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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광장은 무엇이었나

입력 2012.10.16 11:30

2002년 월드컵이 열렸을 때 나는 고3 학생이었다. 원래 할 일이 쌓여 있을 때나 두려움과 걱정에 심적인 압박과 긴장을 느낄 때 몰래 챙겨 노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이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겠지만 경기마다 서울시내 주요 응원 거점으로 달려갔다. 선생님들도 ‘어쩔 수 없다’며 이해해주는 분위기였다. 하긴 가서 술을 마시거나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고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고 오겠다는데 막을 명분도 딱히 없었다. 그래서 저주받은 학번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고 남학생들의 평균 수능 점수가 예년보다 더 낮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지난 10월 4일 서울광장이 가수 싸이의 공연을 보러 온 인파로 가득 차 있다. | 스포츠경향 자료

지난 10월 4일 서울광장이 가수 싸이의 공연을 보러 온 인파로 가득 차 있다. | 스포츠경향 자료

그 중 광화문은 대형 스크린도 없이 건물 옥상의 옥외 스크린으로 경기를 시청해야 하는 곳이었다. 경기를 중계하는 화면은 사람 숫자에 비해 턱없이 작았고, 그마저도 앞 사람에게 가리기 일쑤였다. 그래도 도로를 점거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제대로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 시간 경기에 이기면 낯선 사람들은 서로 껴안거나 기차놀이를 하고, 서로 달려가면서 손바닥을 스치며 인사를 하는 장면을 볼 수도 있었다. 축제 같기도 하고 해방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촛불을 들고 광장에 갔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반대 집회, 광우병으로 촉발된 FTA 집회도 있었다. 같이 갈 사람부터 만들어야 하는 다른 집회들과 달리 그런 집회들은 함께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날에는 몸을 사려서인지 평화로운 밤들만이 떠오른다. 부끄럽게도 나는 자유발언대가 있는 공식 문화행사보다 행진 이후 소소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 편했다. 밤이면 촛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노래를 하고 둘러앉아 술을 마시거나 산책을 했다. 어딘가에서 음악소리가 들리고 밤새 토론을 할 기세로 자리를 잡고는 했다.

내 마지막 광장의 기억은 노무현의 노제 행렬이었다. 뒤늦게 도착한 그곳에는 그야말로 경험해보지 못한 공기가 흘렀다.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사람, 망연자실한 사람, 중요한 것을 잃은 것처럼 다들 그렇게 떠 있었다. 행렬이 끝나고도 파하지 않는 사람들을 한없이 함께 바라보던 중 옆에 있던 낯선 이와 통성명을 했었다. 그리고 그날, 그 시끄러운 길에서 면접 본 회사의 합격 전화를 받았다.

여전히 광장에서는 집회가 열렸지만 나는 살수차가 들이닥친 날에는 가슴을 졸이며 인터넷 생중계로 화면을 들여다보는 소심한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광장에 나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사람들과 어울려 놀러 나갔던 광장이 내게는 더 편하고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광장을 경험한 세대라고 불린다. 성장기에 경제성장과 IMF 사태를 겪으며 한국 사회의 역동적 변화를 체감했고, 월드컵 응원 경험을 시작으로 미선이 효순이 사건, 탄핵정국, FTA 집회를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촛불 시민’으로 자라 자연스럽게 정치참여의 주체가 되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어떤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일들을 할 때만 이 세대가 바람직해 보였던 것은 아닐까? 일상의 정치영역, 쟁점을 합의해 나갈 수 있는 공공의 공간이 없는 사회에서 광장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은 사실이었다.

마침내 광장은 세계 음악계를 제패한 ‘강남 스타일’의 공연장이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나와 함께 광장을 걸었을 그들은 지금 함께 말춤을 추고 있다. SNS를 누구보다 잘 사용하는 시장님은 네티즌과 함께 버퍼링이 심해 끊기는 유튜브 생중계로 싸이의 ‘여러분’을 듣고 있다. 싸이의 ‘여러분’은 싸이의 공연을 함께 즐기는 국민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국민들은 모두 그 광장에 있는 것만 같았다. 광장은 그렇게 월드컵으로 시작해 싸이로 끝났다.

김류미<‘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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