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차사회와 부모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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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차사회와 부모세대

입력 2012.08.06 17:12

2000년대 이후 지어진 아파트들의 이름들은 이상하다. 지하 월셋방을 벗어나 바로 옆 2층 양옥주택의 반지하로 이사했을 때 우리 식구가 얻은 건 딱 추가된 만큼의 반층 올라간 도시 서민의 삶이었다. 살던 건물은 월세를 받는 원룸 다가구주택으로 바뀌었고, 동네의 풍경이 달라져갔다. 다가구 전셋집들은 ‘플래티넘’으로 바뀌거나 친구들은 ‘퍼스티지’에 살거나 ‘팰리스’에 있는 슈퍼에 갔다. 직장인이 되었더니 회사 앞에 몇 년째 짓고 있는 건물은 ‘폴리스’였고, ‘파크’에는 사람이 산다.

아파트 이름을 어렵게 짓는 이유가 시골에서 올라온 부모님이 찾기 어렵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수도권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간 세대의 죄책감과 부모 세대의 서운함이 담긴 농담일 것이다. 그러나 이건 내 세대의 자조는 아니다. 우리는 애당초 자가주택을 소유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보지 못했으므로.

서울시 서초구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 연합뉴스

서울시 서초구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 연합뉴스

일을 보러 도심 한복판에 어느 사무실을 찾아가시던 아버지, 몇 번이나 화를 내며 딸에게 전화를 한다. 당최 건물 이름이 뭔지를 모르겠다며 한 자 한 자 계속해서 물어보신다. 나는 안다. 아버지는 쉽사리 그 주상복합을 찾으실 수 없을 것임을. 광화문 오피스텔이 밀집된 그 거리에서 건물의 이름은 눈에 띄기나 한단 말인가. 꼭대기나 입구에 작게 영어로 장식되어 있을 이름 말이다.

기업들이 이름을 영어로 바꿨던 시절이 있었다. KB, KT, SK, LG…. 그때도 아버지는 그렇게 화를 냈었다. 갈수록 살기 어렵다고, 못 배운 사람은 아예 까막눈이 되는 세상이라고. 직업소개소를 하는 어머니는 매일 아침 식당으로 일일 파출을 가는 아주머니들에게 업소 위치를 알려주며 목소리를 높인다. “옷가게 이름이 지.오.다.노(몇번이고 또박또박 반복하며)인데 거기로 들어가면 영어로 크게 써진 1층에 빨간 간판 호프집이 있어.” 조선족이 아니어도 아주머니들에게 가게 이름은 어렵다. 마치 길거리에서 카드가 발급되던 장면처럼 스마트폰은 그렇게 많은 주머니와 가방에 들어가지만, 모두가 스마트해질 수는 없다.

나는 이 풍경이 사실 그리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새로 지어지는 건물들의 이름이 너무 복잡해 기억하기 어렵고, 대부분 이름보다는 위치와 생김새를 기억할 뿐이며, 웃기지도 않는 아파트 이름들은 싸구려 냄새가 나는 강남 졸부 같은 천박한 느낌을 받는다. 어머니에게는 최근 산 스마트폰의 사용법을 하나하나 가르쳐드리며, 성경책 대신 스마트폰을 꺼낼 수 있게 해드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정은 이렇게 다른 성원들에게 문화적인 학습, 재사회화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회적 빈 틈을 개인들의 의지나 노력으로 메울 뿐이다.

어머니는 이제 나이든 사람들은 안 된다고 말한다. 파출부 사무실과 같은 업종도 이제는 큰 기업들이 자본과 전국 체인망을 가지고 들어온단다. 골목상권을 침해하는 대형마트처럼 동네 약국과 문구점은 프랜차이즈가 되어가고 철물점, 전파상과 같은 작은 가게들은 필요할 때 찾기가 어렵다.

[2030세상읽기]격차사회와 부모세대

힐링캠프에 출연한 안철수 교수가 보통시민들의 마음에 와닿는 말들을 많이 했나보다. 박원순 시장이 출마했을 때, 어머니는 아름다운 가게를 기억해냈다. 나이든 어머니, 회사 이름을 영어로 바꿔댄 것도 이 정부라고 비판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그런 부모님과 사는 내가 모두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정책이 있을까? 사실상 출산을 포기하는 선배들을 보면서도 한편 나도 기술이나 새로운 문화에 뒤지지 않으려면 결국 결혼해 아이를 낳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김류미<‘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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