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길은 강을 곁에 두고 걷는 길이다. 그래서 길을 걷다보면 강 마을 삶의 이야기와 옛 문화의 흔적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입춘이 지났건만 봄은 아련하고 길도 없는 눈밭에는 인기척이 드물다. 잔설이 남아 있는 강둑 언저리에 겨우내 맴돌던 칼날 같은 바람의 발자국이 여전하다. 그 흔적 위로 언 밤을 지새운 겨울철새들의 발자국 무늬가 봄을 재촉하는 듯 부산하다. 봄이면 철쭉 흐드러지는 그 산마루 아래 옛 나루터를 지나 강 건너 저편 강마을까지 이어지는 옛길, 굽이굽이 이어지는 여강길을 걷는다.
여강에서 유유히 떠가는 황포돛대.
남한강을 따라 걷는 여주 여강길
계절이 미처 떠나지 못한 강가에 황포돛배가 봄빛을 머금은 물안개를 그리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얼어붙은 강이 풀리는 봄날이 오면 다시 높이곰 돛을 올리고 저 강을 흐르고 또 흐르리다. 이 땅의 토박이들은 여주 땅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저 물줄기를 여강(驪江)이라 불러 왔다. 남한강의 한 줄기인 여강은 어머니의 품만같이 가진 것을 모두 내어주는 강이다. 강줄기는 생명의 젖줄이 되어 땅의 기운을 북돋우고 삶을 살찌우는 강. 그래 사람들은 그 강가에서 태어나 살며 사랑하고, 허리가 굽어질 때까지 그 강 언저리에 살고자 했다.
여주 나들목을 나와 신륵사 방향으로 길을 달리다 여주의 관문으로 일컬어지는 기좌제일루(畿左第一樓)의 누각인 영월루에 오른다. 발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여강은 여주를 관통하는 남한강을 일컫는다. 여강 물길의 흐름과 마을터의 자리매김을 눈짐작으로 가늠하고 여강길의 하루걸음을 셈해본다. 강원도 오대산을 떠나온 물길은 충청북도와 경기도를 거치면서 큰 흐름이 되고, 그 세찬 힘으로 큰 자락의 물길로 굽이치며 서울까지 오른다.
먼 발치로 천년 고찰 신륵사 강월헌과 다층전탑의 모습이 높이곰 솟아 있다. 그 절집 아래 모래사장부터가 ‘여강길’의 시작이다. 여강길은 강을 곁에 두고 걷는 길이다. 그래서 길을 걷다보면 강 마을 삶의 이야기와 옛 문화의 흔적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여강의 물길을 따라 옛 시절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을 절집을 찾아간다.
현재 녹색농촌체험마을 위원장으로 도리마을의 일을 도맡고 있는 여흥 민씨 종손인 민남식씨가 마을의 역사와 아홉사리과거길의 유래를 설명해준다.
저 강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은 어쩌면 천년고찰 신륵사일지도 모른다. 봉미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신륵사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강변 사찰이다. 절 이름을 ‘신륵’이라고 한 데는 미륵 또는 왕사 나옹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전설에서 기인한다. 고려 고종 때 건너편 마을에 나타난 용마가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웠는데, 이때 신력(神力)으로 말을 제압하였다고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고려 때부터 뭇사람들은 이 절을 벽절이라고 불렀다. 경내의 동대(東臺) 위에 위치한 다층전탑에서 유래한 것으로 짐작한다. 물길을 오가던 뱃사공들이 자욱한 강안개로 시야가 흐릿해지면 높이 솟은 다층전탑을 보고 뱃길과 거리를 가늠했다고 전해지는데, 등대 역할을 한 셈이다. 벽탑 아래에는 나옹의 화장지에 세워진 삼층석탑 옆에 6각 정자인 강월헌(江月軒)이 자리한다. 암벽 끝에 앉혀진 이 정자는 노을 즈음 때나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면 강과의 어우러짐이 빼어나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때문에 절집을 찾는 이들은 경내를 둘러본 후 벽탑을 지나 어김없이 강헌루에 오른다. 그리고 한동안 머무르며 안개 자욱한 물길을 바라보거나, 황금빛으로 물든 강의 실루엣을 바라본다. 잠시 머무르며 마음을 바라보는 자리인 셈이다. 선인들은 물길을 조망하는 것은 그저 바라봄이 아니라 마음을 내려놓고 정신을 수양함과 같다고 여겨왔다.
