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논란’과 ‘갑의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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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논란’과 ‘갑의 예의’

입력 2012.10.30 11:31

올해 서른인 나는 한화 이글스의 20년 넘은 팬이다. 대구 태생이지만 초·중·고를 대전에서 다녔고,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자연스럽게 빙그레 이글스의 야구를 보았다. 친구들은 운동신경이 부족한 내게 공을 주워오라 시키면서 “장종훈도 한때는 볼보이였어”라는 말을 즐겨했다(돌이켜보니 나는 ‘볼셔틀’이었던 거다!). 그건 대전지역 소년들의 관용어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화 이글스 김응용 감독이 지난 10월 15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김태균, 류현진(오른쪽) 선수와 악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화 이글스 김응용 감독이 지난 10월 15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김태균, 류현진(오른쪽) 선수와 악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 ‘리그 에이스’ 한화 이글스 류현진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는지 여부가 한창 논란이다. 나는 이미 한국일보 지면에 류현진의 도전을 허락해 달라는 내용의 칼럼을 쓴 적도 있다. 그런데 열 살 소년의 우상 빙그레 이글스를 무참하게 짓밟던 무서운 코끼리 할아버지(김응용 감독)가 본격적으로 선수를 ‘디스’(상대방을 헐뜯는 행동)하셨다. 9승 투수가 어디를 가느냐 하고 인터뷰를 통해 자기 소망을 밝히는 게 해당행위라 한다. 개그라 쳐도 굉장히 썰렁하다. 차라리 “이적을 하려고 하다니 이런 이적행위가!”라고 하실 것이지.

코할아버지 스타일은 안다. 사실 이분이 이럴 줄 알았다. 그런데 코할아버지야 계약기간이 2년이나, 한화 팬에겐 류현진이 단순한 선수 한 명이 아니다. 대전구장에서 안타를 계속 맞아도 오히려 이름을 부르는 응원소리가 높아지는 선수는 그밖에 없다. 포스팅 제도의 취지가 ‘재능 있고 팀에 기여한 선수가 조금 일찍 진출하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라면, 그만큼 취지에 걸맞은 선수는 없다. 류현진이 한화를 원망하게 된다면 정말로 가슴이 아플 것이다.

감독 입장에서 류현진을 놓치기 힘든 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좋은 말로 설득을 해야 한다. 그에게 새로운 동기부여를 할 궁리도 해야 한다. 지금 류현진의 진로는 온전히 구단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로선 자기 생각을 말하고 팬덤의 지지라도 이끌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반면 구단과 감독은 류현진을 설득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선수의 ‘언론플레이’는 이해가 되지만 구단과 감독의 ‘언플’은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다. 그런 걸 해당행위라 그러면 선수가 구단에 전근대적 충성의 개념으로 멸사봉공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런데 팬들 중에도 류현진을 붙잡는 건 구단의 당연한 권리이고, 감독 인터뷰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이가 있다. 슬프다. 구단의 입장에 감정이입하여 선수를 자기 재산인 양 여기는 것 같다. 제도적으로 보장된 권리가 있다고 해서 모든 권리행사를 당연시하거나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류현진의 인터뷰를 금지하는 제도도 없는데 인터뷰를 들으면서는 왜 불쾌감을 느낀단 말인가.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갑’들의 예의가 부족하다. 갑들이 무슨 짓을 해도 용인되는 분위기이다 보니, 갑들이 을·병·정을 대하는 태도가 천지차이다. 사람들은 학교, 군대, 직장을 통해 이 사실에 무척 익숙해진다. 나는 한국인들이 정치인을 볼 때도 유난히 눈빛을 보면 진정성을 아네 어쩌네 하면서 인간성에 집착하는 까닭이 이러한 생활세계의 경험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교사나 고참이나 상사의 선량함에 많은 것이 좌우되는 상황을 무척 많이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게 코할아버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가 언론에 노출되기 쉬운 위치에 있기에 드러나는 일일 뿐이다. 하지만 그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그것을 용인하는 어떤 야구팬들의 태도에서 나는 한국 사회의 문제들이 드러남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이 문제가 지금 우리가 대선에서 문재인, 안철수, 박근혜 세 사람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드는 것이다.

한윤형<미디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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