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열심히 하던 시절, 약간 야한 이야기도 하면서 열심히 알바 이야기를 올렸었다. 낮에는 명색이 ‘청춘 당사자 운동 조직’이라는 곳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밤에는 정치적으로 덜 올바른 공간인 블로그로 피신하고 싶었다. 블로그의 역사는 당연히 밤에 이뤄졌다. 큰 논쟁이 일어나거나 실시간 댓글이 달리거나, 새 글이 올라오는 시간은 ‘늦은 저녁’이었다. 블로거들에게도 ‘저녁 있는 삶’은 중요했다.
영화 <은교> 중 한 장면 | 경향신문
사적 영역에서 또래와 소통하고 싶었는데 거창한 구호, 문화액션이라 불렸던 행사 말고 웹에서도 또래를 찾아내 소통하는 것이 내게 중요한 문제였다. 당사자 운동의 대표성을 위해서라도 연대해야 하는 또래에게 지지받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결국 블로그 생활을 통해 얻었던 것은 (대체로 고양이를 키우거나 책을 매우 좋아하고 인문학과 교양에 대한 소양이 있는) 약간의 여자 블로거와 또 약간의 착한 아저씨들이었다. ‘발칙한, 개념을 탑재하기 위해 노력하는 어린 여자’는 웹에서 참 인기를 끌 수 있는 캐릭터였다.
블로그의 콘텐츠가 그러하다보니 종종 글을 쓰거나 영화를 준비한다는 분들, 방송작가들이 댓글을 남겼다. 한 번 뵙고 이런저런 자문을 듣고 싶다고. 처음엔 순진하게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분들과 만나는 자리에 나갔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이런 ‘번개’에서 내가 안 예뻐서 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블로그라는 건 적당히 감추고 강조해 드러낸 ‘편집된 나’이고, 현실의 ‘나’와 다르며, 우리는 본 적 없는 상대에 대해서는 꽤 호의적인 상상을 하게 마련이다.
나는 원래 아저씨들과 참 잘 지내는 편이었다. 아버지가 나이가 무척 많으시기도 했고, 술도 학원 선생님들에게 배웠고, 학교에서도 졸업 직전인 고학번 선배나 대학원생들과 어울렸다. 나이 많은 남자들은 대부분 친절했고, 연예인 이야기나 아이돌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회사 이야기나 궁금한 걸 물어보면 언제나 매우 친절하게 가르쳐주셨다. 잘 아는 분야를 이야기하실 때 그분들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원하는 정보가 있을 때 그분들의 전문성을 인정하며 감탄하며 매우 궁금하다는 시선을 담아 물으면 더욱 많은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어른들에게 예쁨 받는 부류’가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남자 어른들이 왜 젊은 여자애들에게 호의적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린 여자는 ‘어린’ ‘여자’였다. ‘딸같이 예뻐서’ 술자리에서는 화제의 중심이 된다. 나이든 남자도 나이 어린 남자도 모두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데 ‘자기 또래 여자’를 좋아하는 어른을 만나면 그 순수함이 되레 숭고할 정도라고 지인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머리를 굴리는 게 보여도 필요할 때 애교를 부리고 정치적 올바름의 또 다른 이름인 ‘개념’을 탑재하고 외모마저 괜찮다면, 안전하지만 민폐를 끼치지 않는 ‘어린 여자’가 된다.
당돌한 애들, 기가 센 애들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인지, 이런 캐릭터들은 나이 많은 남자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끈다. 언뜻 봐서는 그게 막연한 착각인지 정말 영리한 건지 가늠도 못하는 일이 생겨난다. 우리가 가끔 듣는 종류의 사고나 스캔들이 그런 경우겠다.
최근 어느 소설가가 “일흔 노인이라도 지나가는 꽃을 보고 ‘정말 아름답다, 가까이 두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남자의 물건> <욕망해도 괜찮아> 등 아저씨들의 솔직한 내면과 고백을 담은 책들은 서점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소비와 욕망의 주체로서 아저씨라는 솔직한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은 사회의 건강함을 보여줄 수 있는 지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아저씨들의 사회였던 대한민국에서 어린 여자로 살아간다는 건 그래서 가끔 참 어렵다고, 책을 재밌게 읽으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류미<‘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