러 왔는지를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양성평등은 더 이상 지나칠 수 없는, 헌신과 희생이란 이름으로 더 이상 유보할 수 없는 소중한 민주주의 가치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자, 종자, 순자. 어머니의 이름이시다. 어머니라는 보통명사가 아닌 당당한 자기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 우종순 여사. 이제는 저 세상에 계시지만 어버이날을 맞이해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다.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음을.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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