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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철망 앞에서 생각하는 한반도 평화

입력 2013.03.05 14:12

2009년 모 주간지에 비무장지대(DMZ)와 민통선 기행기를 연재한 적이 있다. 인천시 강화의 서부전선에서 강원도 고성의 동부전선에 이르기까지 분단의 현장을 찾아간 그 여행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이 2월 13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출경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이 2월 13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출경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에 따라 한반도에는 남한과 북한의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해 여기로부터 동일하게 2㎞씩 물러나 비무장지대를 뒀다. 155마일의 휴전선이 그어진 것이다. 그리고 1954년 2월 미국 육군사령관 직권으로 휴전선 일대의 군사작전과 군사시설 보호, 보안 유지를 목적으로 남방한계선 바깥으로 5~20㎞의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이 선이 바로 민간인통제구역선, 즉 민통선이다.

이 기행에서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경기도 김포와 인천시 강화였다. 그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곳은 북한 땅과 마주보는 강화도 북단 승천포였다. 승천포는 고려 고종이 개경을 떠나 강화로 천도할 때 도착한 포구다. 그 옛날 포구자리 앞 언덕 아래에 고종의 도착과 대몽 항쟁을 기념하는 비석이 외롭게 서 있었다. 거기서 몇십m 떨어진 곳에는 휴전선임을 알리는 철망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논둑길을 터벅터벅 걸어가 철망 앞에 서서 좁은 바다 너머 북한 산야를 바라봤다. 그때 떠오른 노래가 김민기의 ‘철망 앞에서’였다.

내 마음에 흐르는 시냇물 미움의 골짜기로 / 물살을 가르는 물고기떼 물 위로 차 오르네 (…)

이렇게 가까이에 이렇게 나뉘어서 /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쳐다만 보네

이 곡은 1992년 김민기에 의해 만들어지고, 1993년 <김민기 2집>에 발표됐다. 장필순, 한동준과 함께 불렀다. 이 노래는 1999년 윤도현밴드 4집 <한국 Rock, 다시 부르기>에 리메이크됐는데, 거기선 김윤아, 김경호, 김장훈, 박기영, 박완규, 임현정이 함께 불렀다.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후 김민기와 윤도현밴드의 이 노래가 내게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김민기는 1970년대 이후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민중가수다. 이제는 고전이 돼버린 그의 ‘상록수’, ‘아침 이슬’ 등은 민주화세대를 상징하는 노래다. ‘상록수’는 2008년 고 노무현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영결식장에서 울려 퍼지기도 했다. 1970년대에 주로 발표된 김민기 노래들은 민주화시대에 만들어진 민중가요들과 비교할 때 훨씬 더 부드럽고 서정적이다. 그래서인지 더 긴 생명력을 갖는 듯하기도 하다.

앨범 | 경향자료사진

<김민기 2집> 앨범 | 경향자료사진

김민기의 ‘철망 앞에서’를 이야기하는 것은 철망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남한과 북한의 군사적 긴장이 최근 다시 고조됐기 때문이다. 우려했던 대로 2월 12일 북한은 제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한반도를 또 다시 위기로 몰아넣은 북한의 태도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주목할 것은 이번 3차 핵실험이 주는 의미는 앞선 실험들과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문정인 교수가 주장하듯이 북한이 고농축우라늄탄까지 가질 수 있다는 의심이 근거를 갖게 됐고, 따라서 미국의 핵과학자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말한 ‘3 No’(No more bomb, No better bomb, No export)에 주력하는 새로운 차원의 대북정책을 검토해야 할 상황이 됐다.

2월 25일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 북핵 위기의 대처는 침체에 빠진 경제의 활성화와 더불어 올 한 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부상한 셈이다. 북한의 일련의 핵실험 과정을 돌아보면, 진보적 햇볕정책이든 보수적 강압정책이든 모두 면책될 수 없어 보인다. 정책의 의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결과다. 어떤 정책이더라도 선과 악의 심정윤리보다는 결과의 득실에 대한 책임윤리가 우선시돼야 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평화 공존을 모색하는 것은 일종의 고차방정식이다. 북핵문제로 얽혀 있는 남·북 및 북·미 관계에 지정학(地政學)적으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구도가 결합돼 있고, 지경학(地經學)적으로는 미·중 2강 구도로의 세계 경제 대전환이 중첩돼 있다. 이러한 현실은 북핵 위기의 해결이라는 당면과제는 물론 평화체제 구축 및 민족통일이라는 장기적 과제가 특정 국가의 일방적 주도가 아닌 다자적 틀에서 해결돼야 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이제 대북정책에서 일종의 ‘제3의 길’ 또는 ‘시민적 관점’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제3의 길이란 포용정책과 강압정책을 모두 넘어서는 것을, 시민적 관점은 무엇보다 시민적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것을 뜻한다. 시민적 관점에서 현재 시급한 것은 시민 다수를 불안케 하는 전쟁 위험의 억지와 이를 위한 안정적 평화체제의 구축이다. 시민 다수가 원하는 것은 기존 프레임의 관성적 옹호가 아니라 현실적 안보와 이상적 평화를 동시에 성취할 수 있는 새로운 한반도 정책 프레임의 구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기행에서 잊을 수 없는 곳 중의 하나는 철원 성재산 관측소였다. 관측소에서 비무장지대 안을 내려다보니 거기엔 평강으로 가는 5번 국도가 눈에 들어왔다. 경상남도 마산에서 출발해 춘천과 화천을 거쳐 여기까지 온 5번 국도의 노란 흙길이 푸르른 비무장지대 안에 선명히 도드라져 보였다. 길이 저렇게 이어져 있는데 발길은 철망으로 끊어졌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새삼 분단의 현실을 다시 자각하게 됐다.

빗방울이 떨어지려나 들어봐 저 소리 / 아이들이 울고 서 있어 먹구름도 몰려와

자 총을 내리고 두 손 마주잡고 /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버려요

김민기는 분단의 현실을 아이들의 울음으로, 새로운 평화의 모색은 녹슨 철망을 걷어내는 것으로 표현한다.

평화란 무엇인가. 성재산 관측소에서 생각한 게 있다면 그것은 길을 잇는 것이다. 길이 있으되 저렇게 끊어진 길을, 녹슨 철망을 걷어내어 다시 잇는 것, 그 길을 통해 사람이 걸어가고 또 걸어오게 하는 게 진정한 평화일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이상적 기획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존이 걸린 실존적 기획이자, 우리의 미래를 좌우하는 현실적 목표다. 앞선 정부들의 경험을 돌아볼 때 문제 해결이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새 정부의 사려 깊고 실효성 있는 대북정책을 기대하고 싶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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