신륵사를 내려와 본격적으로 길을 걸을 채비를 한다. 여강길은 역사의 흔적을 더듬으며 자연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명소들을 둘러볼 수 있는 강변 도보길이다. 옛나루터길, 세물머리길, 바위늪구비길 등 3개의 코스로 나뉜다. 총연장 53㎞의 길로 각 코스당 대략 7시간 내외가 소요된다.
그 중 탐방객들의 발걸음이 늘고 있는 1코스로 길을 잡는다. 일명 ‘옛나루터길’이라 불리는 이 코스는 16.5㎞의 길로 대략 약 6시간 남짓 소요된다. 옛나루터길은 영월루를 시작으로 금은모래 강변공원을 지나 부라우나루터, 우만리나루터를 거쳐 흔암리를 따라 아홉사리과거길의 종점인 도리마을까지 이르는 길이다. 때문에 이 길을 따라 강변길을 걷는 동안 아름다운 강변나루의 풍치와 고즈넉한 산길의 운치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아홉사리과거길은 흔암리에서 시작해 여흥 민씨 집성촌인 도리마을 사이의 남한강변을 따라 걷는 길로 우뚝한 아홉 굽이 모롱이길을 굽이굽이 돌아간다. 강변 둔치를 지나 산길을 조금 오르니 인공적으로 꾸미지 않은 천연상태의 오솔길이 그대로다. 때 묻지 않은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탁 트인 시야로 여강의 물줄기가 흐른다. 일부러 손품을 들여 꾸민 길과는 다른 때 묻지 않은 옛길 그대로의 풍경이 주는 운치가 그대로다. 작은 오솔길을 걷다보니 송림이 울창한 숲속 풍경과 남한강 줄기를 따라 걷는 길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아홉사리과거길의 옛 이야기를 따라
여강길의 종점이자 아홉사리과거길의 시작점인 도리마을은 앞으로는 소무산 아홉사리 고개가 자리하고, 뒤쪽으로는 유유히 흐르는 푸른 남한강을 가진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마을이다. 한때는 바로 마을 앞강에 범선이 정박하고 곡물이며 소금·생선 등의 산물들이 서울 등 중부 내륙으로 유통되었다. 또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를 보러 가던 이들이 강을 건너 마을 앞 아홉사리과거길을 따라 서울과 충주 등으로 오르내렸다.
여강길의 종점이자 아홉사리과거길의 시작점인 도리마을은 앞으로는 소무산 아홉사리 고개가 자리하고, 뒤쪽으로는 유유히 흐르는 푸른 남한강을 가진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마을이다.
여흥 민씨 종손으로 현재 녹색농촌체험마을 위원장님으로 도리마을의 일을 도맡고 있는 민남식씨(여주군 점동면 도리)가 마을의 역사와 아홉사리과거길의 유래를 설명해준다. “예전에는 나루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었습니다. 여기 바로 아래에도 나루터가 있었지요. 강천나루라고 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습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하루 몇 차례씩 뗏목배들이 강을 오르내렸는데, 강원도 정선과 영월에서 땔감을 가득 실은 뗏목들이 줄지어 내려오면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강원도 원주에서 흘러나오는 섬강과 용인에서 발원한 청미천이 합류되는 곳이 바로 이 도리마을이다. 민씨는 30∼40년 전까지만 해도 땔감을 싣고 강으로 흐르던 뗏목배가 마을의 앞강을 오르내렸다고 설명한다.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어야 뗏목이 강에 오를 수가 있었지요. 봄부터 여름철에는 뗏목배가 많이 다녔었으니까. 저 아래 물레방아터 자리에 주막도 있었고. 사공들이 좀 쉬기도 하고 양평 두물머리를 지나서 뚝섬, 마포나루까지 배들이 다녔습니다.”
하지만 육로가 열리면서 찾는 이들이 드물었고 옛 시절도 잊혀졌다. 그러다가 최근 여강길이 다시 열리며 사람들의 발길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발길 머무르는 자리마다 옛 이야기가 쏠쏠한 여강길. 옛길에는 지나간 이들의 발자국과 까마득한 세월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옛이야기, 모두 한 식구 같은 인심이 여전히 남아 있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