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봉정암의 ‘찰나’를 카메라에 담다



주간경향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설악산 봉정암의 ‘찰나’를 카메라에 담다

입력 2013.01.22 13:59

설악산 산등성이에 올라앉은 구름이 걷히니 지극한 마음으로 대중을 끌어안았던 관음의 미소처럼 따사로운 햇살이 비로소 석탑을 감싸안는 찰나이다.

관조(觀照). 한자를 그대로 풀면, ‘그대로 비추어 바라보다’로 해석될 수 있다. 서양철학의 미학적 관점에서 관조(contemplation)는 자연이나 미술품을 보고 감동하는 계기나 태도를 의미한다. 이는 아름다운 자연이나 작품을 감상하는 미적 인식의 태도이자 관점이다.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세상을 관조하는 어느 사진가의 걸음을 따라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봉정암(鳳頂庵)을 찾아 오른다. 봉정암은 설악산 소청봉에 있는 백담사 부속 암자이다. 대표적 불교 성지인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로 하늘과 맞닿아 있는 거대한 암석 위에 자리한 석가사리탑을 찾아 수많은 불자들이 찾는 순례지다.

봉정암 석가사리탑. | 장명확

봉정암 석가사리탑. | 장명확

하지만 봉정암에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다.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여정을 확인한 후 산에 오를 채비를 단단히 한다. 사실 당일로 봉정암을 다녀오는 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아침 햇귀가 떠오르기 전에 백담사에 도착할 셈으로 길을 달린다. 백담사에서 봉정암으로 오르는 길은 두 가지다. 백담사에서 영시암 쪽에서 수렴동 대피소로 가는 코스와 오세암을 거쳐서 올라가는 코스다. 수렴동 코스로 길을 잡아 걸으니 이번 여정의 동행인 사진작가 장명확씨가 길잡이가 되어준다. “수렴동 대피소를 지나 쌍폭까지는 대체로 오를 만합니다. 완만한 경사도를 이루며 편한 길입니다. 봉정암 못미쳐 깔딱고개만 넘어서면 되니, 아무래도 이쪽이 오르기에 수월합니다.”

20년 넘게 전국의 사찰을 찾아다닌다는 그는 올해 첫 발걸음으로 봉정암을 찾았다고 전한다. 백담사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니 잔설이 남은 겨울 산풍경에 가슴이 탁 트인다. 수렴동 계곡을 따라 올라 와룡폭포, 쌍폭(雙瀑) 등을 지나 깔딱고개를 넘어서자 숨이 턱에 차오른다. 더 높은 하늘 아래, 설악의 겨울 산자락 깊은 곳에 봉정암이 들어앉아 순례자를 맞이한다.

자연과 어우러진 합일의 경지

10여년 넘게 우리나라의 전통사찰과 이름 없는 암자를 찾아 영상을 담아내고 있는 사진가 장명확씨.

10여년 넘게 우리나라의 전통사찰과 이름 없는 암자를 찾아 영상을 담아내고 있는 사진가 장명확씨.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건너가 도선율사로부터 수계한 후 가사와 발우 및 석가세존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받아가지고 돌아와 동왕 12년(643) 이 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전해진다. 암자 이름을 봉정이라고 한 것은 신라 애장왕 때 조사 봉정(鳳頂)이 이곳에서 수도하였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짐작한다. 봉정암은 현재는 법당과 요사채만 갖추고 있어 그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다만 법당 옆 바위 위에 세워진 봉정암 석가사리탑이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 탑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석탑으로 자장이 사리를 봉안하였던 때보다 훨씬 후대의 양식을 띠고 있어,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자연석 그대로에 탑신을 세워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석탑입니다. 자연과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탑 모양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고 정교한 균형비가 돋보이며, 자연을 배경으로 한 어울림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석탑은 봉정암 오른쪽 암벽 뒤에 세워져 있는 품이다. 거대한 암벽을 지대 겸 기단으로 삼아 세워진 5층 석탑은 옥개석과 탑신석을 각각 하나씩 쌓아올려 세워졌다. 설악산의 능선 위에 서 있는 석탑의 모습은 완전한 형태로 주변의 웅장한 산세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석탑에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는 불자들의 모습이 또한 한데 어우러지는 품이다.

석탑을 마주한 그의 눈빛이 밝아진다. 불교 및 우리 전통문화를 찾아 사진에 담아내는 전통문화 사진작가 장명확씨. 그는 10여년 넘게 우리나라의 전통사찰과 이름 없는 암자를 찾아 영상을 담아내고 있는 사진가다.

“대략 400개 정도의 사찰을 다닌 듯합니다. 처음에는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자연을 찾았는데, 자연 속에 들어앉은 절집을 마주하며 그만 빠져버렸습니다. 이후 사찰 사진을 전문으로 촬영하게 된 셈입니다. 자연에 대한 관조를 그 출발로 볼 수 있습니다. 자연과 어우러진 사찰 풍경,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온전히 어우러짐에 매력을 느낀 것입니다.”

봉정암에 들어서서 석탑을 마주하고도 그는 한동안 카메라를 꺼내지 않는다. 그리 서두를 것 없이 먼저 자연을 바라보고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그가 피사체를 바라보는 자세다.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는 고교시절 카메라를 접하고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면서 사진에 입문하여 30여년 동안 사진을 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대학시절 스승이 문득 던진 ‘수미산(須彌山)을 찾아보거라’는 주문이 평생 화두가 되었다고 말한다. 수미산은 불교의 세계관에 나오는 상상의 산으로 세상은 아홉 산과 여덟 바다가 겹쳐져 있는데, 가장 높은 산이 바로 수미산이다.

설악산 대청봉 아래 자리한 봉정암. | 장명확

설악산 대청봉 아래 자리한 봉정암. | 장명확

그래서 그는 아직도 대상을 마주하기 전에 화두 굴림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마음으로 깨달아야 비로소 보고 느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 사찰은 자연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 점이 바로 사찰 풍경, 불교사진이 지닌 매력입니다. 지금까지 다녀본 사찰 중 설악산 봉정암, 전남 해남의 미황사, 전남 순천의 송광사와 선암사 등이 온전히 마음에 자리한 사찰로 손꼽을 수 있습니다.”

고요한 가운데 마음이 흐르는 찰나
그는 지난 10여년 동안 전통사찰과 우리 전통문화 사진을 주제로 현재까지 다양한 사진작업을 해왔다. “우리 풍경, 우리 문화의 색은 고요하면서도 강렬합니다. 또 사찰은 가장 여실히 우리의 역사와 억겁의 시간이 존재하는 공간이도 합니다. 고요한 가운데 마음이 흐르는 그 찰나를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흰 눈 덮인 설악의 설경을 배경으로 들어앉은 봉정암에 시간이 흐른다. 설악산 대청봉 아래 솟아오른 석탑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마치 순례자의 모습처럼 결연하기까지 하다. 그는 이 시간이 비록 찰나이기는 하여도 분명 시공의 경계를 넘어서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믿는 듯하다. 성스럽고도 신비한 그 자리에서 그는 지극한 마음으로 오래도록 온전한 빛이 깃들기를 기다린다. 순간 탑신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에 세상을 마주했다는 안도감이 배어난다. 고요한 가운데 마음이 흐르는 순간 그가 카메라의 셔텨를 누른다.

사진가 장명확은 서정 풍경이 좋아 자연과 어우러진 우리 전통사찰을 주작업으로 하는 사진가다. 그는 그간 전통사찰은 물론 불교계 큰 스님들의 모습을 담아왔으며, 앞으로도 지금의 작업을 이어갈 것이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