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비평지가 다른 언론들만큼 바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선은 대선이다. 유력 대선후보들의 행보를 예측하여 특집기사를 대비해야 한다. 회사에선 문재인이 결선투표 없이 후보가 될 거라 보았고, 적어도 그 다음주 정도엔 안철수가 출마선언을 할 거라 보았다. 예측이 그렇게 나오니 거기에 맞춰 특집기사를 준비해야 했다. 결과도 비슷했다. 문재인은 결선투표 없이 후보가 되었고, 안철수는 그 주가 지나기 전에 출마선언을 했다. 특집기사들도 무리없이 나왔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0월 1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짐을 들고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의 경우야 민주통합당 경선의 일정이 있었다쳐도, 안철수의 경우 예측의 근거가 되었던 것은 ‘추석 민심’이었다. 한국 정치와 대선의 특수성을 보았을 때 대권에 도전할 사람이 ‘추석 민심’을 지나치기는 어렵다는 정치공학적 예측이었다. 여기서 나는 추석 민심이 과연 실존하는지, 실존한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실제로 추석이 지나고 나서 주변 사람들이 떠드는 것을 들어보니 확실히 ‘추석 민심’이란 것은 “사람들이 모두 있다고 하면 있는 거다”라는 수준 이상의 실질적인 효력이 있는 듯했다. 지인들은 각자의 고향에 다녀와 그 고향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전했다. 말하자면 그것은 생각들의 섞임이었고, 개별 유권자들이 현재 대선의 지형도를 추측해볼 수 있게 하는 경연장이었다. 명절 현장에서 모든 사람들은 ‘민심’을 느꼈고 복귀 후엔 각자의 지역에서 겪은 ‘민심’에 대해 함께 떠들면서 그것들을 ‘종합’했다.
추석이 이처럼 대선정국에 대한 ‘전통적인’ 매개자가 된 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이 명절의 시기가 한국의 대선 날짜로부터 적당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둘은 이 명절이 설날과 함께 한국의 일가친척들에게 한 곳에 모여야 한다는 어떤 문화적 강제를 부여하는 유이한 풍습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설날과 추석 둘 중에 하나가 이것을 떠맡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인데, 하필 추석이 된 것이다. 따라서 ‘추석 민심’이란 말은 헌법 개정으로 대선의 시기가 바뀌거나 일가친척이 함께 모이는 풍습이 사라질 때까지는 유지될 것이다. 헌법이 먼저 바뀔지, 풍습이 먼저 바뀔지를 예측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또 명절 풍경을 들여다보면 한국에서 진보정당의 성립을 가능하게 할 ‘계급의식’이 형성되기 힘든 이유를 알 수 있다. 친척들이 모였을 때 보면 불과 수십 년 전에 시민의 대다수가 빈곤했던 사회이다 보니 각자 계층과 처지가 천차만별이다. 형편이 어려운 친척이 자식이 좋은 대학 갔다고 어깨에 힘을 주고 있고, 잘 사는 친척이 자녀가 그보다 못한 대학에 갔다고 풀이 죽은 경우도 많다. 계층별로 짝짓기가 공고해진 것은 대략 우리 세대부터의 일인 것 같으니 만약 20년 후에 명절문화가 존속한다고 해도 그 풍경은 지금과 다를 것 같다. 문화적 경험의 차이 역시 계층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수도권과 지방의 구분, 즉 지역의 문제가 결정적으로 보인다. 장차 부동산 가격이 더 하락한다면 수도권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더 떨어질 수가 있는데, 그 후에도 계속 이런 격차가 유지될지도 궁금하다.
어릴 때는 명절에 일가친척이 모이는 풍습이 곧 사라질 거라고도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모이는 친척의 범위는 줄어들더라도 몇십 년 후에도 추석은 비슷한 방식으로 유지될 것이다. 문득 그때의 추석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민심’을 전달할지 미리부터 궁금해진다.
한윤형<미디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