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공하는 사회학에서 연구대상으로 삼지 않는 주제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일상을 이루는 주요 요소임에도 잘 다뤄지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만화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유는 간명하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에 대한 가치판단이 연구자의 주제 선택에 의식·무의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석사 및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해온 지 20여년이 되는데, 아직까지 만화를 논문 주제로 선택한 학생을 만나지는 못했다.
주호민 작, 무한동력|동양북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당장 우리 일상을 사실상 지배하는 포털의 주요 코너 가운데 하나가 웹툰이다.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거의 매일 조석의 <마음의 소리>나 정다정의 <역전야매요리>, 곽백수의 <가우스전자> 등을 볼 것이다. 나 역시 지하철을 탈 때나 일에 지쳤을 때 더러 웹툰을 찾아보게 된다. 웹툰은 이미 일상 속에 성큼 들어와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웹툰 작가는 최훈·강풀·주호민이다. 최훈의 작품 중 인상적인 것은 <삼국전투기>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숱한 전투들을 새롭게 해석하는 그의 역량이 놀랍고 흥미진진하다. 강풀을 알게 된 것은 <순정만화>를 통해서였다. <그대를 사랑합니다><26년>에서 볼 수 있듯이 강풀은 젊은 작가답지 않게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시민이라면 갖추어야 할 역사의식을 감동적으로 전달한다.
주호민은 강풀과 유사하면서도 독자적인 세계를 펼쳐 보인다. 소소한 일상을 생동감 있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강풀과 유사하다. 하지만 강풀과 비교해 치열하다기보다는 현실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서 한결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군대 이야기를 다룬 <짬>, 전래 신화를 창의적으로 재구성한 <신과 함께>, 그리고 이제 이야기하려는 <무한동력>(동양북스, 2009)이 그가 내놓은 작품들이다.
“꿈이라…. 이룰 꿈이란 게 특별히 없는데…. 꿈이 꼭 있어야 하는 건가? 설사 있다 하더라도… 아저씨처럼 불가능한 꿈을 꾸고 싶지는 않다구요.”
무한동력을 연구하는 하숙집 주인 한원식의 질문에 대한 주인공 장선재의 독백이다. 꿈이 있되 꿈을 꾸지 않는, 꿈을 상실한 세대의 이야기가 <무한동력>의 내용을 이룬다. 이 작품은 포털 다음에 연재된 이후 단행본으로 나왔고, 최근 네이버에 다시 연재되고 있다.
만화는 취업을 준비하는 복학생 장선재가 산동네 하숙집에 오면서 시작한다. 기본 줄거리는 장선재가 대학을 그만두고 네일아트점에서 일하는 김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휴학생 진기한, 철물점을 운영하는 집주인 한원식과 그 자녀인 고등학생 한수자와 한수동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작가는 후기에서 장선재는 취업준비생, 김솔은 비정규직, 진기한은 공시생(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을 대표해서 만든 인물이라고 적고 있다.
작품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하숙집 마당에 설치된, 주인아저씨가 만들고 있는 무한동력기관이다. 과학적으로 무한동력기관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주인아저씨는 포기하지 않는다. 위기의 청년실업이라는 우울한 시대적 상황과 무한동력기관이라는 불가능하나 포기할 수 없는 꿈을 병치시킴으로써 주호민은 청년 세대가 겪는 아픔과 희망을 잔잔하지만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위기의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 시급하다. 사진은 취업박람회 행사장에서 채용공고판을 지켜보고 있는 한 구직자. | 김정근 기자
시선을 현실로 돌려보면 청년실업은 매우 중대한 사회문제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1월 현재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 3.4%의 2배를 넘는 7.5%에 달한다.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은 발표된 통계에 취업준비자, 구직포기자, 불안정 취업자 등을 포함하면 실제 청년실업률은 2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 때 취업 여부를 물어보는 것은 이제 금기사항에 속한다.
청년실업을 가져온 원인은 다양하다. 세계화의 충격 및 정보사회의 진전에 따른 ‘고용 없는 성장’ 같은 세계사적 조건에 더하여 과잉 고학력화 및 구인·구직자 간의 서로 다른 눈높이에 따른 인력 수급의 불일치인 ‘잡 미스매치’와 같은 우리 사회 특수 조건 등에 이르기까지 안팎의 요인들이 중층적으로 결합돼 있다.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여러 정책들이 추진돼 왔다. 노무현 정부의 예스(YES·Youth Employment Service) 프로그램이나 이명박 정부의 행정인턴제는 대표적 사례다. 또 지난 대선 과정에도 다양한 해법들이 경쟁적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여권은 정부·민간 합동의 청년취업센터를 설립하고 해외취업장려금을 도입하며 멘토제를 통해 취업시장에 강한 인재를 육성한다는 계획 등을 제안한 반면, 야권은 공공기관과 대기업에 매년 3%의 청년을 고용하도록 하는 ‘청년고용의무할당제’를 실시하고 최저임금의 50% 수준을 최대 1년 지급하는 ‘청년취업준비금’ 제도 등을 내놓았다.
곧 출범할 박근혜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할지 지켜봐야겠지만, 앞선 정부의 경험을 돌아볼 때 결코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생각한 만큼 괜찮은 일자리를 늘리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임시직 고용으로는 젊은 세대들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위기의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 시급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더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느냐에 있다. 이는 정부와 기업, 대학, 그리고 시민사회 가운데 어느 한 주체만 노력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국가들의 경험을 적극 벤치마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실질적인 양보에 기반한 일자리 만들기의 역사적 대타협을 추진해야 한다.
<무한동력>으로 돌아가면, 진기한이 인턴을 그만두자 그곳 직원들이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벌써 인턴이 두 명이나 그만뒀네. 나 원~ 요즘 젊은 친구들은 왜 그렇게 끈기가 없대요?
글쎄요… 과연 이게 끈기의 문제일까요…?”
그렇다. 끈기의 문제가 아니다. 입학하자마자 각종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종일 내내 도서관을 떠나지 못한 채 취업준비에 열중하는데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면, 이는 그들의 책임을 넘어선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 사회의 책임이다. 곧 시작될 졸업 시즌에 대학을 떠나는 제자들과 떠나지 못하는 제자들을 지켜보면 더없이 안타깝고 쓸쓸하고, 또 미안하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