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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 스펙이다

입력 2012.08.27 16:54

휴가철이 끝났다. 나는 직장인이 되고서야 처음 해본 것이 참 많은데 그 중에 하나가 ‘여행’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여름 휴가 기간을 정해 가족단위로 함께 어딘가 낯선 곳을 가서 먹고 마시고 즐기다 오는 행위 말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각 구성원들은 휴가 기간 조율이 가능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여행에 대한 사전 정보력을 습득할 여건과 가족 단위의 이동수단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여행을 하는 데 있어 돈은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은 아닌 것이다. 내게 ‘여행’은 화이트칼라에게 어울리는 풍경으로 남아있다.

언제부턴가 대학생의 스펙에는 ‘해외 경험’이 들어간다. 배낭여행뿐 아니라 해외 봉사활동, 해외 인턴, 어학연수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학생들은 해외에 집을 지으러 나가야 하기도 하고, 배낭여행을 경험해야 하는 이유로 스펙을 언급하기도 한다. 농활이 대학생활의 필수였던 때가 있었고, 국토순례가 유행했던 때도 있었다. 자전거 무전여행을 거쳐 요새는 올레길을 걷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이다.

지난 7월 24일 인천국제공항 3층 출국장이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해외여행을 떠나는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지난 7월 24일 인천국제공항 3층 출국장이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해외여행을 떠나는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젊을 때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과 ‘여행이라는 스펙’이 나는 너무 불편했다.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계층이 있었고,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여건이라는 게 있다고 나는 여전히 생각한다. 돈이 없어서 여행을 가지 못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여행을 위해 알바 시간을 조정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거나 그 기간 중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빚을 내서라도 가라는 말들, 젊을 때 경험한 것이 다 남는다는 말들이 ‘청춘들을 향한 꼰대의 말’처럼 들렸던 것은 당연했다. 실제로 많은 멘토류의 책들은 젊을 때 많이 경험해보라는 이유로 여행을 권한다. 여행만큼은 소위 좌우파를 가리지 않고 권해지며, 청춘의 특권이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다른 경험을 얻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또다른 나’를 만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감성을 어루만지는 여행 에세이들은 미래를 고민하는 불안한 젊음들에게 다양한 조언을 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 문제는 그거다. 개인의 삶이 어떤가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 떠나면 해결될 것처럼 그렇게 외쳐 왔다. 여행 에세이스트들뿐 아니라 멘토들 역시!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잠시 여행의 기간 중 그걸 잊고 오는 것뿐이며, 그 낯설음을 위해 돈을 지불한다는 것을.

다른 경험에 대한 욕망은 모두에게 있다. 나는 알바를 선택하며 매번 다른 환경에 나를 던져넣었는데 그건 일종의 여행이었다. 새로운 환경을 호기심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내게는 돈을 벌며 할 수 있는 가장 큰 경험치였다. 그러다보면 거기서 ‘또다른 나’를 만나게 된다. 절대 상상해보지 못했던 환경에서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을 마주할 때 나도 모르던 상황 판단력과 대응력이 튀어나오는데, 아마 여행을 통해 얻는다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 물론 돈을 들여 구경하는 볼거리는 없지만 말이다. 

요즘은 부모들이 직접 자식에게 공무원 시험을 권한다. 경영학과를 권했던 부모는 자식이 졸업할 때 낮은 급의 공무원 시험을 권하며 노량진 학원비를 대준다. 방학에 그냥 놀 바에는 여행이라도 가라며 해외여행비를 기꺼이 지원해주기도 한다. 혹은 아르바이트로 열심히 벌어 여행비를 마련해 떠나야 한다. 나 자신을 위해서거나 나 자신의 ‘스펙’을 위해서거나.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가장 자본주의적인 공간인 면세점에서, 여행을 강요하는 청춘 멘토와 스펙을 만들어내는 사회와 관광업의 공모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게 여행은 아직까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절대로 부러워서 하는 말이 아니다.

김류미<‘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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