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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야신’을 갈망하며…

입력 2012.09.11 12:11

몇 년 전만 해도 야구 얘기나 정치 얘기를 또래 여성 앞에서 하기는 힘들었다. 내가 또래 여성과 말이 가장 잘 통했던 시기는 드라마 잡지 객원기자 일을 할 때였던 것 같다. 물론 요즘도 여성들은 드라마 얘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최근엔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그녀들과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놀랍게도 그녀들이 요즘 대부분 야구나 정치에 대해 떠들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다 야구 얘기를 해서 죽겠어. 나도 좀 봐야 할까봐. 일단 팀을 하나 골라야겠지. 팀 추천 좀 해줄래?” 이 같은 얘기까지 듣는 판국이다.

시대의 조류를 믿고 한국 정치의 문제를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비유’해서 논해보도록 하겠다. ‘해태 왕조’의 시대는 사회학자 김홍중이 386세대의 특성으로 제시한 ‘진정성’의 시대의 반영이다. 5·18로 시작된 그 정권이 만들어낸 프로야구에서 모기업 지원도 빈약한 가장 소외된 지역을 대변하는 팀이 최초로 패권을 잡았다는 것의 함의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이해될 수 있다. 

1986년부터 4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며 시작된 그 왕조가 IMF사태와 정권교체가 있었던 1997년의 우승을 끝으로 몰락한다는 것도 극적이다.

‘야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 | 연합뉴스

‘야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 | 연합뉴스

1990년과 1994년의 우승으로 수도권 지역 30대 초반 팬덤을 거느린 ‘LG 신바람 야구’의 시대는 그 전 시대의 억압과는 다른 자유로운 놀 권리를 강조했던 1990년대 초반 서태지를 위시한 신세대 담론에 비유할 만하다. 신세대는 386세대와 거의 동시에 세대의 이름을 획득했으나, IMF사태 이후 그 좋았던 시절이 끝나면서 오늘날엔 외려 ‘88만원 세대’와 386세대의 갈등 사이에서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 이는 10년째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LG의 지금 처지와도 잘 맞아 떨어진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네 번의 우승을 차지한 ‘현대 왕조’의 시대는 재벌과의 타협을 통해 전개되었던 한국적 신자유주의 시대를 보여준다 할 만하다.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재벌의 비정상적 소유구조는 해체하지 못했고, 공기업·금융기관 민영화와 노동 유연화만 이루었다. 국민의 정부와 협력해 대북사업을 전개하던 현대는 이 시기 가장 유력한 재벌그룹이었으나, 참여정부 등장 이후 대북송금에 대한 수사가 벌어지면서 정몽헌 회장이 자살하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된다. ‘정몽헌의 현대’가 운영하던 현대 유니콘스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문제는 다음이다. 이 흐름이라면 이후 ‘삼성 왕조’의 시대가 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삼성도 은근슬쩍 4회 우승을 하긴 했지만 실제로 전개된 건 ‘SK 왕조’의 시대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현재 독립야구팀 고양 원더스 감독을 맡고 있는 ‘야신 김성근’ 감독이 있다. 참여정부의 수장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했지만 프로야구에선 야구의 명인이 한 재벌그룹의 구단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재계 톱인 삼성의 시대를 저지했다. 구단주와도 끊임없이 불화하며 오직 ‘강팀’이 되기 위한 자신의 야구철학을 실현하는 김성근은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 논리에 온전히 포획되지 않는 승부의 미학을 추구하며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러나 그런 그가 결국 내쫓기고 프로야구 구단으로 복귀할 전망은 없는 것이 프로야구계의 현실이다.

즉 현재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야신’을 갈망하지만, 실제로 그가 와봤자 구단에서 내쫓길 것을 아는 그런 상태라고 비유할 수 있다. ‘야신’이 없거나 오더라도 어차피 쫓겨날 거라 보는 이들이 냉소주의자라면, 왔거나 올 김성근에 대해 충성을 바치는 것이 노무현이나 안철수에 대한 팬덤 정치일 것이다. 이런 비유로 접근하면 냉소주의와 팬덤 정치가 어째서 동전의 양면인지가 명료하게 보인다.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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