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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는 옛사랑의 그림자일까

입력 2013.02.05 15:39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 …… /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시인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다. 이 시를 처음 읽은 것은 1979년 대학 1학년 겨울방학 즈음이었다.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문학과지성사·1979)에 실린 이 작품은 그 제목이 인상적인 만큼 1960∼70년대 산업화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큰 공감을 불러모았다.

이 시의 메시지는 4·19세대의 자기 성찰이다. 변혁을 꿈꿨지만 이젠 그것이 두려운 세대의 솔직한 자기고백이다.

유신시대와 80년대, 민주화를 지지했던 현재의 50대는 이번 대선에서 정치적 구도보다는 현실적 대안을 중시하는 정책적 구도를 택했다. 사진은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를 선포한 1970년대, 학원가를 걷는 학생들. | 경향자료 사진

유신시대와 80년대, 민주화를 지지했던 현재의 50대는 이번 대선에서 정치적 구도보다는 현실적 대안을 중시하는 정책적 구도를 택했다. 사진은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를 선포한 1970년대, 학원가를 걷는 학생들. | 경향자료 사진

1970년대 우리 사회는 유신체제라는 정치적 독재와 중화학 공업화라는 경제적 성장이 기묘하게 결합돼 있었다. 한편에선 긴급조치가 잇달아 발동됐고, 다른 한편에선 중산층 집에 텔레비전·전축·냉장고가 역시 잇달아 들어온 시기였다. 그런 압축발전 과정 속에 4월혁명의 열정이 기성세대가 된 이들에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추억되고 있다.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인의 시선이다. 시인은 감정을 배제한 채 생활의 풍경을 일상의 언어로 담담히 전달한다. 문학평론가 김주연의 지적처럼, 김광규의 시들은 말과 삶이 어울리는 단순성을 효과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시인의 말은 짐짓 냉정할 정도로 객관적이지만, 그 표현의 객관성은 뭔가 어색하고 불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감동을 안겨준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오래 전 읽었던 이 시가 새삼 떠오른 것은 12월 대선 결과를 지켜보고 나서였다. 이번 대선이 갖는 특징 중 하나는 보수와 진보세력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내걸었다는 점이다. 사회양극화 해소가 일차적 과제인 만큼 분배의 위기를 해결할 경제민주화와 재분배의 위기를 해결할 복지국가 구축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부상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과제들이 세계화의 충격이 가져온 결과라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사회양극화를 강화하고, 이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이중 과제로서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구축이 요구돼 왔다. 위기의 중소기업·자영업·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특단의 대책은 물론 일자리·노후·주거·교육·가계부채의 ‘5대 불안’ 해소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강제한, 시급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중차대한 과제들이었다. 바로 이런 흐름 속에서 민주화는 더 이상 국민 다수가 공감하는 시대정신 또는 집합적 가치로서의 의미를 잃어온 것으로 보인다.

김광규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 문학과지성사

김광규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 문학과지성사

민주화는 유신체제 이래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시대정신이었다. 4월혁명에 역사적 기원을 둔 민주화 열망은 유신과 전두환 정권에 맞서 학생·노동·농민운동을 추동하고, 1980년 광주항쟁을 거쳐 1987년 6월항쟁에 이르러 군부정권을 종식시키고 민주화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적지않은 이들에게 시대정신으로서의 민주화는 이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주는 게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50대의 선택이다. 현재 50대는 베이비붐 세대이자 6월항쟁을 적극 지지했던 이들이다. 또 이들 다수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선 보수적인 박근혜 후보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왜일까? 50대의 선택에 대한 해석으로 흔히 고령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보수화론이 제시된다. 하지만 이 견해는 왜 50대가 90%(방송사 출구조사 결과)에 가까운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이에 대해선 50대가 갖는 ‘정체성의 정치’에 주목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사회 50대는 이중적 불안 속에 놓여 있다. 하나가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이 말한 직장으로부터의 ‘퇴출의 공포’라면, 다른 하나는 고령화에 따른 ‘노후생활의 공포’다. 불안의 일상화는 50대 다수로 하여금 ‘민주 대 반민주’라는 정치적 구도보다는 어느 세력이 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는가의 정책적 구도를 중시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마음은 여전히 젊지만 몸과 세월은 어느새 인생의 한 순환인 환갑을 향해 나가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인터넷도 배우고 스마트폰도 써보지만, 온통 젊은 세대가 주인공인 대중문화가 적잖이 낯설다. 한때는 민주화운동을 마음 속으로 지지했건만 치열한 이념논쟁에 이젠 외려 거리감이 느껴지는 게 50대 다수의 정직한 자화상일 것이다.

50대의 정치적 선택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투표는 개인의 소중한 권리인 만큼 어느 세력을 선택하든 존중받아야 한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우리 시대의 사회적 변화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포괄적 의미에서의 사회 안에 놓여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원근법적 이해다. 때론 망원경의 관점으로, 때론 현미경의 시각에서 포괄적 의미의 사회에 대한 원근법적 재인식이 요구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 아직도 남아있는 몇 개의 마른잎 흔들며 /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 부끄럽지 않은가 / 부끄럽지 않은가 /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김호기의 예술과 사회]민주화는 옛사랑의 그림자일까

민주화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일까? 민주화 시대가 종언을 고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시대로 나가고 있을까? 앞으로 이 기획에서 나는 예술작품을 모티브로 우리 사회와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풍경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자, 그럼, 여행을 떠나보기로 하자.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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