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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의 노래와 신자유주의의 종언

입력 2013.04.22 17:41

최근 내 시선을 끈 뉴스의 하나는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의 사망이다. 대처의 사망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대처는 신자유주의를 상징하는 정치가다. 1980년대 이후 환호와 증오를 동시에 받아온,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물론 다수의 시민들을 고뇌하게 만들어온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U2의 1987년도 앨범  | 경향자료사진

U2의 1987년도 앨범 <조슈아트리> | 경향자료사진

이론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새로운 버전이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중시했다면,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개입에 맞서는 시장에서의 자유를 특권화한다. 시장에서의 자유가 경쟁 메커니즘에 의해 보장된다는 점에서 경쟁은 신자유주의의 기본 원리이자 자본주의의 생산 및 재생산을 담당하는 조정원리를 이룬다.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경쟁은 지고지순의 미덕으로 간주되며, 무한경쟁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승인된다.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 낳은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시장 메커니즘을 정상화함으로써 생산과 분배의 효율성을 제고시킬 수 있다는 논리가 신자유주의의 핵심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역사적으로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의 이른바 ‘국가의 실패’를 대신해 등장한 발전전략이다. 신자유주의를 적극 채택한 사례로는 1980년대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가 꼽힌다. 특히 영국의 대처 정부는 세금감면, 규제완화, 민영화, 사회보장기금 삭감 등의 정책들을 통해 시장에의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이러한 전략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진행된 포스트포디즘(post-Fordism)이라 불리는 자본주의 유연화 모델과 결합하여 침체된 경기를 회복시키는 데 어느 정도 가시적 성과를 가져왔다.

딱딱한 이야기가 길어졌다. 대처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핵심 논리와 역사적 등장을 자연 떠올리게 됐다. 1980년대는 개인적 경험에서도 잊을 수 없는 시절이었다. 전반부에는 서울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다녔고, 후반부에는 독일에서 사회학 공부를 이어갔다. 영국의 대처 정부와 독일의 콜 정부가 추진하던 신자유주의를 직접 목도할 수 있었기에 대처의 사망 소식은 당시 내가 가졌던 상념들을 돌아보게 했다.

1980년대 후반 독일 대학은 1968년 68혁명의 분위기가 적잖이 퇴조되고 신자유주의가 절정에 달하면서 혼돈스러운 풍경을 보여줬다. 한편에서는 새롭게 부상한 녹색당에 대한 지지가 작지 않았지만, 다른 한편에선 과도한 경쟁논리가 대학사회에도 강화하면서 자유와 진리 탐구라는 대학 특유의 활력이 상실돼가고 있었다. 그런 혼란스럽고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나를 포함한 학생들에게 큰 위안을 안겨준 것 가운데 하나가 아일랜드 출신의 록그룹 유투(U2)의 노래들이었다.

U2가 1987년에 발표한 <조슈아트리(The Joshua Tree)>는 팝 음악 역사상 기념비적 앨범이다.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보여준 사회비판적 태도는 젊은 세대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얻었다. 당시 록 음악이라고 해서 모두 비판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더 클래쉬(The Clash)처럼 U2보다 더 급진적인 펑크록 그룹들도 있었다. U2가 특히 관심을 모은 것은 뜻 깊은 가사와 록 특유의 연주에 있었다.

[The Joshua Tree]에는 사랑과 신앙에서 사회 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곡들이 담겨 있다. ‘With or Without You’는 발표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요즘도 음악방송에서 가끔 들을 수 있기도 하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나는 아직도 내가 찾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어(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다. 인권과 환경 등 다양한 사회운동에도 적극 관심을 보여온, U2를 대표하는 보노(Bono)는 이 곡이 기독교 신앙에 관련된 곡이라고 말한 바 있지만, 그 제목에 담긴 다의적 의미는 신자유주의의 황량한 현실에 내동댕이쳐진 젊은 세대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기억된다.

전 영국 총리 대처의 신자유주의정책에 희생됐던 사람이나 반대했던 사람들은 대처의 죽음을 신자유주의의 파산에 비유했다. 4월 17일 대처의 장례행렬이 지나는 가운데 ‘편히 쉬길(Rest in Peace)’이라는 조사를 비꼰 ‘창피하게 쉬길 (Rest In Shame)’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 모습. | AP/연합

전 영국 총리 대처의 신자유주의정책에 희생됐던 사람이나 반대했던 사람들은 대처의 죽음을 신자유주의의 파산에 비유했다. 4월 17일 대처의 장례행렬이 지나는 가운데 ‘편히 쉬길(Rest in Peace)’이라는 조사를 비꼰 ‘창피하게 쉬길 (Rest In Shame)’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 모습. | AP/연합

국가의 실패에 따른 시장의 복권을 부각시킨 신자유주의 전략은 1990년대에 들어와 한계에 직면했다. 사회보장의 축소는 소득분배를 악화시키고, 노동시장 유연화는 고용불안 및 실업을 증대시킴으로써 신자유주의 정부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약화시켰다. 주목할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영국의 블레어 정권 등 적지 않은 국가들에서 새로운 중도진보 정부가 등장했지만, 이들 역시 신자유주의로부터 그렇게 자유롭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모델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지속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가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 것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통해서다. 하지만 이후 최근까지 진행된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은 듯하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평가하는 시각은 이중적이다. 한편에서는 미국식 금융체제의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났다고 보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신자유주의의 종언이 시작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전자의 이슈에 대해선 나름대로의 공감대가 형성됐는데,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수렴돼 왔다. 하지만 후자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려 왔다. 진보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의 몰락이 자명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그 주장이 섣부르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이라고 믿어.
그러면 모든 색깔들이 하나가 될 거야.
하나가 될 거야.
그래 나는 여전히 달리고 있어. (…)
나는 아직도 내가 찾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어.”

대처의 사망 소식에 오랜만에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를 들어봤다. 그들이 꿈꾸는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적으로 믿음이 더욱 두터워지는 세계인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자유와 평등이 더욱 실현된 세계일 것이다. 경쟁 메커니즘이 가져오는 효율성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인간성을 파괴하고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것이라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하고 실현가능한 대안적 발전모델을 구체화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우리 인류는 이제 신자유주의와 과감히 결별해야 할 때가 됐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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